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앞서 걷고 있는 지침에게.

서로의 무너짐을 가볍게 주고받는 것이, 어쩌면 이 시대의 애틋함인지도.

by 김순현

하루는 반복된다.
몸이 아닌 생애 전체가 피로하다는 사실은,
무릎 아래부터 스미는 고요한 통증으로 알아챈다.
잠은 의무처럼 쌓이고, 의식은 대기처럼 무겁다.

우리는 자신을 데리고 황야를 걷는다.
생애라 불리는 이 긴 여정의 지형은,
자갈로 덮인 시간과
무게를 감춘 선택지로 이루어져 있다.

언젠가부터 “피곤하다”는 말은 감정이 아닌 인사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잘 지냈어?” 대신 “얼마나 피곤했어?”가 더 자연스럽다.
서로의 무너짐을 가볍게 주고받는 것이,
어쩌면 이 시대의 애틋함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피로 속에서도 일을 하고, 웃고, 걷는다.
그 어떤 무거움도 일상의 리듬 앞에서는 침묵한다.
그래서 피로는 감정이 아니라 풍경이다.
지워지지 않는 지문처럼, 생애에 찍힌 하나의 결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잠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나는 잠을 미뤄가며 나를 죽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버틴다.
버티는 나를 스스로 사랑해 왔기 때문에.
언제나 살아남는 쪽을 선택해 왔고,
그 선택이 나를 견고하게 만들었다는 걸 믿고 싶다.

나는 나를 쉬게 해주지 않았다.
피로를 채근삼아 나를 몰아세웠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쓸모 있는 생’이 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오늘은 묻고 싶다.
정말로 그 생은,
살아있는 생이었을까?

이제야 나는 느낀다.
진짜 나를 위하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용서하는 일.
잠들기 전,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보는 일.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나는 알아.”

그 말 한 줄이,
누군가에겐 치료보다 빠른 회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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