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상에 떠오른 생각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즐겁게 어울리면서도 쉽게 외로움에 빠졌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외로움의 자리에 고독과 허무,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종종 들어서게 되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면 곧잘 경직되고 텅 빈 느낌이 든다.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만, 누구나 언젠가 홀로 죽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젠가 떠나는 일도 내 인생에서 피해갈 수 없다.
가끔 어딘가 심하게 아프면 죽을병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되고
오늘 내가, 혹은 가까운 누군가 갑자기 사고나 천재지변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가진 채
불안하고 미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슬프고 허무한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대체로 즐겁고 활기차게 살고 있음에 문득 놀랍고 감사하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살아간다는 건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피해갈 수 없지만
살아 있고, 또 살고 싶은 존재이다.
이런 양면성을 지닌 인생에는 삶과 죽음 사이의 세계,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
무의식의 세계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은 꿈의 세계라고 할 수도 있고, 의식 저 너머 무의식의 세계,
이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계일 수도 있다.
인생의 3분의 1을 잠자는 시간으로 보내는데,
잠자는 시간동안 다녀오는 무의식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웜홀을 통해 다른 차원을 여행하고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눈을 감고 잠이 들기 전 다시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얼마전, 수면 마취를 할 때도 그랬다. 고통을 잊기 위해 잠이 드는 거지만,
깨어나지 못하면 내 의식은 영원히 이 세상 밖으로 가버리는 것이었다.
내가 살아 있는 지 확인해줄 수 있는 맥박 장치들과 시계의 움직이는 초침을 확인하며
본능적으로 마지막까지 의식을 붙들고 있었지만,
결국 견딜 수 없는 잠의 무게에 눌려 블랙홀과도 같은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막상 잠과 무의식, 다른 차원의 경험은 내 육체가 끔찍이도 고통스러워지는 경험은 아니다.
깨어 있을 땐 그저 내가 감당하기 힘든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였지만,
의식을 잃는 순간 아무 것도 없는 ‘무’가 된다.
오늘 내가 잠이 들어서 내일 깨어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의식을 잃는 순간 내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잠을 잘 때 무의식의 세계에서 평온한 죽음 같은 경험을 한다면,
현실의 의식 세계에서는 죽음과 비슷한 고통을 직접 경험하기도 한다.
죽음과 비슷한 고통이란, 사람들이 흔히
“힘들어 죽겠어, 죽을 지경이야, 죽을 맛이야, 죽고 싶어.” 라고 말할 때의 느낌이다.
병과 사고로 인한 신체적 육체적 고통,
가난, 전쟁, 이별, 사별, 인간관계의 불화나 갈등, 빚, 술과 마약 도박 등의 중독으로 인한 괴로움,
죽을 것만 같은 그 고통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살아가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수고스럽고 고달픈 인생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절차인 무의식이 세계가 없다면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삶을 지속하기가 힘들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올 때
나는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통해 죽음을 연습한다고 생각한다.
밤이 되어 잠들고, 아침이 되면 깨어나고.
반대인 경우도 있지만 누구나 잠을 자면서 죽음을 연습한다.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이라면,
삶이라는 한 면으로만 살아가는 게 아니라
동전의 앞뒤가 번갈아가면서 굴러가는 모양이다.
나도 훗날 나이가 더 들어서 인생이 많이 굴러가서 회전이 익숙해지면
죽음이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편안하고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루를 인생이라고 본다면, 매일 살고 죽고, 다음 날은 새로운 인생을 사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잠으로 인해, 꿈으로 인해, 무의식의 세계를 통과하며, 이전의 나는 과거로 사라지고
새롭게 시작할 기회를 얻는다.
이 세계에서 생을 마치고 나서 더 깊은 무의식에 빠진 후에
또 다른 새로운 세계에서 다시 살아갈 가능성도 있다.
모든 게 끝이라는 허무를 떨쳐 내기 위해
다시 살아날 수 있고,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희망을 갖는다.
그러니까 매일, 수고스럽고 힘겨웠던 육체를 내려놓고 충분한 쉼을 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