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DOG+BRANDING 02
오늘의 브랜딩 레퍼런스는 스스로 힙하다고 느끼지만, 약간의 사회의식도 겸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알만한(?) 브랜드 이솝(AESOP)이다. 지금은 이솝의 공식 홈페이지에 알림 메시지가 사라졌지만, 몇 달 전 이솝은 자사 제품의 패키지 디자인이나 브랜딩이 매우 빈번하게 표절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우려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알렸었다. 한국 코스메틱 브랜드 대부분은 각자의 고유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매우 공을 들이고 있지만, 이솝의 브랜딩과 디자인을 카피해서 마케팅이나 세일즈의 숏컷(지름길)을 찾아내는데 공을 들이고 있는 반대의 사례들도 안타깝지만 필자에게 가끔 발견되곤 한다. 브랜딩이나 디자인의 참고가 아닌 표절은 얼핏 생각하면, 꽤 효율적, 경제적으로 새로 시작하는 나의 브랜드를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레퍼런스 브랜드(표절한 브랜드)와 같은 레벨까지 광속으로 부스팅을 해줄 것 같지만, 사실은 내 브랜드를 지구인이 아예 영원히 바라볼 수 없는 알파 센타우리로 보낼 확률이 더 높다(내 브랜드를 혹시 존재할지 모를 알파 센타우리의 외계인들에게 알리게 될지도). 그 이유를 이솝에 대한 필자의 브랜드 경험과 관찰을 통해 이야기하려 한다.
이솝 오피셜 홈페이지에 따르면 1987년 호주에서 론칭되었고, 현재는 브라질 기업 Natura& Co. 에 인수되었다. 한국의 이솝 스토어를 가보면, 인상적인 블랙 스트라이프와 크림 컬러 스트라이프가 아주 길게 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이솝의 제품에 부착된 라벨의 디자인은 한 줄로 제품을 길게 세워 놓으면, 블랙과 크림 스트라이프 디자인이 연결되어 시선을 압도하는 큰 스케일의 디자인으로 보인다. 지금의 브랜드 디자인 시스템이 초창기 브랜딩의 레거시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봐도 대담한 시도다. 단순히 미니멀한 디자인이라서 대담한 게 아니라, 브랜드 마케팅적 전략으로 시도할 수 있는 디자인적 다양성이나, 화려함을 아예 완전히 접고 고객에게 한 가지만 전달하겠다는 시도라서 그렇다. 그것은 바로 "이성"이다. 갈색 병에 라벨링 된 블랙 스트라이프와 크림 컬러 스트라이프에는 거의 같은 포션의 브랜드 로고, 제품명, 성분표시가 플랫 한 고딕 타입페이스(서체)로 정리되어있을 뿐이다. 사실 제품명을 빼면 나머지는 읽기도 힘들다. 꽤 불편한 브랜드다.
그러나 전략인지는 모르겠으나 스토어 스탭들도 약간은 드라이한 톤의 어조로 제품에 대해 필요한 말을 한다. 지나치게 판매를 유도하지도 않는다. 사실 한국의 이솝 스토어들은 인테리어에 상당한 절제를 기울인덕에 고요한 수도원의 분위기마저 느껴질 정도다. 코드가 맞는다면, 심신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필자의 원픽은 파슬리 시드 토너와 에멀전인데, 제품을 구매하고 나면, 손바닥보다 약간 큰 아이보리 컬러 린넨백에 제품을 담아주고 비닐팩에 든 1회용 샘플러 3개 정도를 같이 준다. 한 번은 린넨백안의 파슬리시드 토너가 약간 새어 린넨백이 약간 젖은 적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선 꽤 불편한 거지만, 필자의 입장에선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불편함 정도로 생각한다. 파슬리 시드 토너의 유리병 상단캡은 최소한의 플라스틱만을 사용해 마감한 것 같다. 필자의 기억으로 이솝의 제품 대부분은 유리병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브랜드의 입장에서도, 소비자 입장에서도 주의가 필요한 용기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관점에서 보면, 플라스틱의 사용을 과감하게 줄여서 브랜드나 소비자나 둘 다 환경에 약간은 미안함을 덜 수 있기도 하다. 이솝의 토너나 에멀전을 직접 사용했을 때의 브랜드는 어떤 느낌일까? 스토어에서 제품들을 테스팅할 때, 표방하는 컨셉인 자연주의답게 인공적인 향보다는 내추럴한 향을 가지고 있는 편인데, 이솝의 제품들은 특히나, 극단적으로 필자에게 맞지 않는 향의 제품들도 있었다. 마치 고약한 향의 한약재나 풀에서 날법한 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코드가 맞는 향의 제품들은 마치 자연을 인간에게 꽤 품위 있는 방식으로 전하는 느낌의 탁월한 제품들도 있다. 큰 틀에서 보면, 이솝의 제품들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MSG의 느낌이 비교적 적은 코스메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는 이솝의 브랜딩 디자인으로 다시 돌아와서, 이솝 스토어 전체를 마치 벽지처럼 도배(?)하고 있는 블랙과 크림컬러 스트라이프의 유리병과 수도원과 같은 인테리어를 생각해 보자. 극도로 미니멀한 이솝의 제품들과 수도원 같은 신심의 평안함을 주는 스토어 인테리어(모든 스토어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약간은 드라이하지만, 고객이 들어야 할 만한 말은 반드시 하는 스탭까지 모든 브랜드의 구성요소가 적절한 강도로 본딩이 되어있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필자가 가끔 목격하는 사례는, 다른 모든 브랜드의 핵심적인 구성요소들을 외과의사처럼 기가 막히게 제거하고, 오직 갈색병과 블랙과 크림컬러, 그리고 고딕 타입페이스만을 추종하는 새로운(?) 코스메틱 브랜드들을 론칭하는 대담함이다. 이솝의 케이스를 참고하면서, 나의 브랜드는 왜 이런 브랜딩과 디자인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하면 긴 시점에서 봤을 때 브랜드의 베이스를 잘 다져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