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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칵테일, 뉴올리언스의 사제락 이야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by 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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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에 80이 다된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벤자민은 사실 10살 남짓 된 어린 아이였다. 10살이면 한창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 모든 것이 신기했고 궁금했던 벤자민은 배를 타고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에 큰 매력을 느껴 뱃일을 시작하게 되고 선장인 마이크는 여자 경험이 없다는 벤자민의 말에 충격을 받아 사창가에 대려갔다.

벤자민에게 여자를 가르쳐준 캡틴 마이크

친아빠와의 만남

사창가에서 우연히 벤자민은 본 벤자민의 친부인 토마스는 벤자민에게 정체를 숨긴 채 술이 같이 마시지 않겠냐고 권한다. 토마스의 단골 바에서 둘은 뉴올리언스의 클래식 칵테일인 사제락을 시키는데 이 때 토마스가 하는 말이 있다. ‘꼬냑 말고 위스키로’. 많은 사람들이 사제락은 라이 위스키로 만드는 줄 알고 있지만 사실 원래 사제락은 꼬낙 베이스였다. 뉴올리언스에 Sazerac Coffee House라는 곳에서 꼬냑을 수입을 하고 있었고 그곳의 주인장은 꼬냑을 이용해서 칵테일을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Sazerac인 것이다. Sazerac이란 이름도 꼬냑 브랜드인 Sazerac de Forge et Fils에서 따온 이름이다. 점점 술에 취해 나른하고 편안한 표정을 짓는 벤자민과 다르게 토마스는 점점 여러 감정이 뒤섞여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어쩌면 그도 여타 다른 아버지와 다를 것 없이 아들과 술 한 잔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Sazerac

토마스는 죽을 때까지도 사제락을 마셨다. 나중에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아버지임을 밝히기 위해 청년이 된 벤자민을 찾았을 때 벤자민이 토마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아직도 사제락을 드시는군요”.

토마스의 마지막

토마스가 그렇게 좋아했던 사제락은 가장 오래된 칵테일이자 뉴올리언스의 클래식 칵테일이다. 재즈의 고향인 뉴올리언스를 대표하는, 뉴올리언스 다운 칵테일.

칵테일이라는 것이 사실 바텐더마다 조금씩 레시피가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틀을 간단히 읊자면 라이 위스키/꼬냑을 베이스에 압생트의 향을 잔에 입히고 각설탕, 얼음, 페이쇼드 비터, 레몬 제스트로 향과 단 맛을 더해준다. 아주 간단한 칵테일.

한 모금 마시면 라이 위스키의 토피와 같은 고소하고 달달한 맛이 올라오고 압생트와 비터에서 오는 체리, 오렌지, 풀 내음이 뒤따른다. 그리고 목을 넘기면 라이 위스키의 스파이시함과 우디 노트가 목을 감돈다. 흑인들이 부르는 찬송가와 재즈가 울려퍼지는 영화의 배경과도 참 잘 어울리는 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리석같이 매끄럽고 클래식같이 우아한 맛이 아니라 나무로 지어진 포근한 집처럼 따뜻하고 재즈와도 같은 끈적한 단 맛이 난다.

걷기 시작한 벤자민을 다같이 축하해주는 따뜻한 모습

End

토마스가 메뉴를 보지도 않고 시키는 Sazerac을 보면서 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곧장 바로 향했고 그 날 이후로 Sazerac은 나의 최애 칵테일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정말 재밌게 본 영화인데 아직 보지 않았다면 영화를 한 편 보고 바에 가서 사제락을 한 잔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뉴올리언스 같은 곳을 가면 더 좋고!(영화처럼 투박하고 포근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지만 1920년대의 미국의 바를 연상시키는 포시즌스의 Charles.H를 가보는 것도 좋은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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