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선 침대에 대자로 뻗는다. 읽던 책을 가방에서 꺼내 침대 위로 올려놓고는, 핸드폰을 집어 든다. ‘게임하고 있나?’ 다중 전화 프로그램에 들어가니, 친구 둘이서 함께 게임 중이다. 대화에 참여하고서는 공유되는 게임 화면은 꺼버린다. 1년 동안 수백 판은 보았으니, 더 이상 게임 화면은 볼 필요가 없다. 괜히 보아야 답답함만 맺힐 뿐. 게임이 잘 안 풀리는지 둘 다 조용하다. 핸드폰을 옆에 던져놓고는 책을 읽기 시작한다.
“동우야! 봤니?!” 스피커 너머로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핸드폰 화면을 켜보니 홀로 상대 캐릭터를 죽였다. 책 보느라 못 봤어, 하니, 너 집중 안 하냐란 원망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게임하는 사람도 아닌데 내가 왜 집중해야 하지? 물으니, 나에게 칭찬 듣는 맛에 게임한단다. 얘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하곤, 허허, 그래. 다시 책으로 눈을 돌린다. 어차피 네가 상대 캐릭터를 죽이는 장면은 볼 수 없어. 나는 다른 친구 화면으로 게임을 봐야 하잖아. 하 씨, 하곤, 다시 조용해진다. 화면을 송출해 주는 친구는 또 답답한 짓만 하고 있다. 어후 저 답답이는 수천 판이 지나도 바뀌는 게 없을 게다.
다음 날 단톡방에선 전 날의 게임에 대한 성토대회가 벌어진다. 두 달 후면 서른 중반보다 서른 후반이 가까워지는 인간 둘이서, 세상 무엇보다 게임이 재밌을 고등학생들보다도 더 진지한 태도로 잘잘못을 가린다. 심지어 이 인간들은 상위 90퍼센트, 그러니까 10명 중에 9등의 실력을 갖고 있으니,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이자마냥 새로운 잘못을 낳는다. 이걸 고쳐야 한다, 저걸 고쳐야 한다, 매일 비슷한 말이 오고 가도,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소위 ‘현웃’ 터진다. 회사서 내 옆에 앉은 사람은 또 실없이 웃나, 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실다운 웃음을 지었다.
칭찬을 갈구하는 친구가 근무 시간 내내 게임 관련 영상의 링크를 단톡방에 올리더니만, 게임 그만두지 못하겠단다.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대체 어떤 놈 때문에 게임을 시작하게 된 건가, 공허한 외침을 내지른다. 답답한 짓만 해대는 다른 친구가, 그 말을 듣더니만, ‘확실하게 가스라이팅은 동우가 함.’ 이 인간들이 합심해서 나를 공격한다. 내가 주는 당근과 채찍이 게임을 끊지 못하게 만들었다나. 처음부터 확실하게 재능 없음에 대해 말해주었다면 본인이 이렇게 게임을 하지 않았을 거란다. 그거 말곤 할 것도 없는 인간이 이렇게 책임을 전가시키다니.
원하는 대로 넌 재능이 없다,라고 말했더니만, 어느샌가 당근을 기다리고 있다. 본인이 내 당근의 내용을 예측하곤 예상 답변이라며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어휴 기대하지 마라, 다시 한번 재능이 없음을 말한다. 그래도 마음이 약해져서, 당근을 좀 나눠주니, 신나선 저녁 내내 달릴 거란다. 어라? 답답이가 맨날 틀린 말만 하는 줄 알았더니, 통찰력 있는 말을 했다. ‘확실하게 가스라이팅은 동우가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