아쉬운 점수에 대한 소네트

-태재대학교 일기 15 (비하인드 스토리)

by Joy to the World

과제 점수가 나왔다. 첫 번째는 아니고 좀 많이 공을 들였던 터라 기대하고 있었다. 역시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할지도 모른다. 기대 이하였다. 교수님이 적어주신 코멘트들은 모두 맞는 말이었고, 사실 그 코멘트들에 감사했다. 내가 더 성장해야 하는 방향을 보여주셔서.


그래서 만족했다. 아쉬운 점수였어도. 그래서 평균 점수보다 그다지 엄청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어도 그냥 그러했다. (사실 평균이 얼마나 속임수가 많은 지표인가 믿을 순 없다.) 그런데 이 사실은 하루 종일 나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러고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울 것도 아니고, 마음 아플 것도, 화가 날 것도 아니고 그냥 좀 기분이 꿍꿍하다. 비가 와서 그런가.


수업을 세 개나 들어서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보강은 정말 힘들다.


어쨌든. AI를 사용하고 과제를 낸 사람이 나보다 점수를 좋게 받았다. 이건 좀 기분이 그렇다. AI가 나를 이긴 것 같기도 하고, AI를 쓴 걸 못 알아챈 거 같은 교수님이 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사실은 모른다) 사실 그 사람이 AI를 어느정도까지 썼을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안 썼고, 그 사람은 썼다. 그리고 높은 점수를 받았다.


사실 뭔가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런 날이 올 거 같다고. 나는 열심히 해서 냈는데 AI 써서 낸 사람이 더 좋은 점수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을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을 2주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현실이다. 그리고 학기는 아직 안 끝났다. 지금 과제 하나로 이럴 때가 아니다.


아직 11월이 있고 아직 해야 할 과제가 수두룩 빡빡이다. 앞으로 점점 성장할 거 아닌가? 뭐, 항상 잘하는 사람이 어딨는가. 아니,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딨는가. 이 글은 빨리 못 올리겠다. 나란 사람이 이렇게도 속 좁은 사람이란 걸....


처음부터 잘할 걸 기대했던 거다. 처음부터 예쁘고 창창한 앞날을 기대했던 거다. 그게 가능하면 내 인생이 아닌 거다. 내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조금씩 움트는 인생이었다. 천천히 걸어가는 거북이. 남들이 보기엔 토끼 같아도 내가 보기엔 거북이 같다. 그리고 그 안에서 쉼을 얻고자 한다.


처음부터 잘한다고 좋은 거 아니다. 나중에 가서 넘어질 수 있다. 어떻게든 넘어지는 것 같다. 빨리 달려나갔던 그 속도만큼 붙은 가속도에 때론 자기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진다. (그걸 내가 경험해보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일어서보자. 오늘도 일어서보자. 일어서기 위하여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안 그러면 계속 이 생각만 붙잡고 있을 것 같아서. 숙제 하면서도 집중 못 할 것 같아서.


잘했다. 잘했어. 쉬지 않고 걸어온 거북이가 나무 옆에서 잠시 몸을 누이는 중이다. 열심히 한 노력이 있으니까 쉬려고 한다.


그리고 말이다. 나란 사람은 여전히 장한 사람이다. 옆에서 얘기하지 않는가. "너 글 잘 써. 너가 왜 그 점수야?" 오늘도 웃으면서 서로를 위해 밥을 준비하고 서로가 해낸 일을 칭찬하고 함께 웃었다. 그렇게 함께했다. 수능 때도 그 숫자로 나를 점수 매기지 않은 것처럼 오늘도, 과제로 나를 한정짓지 말자.


혼자 설 수 없는 사람은 혼자 못 걷는다. 혼자 서보기에 성공한 사람은 걷기도 성공한다. 하나씩 하면 된다. 그리고, 더 배워 가면 된다. 그렇게 살자.


202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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