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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Jun 30. 2023

빈&파리 기록 - 1

0611

즐거운 마음을 담은 날 것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 오자투성이에 비문이 난무해도 괜찮다. 신바람에 글이 들썩이다 보면, 그 정도쯤이야 뭐.


<0611(한국)>

회사에서 연수의 명목으로 여행비를 지원해 줬다. 본래는 입사 3년 차에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하늘 길이 막히는 바람에 이제야 다녀오게 되었다. 제일 내 말을 잘 들어줄 것 같은 동기 2명과 한 조가 되어 오스트리아 빈과 프랑스 파리를 다녀왔다. 내가 가고 싶다고 조른 곳들이었다. 빈은 고전파 음악가들과 비트겐슈타인의 고향이어서, 파리에는 루브르, 오르셰 박물관이 있어서. 나답지 않게 여기 가자 저기 가자 해대긴 했지만, 역시나 나답게 세부 계획은 딱히 세우지도 않았고, 사실 짐도 전날 밤에 간신히 꾸렸다. 공항 가는 길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아서, 결국 아부지가 출국 날 아침에 태워다 주기로 했다. 물론 아빠가 태워다 줄 것을 기대하고 그런 거긴 하지만.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니 어느새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되었다. 이것저것 신신 당부하던 회사 선임에게 인증샷을 찍어 보내고, 비행기에 올랐다. 빈까지는 약 12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중 3 때 서유럽을 다녀온 이후로는 그렇게 오랫동안 비행기를 탄 적이 없어서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뭐 별 수 있나 하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셋이서 창가 근처에 주루룩 앉았는데, 책을 볼 예정이라 라이트를 켤 것 같으니 내가 창가 자리에 앉겠다고 했다. 화장실 가는 건 조금 불편해도, 중간중간 창문을 올려 바깥도 잠깐 볼 수 있고, 어디든 몸을 기댈 곳도 많아 책을 읽는다는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창가에 앉고 싶었다.


비행기가 뜨고 나서는 신기한 마음에 자리에 부착되어 있는 엔터테인먼트 메뉴를 이것저것 눌러보았다. 22년도에 나온 비교적 최신 영화들을 볼 수 있었고, 클래식 탭에서는 조성진의 브람스와 임윤찬의 베토벤 피아노 곡을 들을 수 있었다. ‘이따 들어봐야겠다’ 하고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강의>를 폈다.


정신없이 책을 읽다 보니 비행기는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대부분 잠을 청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동기에겐 좀 미안하지만 라이트를 켜고 책을 읽었다. 밥 먹는 시간, 잠깐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 도착 전 피아노 곡을 들었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내내 책만 읽었으니까 대략 10시간쯤 읽은 것 같다. 그렇게 읽어댔음에도, 읽는 속도가 느린 탓인지, 책이 너무 두꺼운 탓인지, 여하튼 100페이지 정도가 남아 찝찝한 내 마음을 뒤로한 채 비행기는 빈 공항에 도착했다.


<0611(빈)>

도착하니, 빈 현지 시각으로 저녁 6시 가까이 되어 있었다. 입국 수속은 아주 빠르게 이뤄졌다. 여권을 보여주고 수속 담당자가 내 얼굴을 힐끗 보더니 도장을 찍어줬다. 원래 입국 수속이란 게 이리 빨랐나, 하면서 셋은 지하철을 타고 빈 한복판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빈 거리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더 좋은 단어, 혹은 표현이 있으면 적고 싶은데 떠오르질 않는다. ‘유럽’이란 이미지를 현실에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었다. 건축 양식하며, 길가에 있는 동상들 하며. 원체 내가 고전적인 양식을 좋아하는 지라 눈은 휘둥그레 해지고, 고개는 빠르게 돌아가대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는 저녁을 먹으러 거리로 나왔다.

첫날 저녁은 ‘슈니첼’을 먹었다. 내가 먹자고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베를린에서 먹어본 슈니첼이 인생에서 먹은 것 중 제일일 만큼 뇌리에 박혀서, 빈에 온다면 꼭 슈니첼을 먹고 싶었다. 숙소 오는 길에, 근처에 유명한 슈니첼 프랜차이즈가 있는 것을 보아서, 나오자마자 바로 그 식당으로 향했다. 줄이 조금 있었는데, 셋이 멀뚱멀뚱 서선 밖에 있는 메뉴판을 보 기다리고 있으차례가 왔다.


슈니첼은 맛있었다. 아마 어렸을 때 기억이 미화되었나 보다. 하긴 돈가스가 맛있어봐야 돈가스지. 돈가스는 돈가스 맛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맥주가 더 맛있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든 건가. 그래도 튀긴 음식과 맥주는 맛없기가 어려운 조합이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와선 베토벤 동상을 찾아갔다. 난 보러 갈 거니까, 숙소 들어가서 쉴 사람은 들어가라고 했는데 착한 동기들이 다 같이 와주었다. 이제야 말하지만 사실 나 같은 인간은 혼자 두면 길 잃었을지도 몰라. 일종의 블러핑이었다. 여하튼, 덕분에 베토벤 동상을 무사히 볼 수 있었다만, 해가 진 이후(9시 반이 넘었었다)여서, 선명하게 보진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빈의 첫날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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