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켜야 할 것은 내 마음이었다
나는 귀가 얇고, 다른 사람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사는 동안 친구나 지인에게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여러 번 받았다.
한 번 단호하게 거절하면 될 일을, 그걸 못해서 한 번 빌려주기 시작하면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가끔씩은 나의 이런 성격이 이용?당한다는 기분도 든다.
‘얼마나 힘들면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할까.’
‘그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망설였을까.’
이런 생각이 앞서면 큰돈이 아니면 결국 빌려주고 만다.
내가 금전적으로 여유있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불편함을 피하려고 지갑을 열 확률이 높다.
사람들은
“친구나 가족 간에는 돈거래 하지 말라”고.
“빌려줄 때는 받지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하라”고 한다.
그 말이 옳다는 걸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단단하지 않다.
친한 사이의 힘든 상황을 외면하는 건
상대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는 것이라 느껴져
왠지 비정한 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내 형편이 되는 선에서,
‘이 정도는 그냥 줘도 되겠다’ 싶은 금액만 빌려주려 한다.
그리고 혹시 못 받더라도 그 사람을 원망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준이 언제나 같지 않다는 데 있다.
관계에 따라, 감정의 깊이에 따라
‘괜찮은 금액’과 ‘받지 않아도 될 사이’의 경계선이 달라진다.
가끔은 마음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이 사람은 안 받아도 될 만큼의 사이도 아닌데,
내가 너무 쉽게 지갑을 여는 건 아닐까?’
그럴 땐 상대의 사정보다 내 마음이 더 힘들어진다.
사소한 금액이라도, 약속한 날에 갚지 않으면
그날부터 마음이 무거워진다.
십여 년 전, 일을 하면서 알게 된 한 지인이 있었다.
그는 카드값이 부족하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나는 별말 없이 빌려주었다.
그 일은 반복되었고,
갚는 날짜의 약속은 자주 어겨졌다.
결국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그래서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말했다.
“내가 그 금액을 빌려줄 수는 있어.
하지만 받을 때마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
그 일을 이젠 반복하고 싶지 않아.”
그 거절의 말을 들은 뒤, 그는 다시는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잘 지낸다.
또 스물네 해 전, 울산으로 이사 간 아주 친한 지인이 있었다.
그가 어렵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남편의 두 달치 월급을 건넸다.
그때는 나도 넉넉하지 않아
생활비를 은행 대출로 충당해야 했다.
결국 그는 다 갚지 못했고,
우리의 연락도 끊겼다.
나는 오랫동안 그 일을 후회했다.
돈을 빌려준 걸 후회한 게 아니라,
갚으라고 재촉했던 내 마음을 후회했다.
그때는 몰랐다.
받지 못해도 괜찮을 만큼의 사이였다는 걸.
돈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을 굴러가게 하는 윤활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 사이의 신뢰가 섞이면
그 윤활유가 오히려 관계를 미끄럽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 마음이 다치지 않을 만큼의 금액과 관계인지’
생각하고 그 선 안에서만 움직이려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쉽지 않다.
순간의 거절이 어려워,
다시 빌려주고, 또 후회하면서도
같은 일을 반복한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되,
내 마음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우며 살아가려 한다.
결국, 돈보다 지켜야 할 건 내 마음이었다.
경계는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는 장치가 아니라, 내 마음을 지키는 최소한의 선일 것이다
(이 글은 특정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경험과 마음을 돌아본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