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mnogoodnw
Jul 26. 2023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읽다 보면, ‘얘 정말 매력적인데!’ 느낌 오는 캐릭터가 유독 많이 등장한다. 본인의 잘남을 관철하기 위해 사람도 죽이는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 살인마저도 정당화 하는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스메르쟈코프, 남을 주물러대는 즐거움을 알고 있는 <악령>의 스타브로긴 등. 내가 뵈기도 하고, 내가 싫어하는 인간이 뵈기도 하고, 상상 속에서나 마주쳐봤을 법한 인간이 뵈기도 한다. 죽음을 주된 소재로 삼아서 그런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다. 제정신이 아니니 더욱 매력적일 수밖에. 비정상에 눈이 한번 더 가는 법이다.
이번엔 도스토옙스키 소설을 통틀어, 아니, 많지도 않지만 읽어본 소설을 통틀어, 처음으로 ‘얘처럼 살고 싶다’라 생각되는 캐릭터를 만났다. <백치>의 백치, 므이쉬킨 공작. 도스토옙스키는 아름다운 인간의 묘사를 이 소설의 주된 의도로 삼았다는데, 분명히 그는 성공했다. 너무 아름다워서, 텍스트에서 향이 난다. 그리고 너무 아름다워서, 내 추한 모습이 더 추해 뵌다. 사람이 죽어나질 않아 그런가, 이야기가 소용돌이치진 않지만, 백치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이 이야기는 대단한 힘을 갖는다.
백치는 정직하다. 순박하다. 선량하다. F(백치)에서 모든 가능한 F는 백치미 중의 미, 아름다움의 속성을 갖는다. 인생을 통틀어 단 한 번이라도 솔직하고 싶다. 내 글이 맛없는 이유는, 내 음악이 지저분한 이유는, 기술의 부족함도 분명 있겠지만, 백치가 되지 못해서. 백치미를 지니지 못해서다. 향이 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악취만 풍기는 내 모습이 너무 대조적이어서, 소설이 참 슬프다.
<백치>는 백치가 백치가 되며 마무리. 향을 끝까지 짜낸다. 나를 짜내면 어떤 꾸정물이 나올까?하여튼, 도스토상은 천재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