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방관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나

인간관계에 지쳐 속세를 떠나고 싶을 때

by 불안정 온기

중립과 얍삽함, 그 경계에서


"너는 진짜 중립을 잘 지켜서, 뭔 일 있을 때 너 의견이 도움이 많이 된다."
"야 니 진짜 얍삽하다. 볼 건 다 봐두고 지만 쏙 빠진다이가."


이런 두 가지 말을 모두 들었던 때가 있다. 의견이 나뉘거나 그룹이 여러 개로 갈라졌을 때, 내 감정과 체력을 쓰기 싫어져 가장 멀리서 관찰하는 걸 선호하는 시기이다. 그룹 내에서의 이 기묘한 포지셔닝은 어떠한 의견도 자진해서 내지 않기 때문에 입이 자동으로 무거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게감이 있는 사람인가? 그렇진 않다. 의견들 사이에서 기준을 가지고 무게를 지키는 것과 의견들 사이에 고통받는 게 싫어 회피하는 것은 다르니까.




누적된 타인존중으로 학습된 나


사실 관찰자로 살아왔던 이유가 따로 있었던 건 아니다. 회사의 위치와 대학 혹은 고향과의 거리는 너무나도 멀었기에 회사를 다니며 자연스레 친구들과의 교류도 적어져 갔다. 첫 회사의 하루하루는 매번 새롭고 바쁘게 느껴졌지만 주말은 반대로 너무나도 심심했다. 사람들을 만나고자 동호회에 들어갔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들어갔던 동호회는 신설된 지 얼마 안 된 그룹 마냥, 회원 간에 어색한 공기가 가득했다. 이런 분위기는 마치 처음 만난 길고양이와 친해지고자 접근하는 것처럼, 조심스레 교류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상대방을 향한 이해와 배려가 베이스로 깔린 접근은 "당신의 의견도 존중해요."와 같은 태도를 만들었다. 동호회 모든 구성원을 향한 이 태도로 인해 점차 중립적인 성향의 내가 형성되었다.



관조하는 삶을 결심하다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동호회의 사람들도 늘어갔다. 다만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룹 속의 그룹이 여럿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룹 속 작은 그룹들은 점차 인원이 가진 힘을 통해 한 명이 의견을 낼 때보다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동호회 내에서 시시각각 제시되고 변화하는 목소리들에 대해 나는 피로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싫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주장에 치여 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겉돌기로 했다. 누구보다 멀리서 관조하기로 한 것이다.



관찰자의 삶이 내게 준 선물


멀리서 바라만 보는 삶은 사실 굉장히 편안했다. 마치 속세를 떠나 내세로 잠적한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달까. 남의 의견들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을 물론이거니와, 내 의견도 굳이 낼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 내 의견을 물어본다면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의견의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나 혼자 등대 위에서 고요함을 누리는 듯했다. 관찰자로서의 삶의 장점은 그 외에도 많았다. 우선 주변 사람들이 나를 입이 무거운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사실 실제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지만, 의견들 사이에서 침묵을 지키는 내 모습을 사람들이 그렇게 보았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두 번째는 그룹 내에서 가장 넓은 시야를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룹에서 가장 멀리 나와 관찰만 하다 보니 나도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나무보다 숲을 보는 시야를 획득하게 되었다. 어쩌면 산신령 같은 존재도 원해서 신선과 같은 시야를 얻은 것이 아닌, 살다 보니 그런 시야를 획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넘을 수 없는 벽, 방관자의 고독


다만 내가 살아가는 이 관찰자로서의 삶이 마냥 장점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는 것을 피했고 어디에도 휘둘리기 싫어하는 나였기에 가능했던 포지션이지, 개인 성향 차이에 따라 이런 포지션이 맞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위 글로 추측할 수 있듯, 내 기준과 의견이 뚜렷한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다. 그리고 가장 큰 단점은 사람들 간의 깊은 교류가 힘들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당시의 나를 대하던 동호회의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었다. "너랑은 친해지다 보면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 더 다가가기 힘든 것 같아." 누구와도 친하면서 누구와도 깊게 엮이지는 않는 이 포지션은 어쩌면, 껍데기와 같이 공허한 유대만을 형성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들었던 말 중에서도 "너는 방관자다."라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 잔인한 평화는 '방패'로만 사용해야 하는 이유


이처럼 관조하는 삶은 평화와 고독이라는 양날의 검과 같다. 직접 겪어본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더더욱 여러분들에게 균형 있게 설명하고 싶었다. 여러분이 단체 내에서 주변의 강한 의견들에 쉽게 흔들리고 또 지쳐가고 있다면, 한 번쯤은 이런 태도를 고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포지션으로 어느 정도 심적 평화를 찾았다면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을 추천한다. 이 방법은 주변 사람들과의 깊은 교류를 본인도 깨닫지 못하게 천천히 단절해 나가는 굉장히 잔인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뭐든 방법을 알면 균형 있게 조절해 가며 사용해 보는 것은 여러분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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