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반짝이는 마음

작은 일상에 떠오른 생각

by 구름 의자

문학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시를 좋아해서 노래처럼 시를 외워서 흥얼거리곤 했는데, 이제는 전혀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실이 너무 고달프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뜨겁고 반짝거리는 열정을 품은 사람들도 살다 보면 먹고 사는 현실의 삶 앞에서 점점 사그라든다. 술과 괴로움에 중독된 듯 살아가는 친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러지 말아라.’가 아니라 같이 술을 마시고 괴로워해주는 것이었다. "그래. 그 마음 나도 알지." 라고 말할 때 친구는 눈물을 쏟아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힘든 것일까. 이 정도의 슬픔을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약하게 태어난 것일까.


어릴 적 내 상상 속 미래는 파랗고 맑은 하늘이었다. 뜨겁고 반짝이는 햇살이 비치는 그런 날들. 그러나 세상은 알면 알수록 뿌연 날들이 더 많았다. 언제부턴가 내 삶에도 걱정과 불안의 먹구름이 자주 드리워졌다. 꿈을 갖고 사는 것만으로는 꿈을 지켜낼 수 없었다. 꿈을 꾼다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 역시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은 꿈이 있다. 나는 등단을 하거나 유명한 작가도 아니라 취미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꿈은 직업과, 직업은 돈벌이와 연결이 될 때 비로소 인정을 받고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삶이 없으면 꿈도 없기 때문이다. 문학보다는 현재 살고 있는 현실의 삶이 더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시대가 빠르게 변화할수록 점점 더 중요해진다.


서울 끄트머리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는 매달 집 대출비와 빠듯한 생활비로 가계부를 적어내려가며 이번 달을 잘 버티자는 마음으로 산다. 아이들 학년이 올라갈수록 교육비도 만만치 않다. 당장 먹을 반찬거리도 매일 적절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경제개념이라곤 없었는데, 이제는 돈을 쓸 때마다 내 머릿속에선 계산기가 바쁘게 움직인다. 예기치 못한 돈 몇 푼이라도 수익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헤벌쭉해진다. 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는 요즘이다. 삶에서 또한 가장 중요한 건 몸과 마음의 건강 챙기기다. 몸이나 마음 어딘가가 아프거나 병들면 그동안 다져왔던 것들이 한번에 무너진다. 내 몸 뿐 아니라 가족들 건강도 챙겨야 하니 누구라도 아프면 걱정은 배가 된다. 이런 현실적인 중요한 문제들 앞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나면 내 어딘가에서 끓던 마음이 식어간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바쁘고 정신 없다.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이들에게 뜨겁고 반짝이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작년에 고전 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고전을 깊이 읽을 기회를 가졌다. 수업을 들으면서 작가와 작품에 대해 세세하게 살펴보고 생각도 나눌 수 있어서 내내 유익했다. 이렇게 좋은 수업을 몇 안되는 수강생들만이 듣는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나서 공부 자체로는 충분히 좋았지만, 커리어, 직업, 돈벌이와의 연결고리가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문학 속 인물의 이야기를 읽고 공부하는 게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급속도로 기술이 발달하고 다양한 AI캐릭터가 나와서 매력을 뽐내는 시대에 고전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더더욱 그렇다. 최신식 네이게이션과 자율주행 운행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종이 지도를 들고 길을 찾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저마다의 네이게이션과 넘쳐나는 컨텐츠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사람들에게 고전 속 인물 셰익스피어, 데미안, 프로이트, 좀머씨, 까라마조프 이야기를 하는 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은 온갖 새롭고 신기한 것으로 휘황찬란하게 꾸며진 방에서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내 보고 싶을지 모르겠다. 너무 많고 다양한 그것들을 구경만 할 것이 아니라 내 손에 소유하려면 돈 밖에 없다는 욕망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갖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돈을 효율적으로 소비해야 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진다. 돈은 많을 수록 좋을 것이다.


꿈은 꿈일 뿐이고, 현실은 현실이기에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현실을 잘 사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좀머씨 이야기에서 좀머씨가 죽었는지 사라졌는지 모를 만큼 마을 사람들에게 큰 파장 없이 조용히 잊혀졌듯이 우리의 이웃 중 누군가가 무슨 일로 죽었는지 사라졌는지도 큰 관심거리가 되지는 못한다. 더군다나 까라마조프 집안의 비극적인 사건과 인물들의 심리에 대해 긴 시간을 할애하여 읽고 이해하는데 머리를 쓴다고 해서 누가 알아줄까. 디지털 AI시대에서 살아 남기, 상위 1%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현명할 수도 있다.


예전에 가까운 지인에게 글쓰기 모임을 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돈벌이도 안 되는 데다 모임을 하다보면 비현실적인 세계에 빠질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현실을 부정할 순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일이 어떤 현실적인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을지는 나름대로 더 연구하고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생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독서와 글쓰기를 계속 하고 싶다. 단지 지식을 쌓고 표현력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쁘게 살면서 내가 잊을 수도 있는 감정들을 접해보고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만이 아픈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플 수 있다는 것, 나만이 두려운 게 아니라 모두가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흔들리고 괴로워하는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도 가능해해진다.


나에게 문학이 주는 가치와 힘은 크다. 삶을 보다 깊고 넓고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시간이 주어지지만, 문학을 통해 나는 시간을 초월하여 과거나 미래로 오갈 수도 있고, 현재의 시간을 더 짙은 농도로 보낼 수 있다. 문학은 작품 속 배경이 되는 공간으로 나를 데려가기도 하고, 나의 현실과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을 살아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벅찬 전율과 감동은 마음을 뜨겁게 해준다. 오랜시간 밤하늘을 쳐다보다 보면 누구도 봐주지 않은 별이 내 눈에는 반짝이게 보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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