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따돌림

가정폭력, 깊고 넓은 구덩이

by 가람

성인이 되고 심리상담을 진행했다. 가정폭력을 경험하며 불안정 애착이 형성됐음을 깨달았다. 이는 유년시절부터 친구관계에도 장애를 초래했다. 그저 친구를 사귈 능력이 부족한가 생각해 왔는데, 이 또한 가정폭력 잔상이었음을 알았을 땐 한층 더 씁쓸했다. 만약 가정이 조금 더 안정감을 주었다면 내 학창 시절은 어땠을까 싶다.


불안정 애착은 '진정한 내편'을 가지고 싶은 욕망으로 자라났다.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들은 여러 그룹으로 친구가 나뉘었다. 나도 한 그룹에 속했다. 그룹엔 소위 리더를 맡은 영향력이 큰 A가 있었다. 아이들은 A가 하자는 대로 하고, 가자는 대로 갔다. 나 또한 A의 법칙을 따르며 무리에 속할 자격을 얻었다. 안정적이고 즐거운 나날이었다. 어느 날 A는 그룹 중 한 명인 B를 뺀 나머지를 불러 모았다. B의 요즘 행동이 마음에 안 든다며 뒷담을 했다. B를 빼고 급식을 먹는 날, 하교하는 날이 잦아졌다. 아이들은 B를 싫어하지 않았다. A에게 밉보이면 본인도 그렇게 될까 두려워 B를 멀리해야 한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만 11년 인생 중 처음 목도한 따돌림이었다. 다시 B와 잘 지낼 수 있도록 A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다. A에게 다들 B를 싫어하지 않음을 얘기했고 우린 B와 잘 지내고 싶다고 얘기했다. 내가 아는 진실은 그것이었다. 진실을 밝히면 이전처럼 잘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것이 큰 오산임을 알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평온히 지내길 바란 아이들은 A에게 본인들의 속마음을 내 마음대로 전한 것에 화가 났다. A는 자신과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물었고, 아이들은 내 독단의 생각이라며 입을 모았다. 순식간에 나도 그 무리에서 제외됐다. B는 자신을 도와줘서 고맙다고 편지를 써줬다. 글쎄, 난 B를 도와주진 못한 것이라 생각했다. B의 상황은 그 뒤로도 나아진 것이 없었다. B와 간간히 이야기했고 체육시간에 짝을 했고 집을 같이 갔지만, 애매한 감정들이 앞서 우린 깊은 친구가 되진 못했다. 그렇게 우리 둘은 반에 친구가 없는 아이가 되었다.


집에서 충족되지 못한 안정감을 친구들에게서도 채우질 못하게 됐다. 내 마음은 날이 갈수록 조갈이 났다. 혼자 밥을 먹어야 했던 급식 시간이 가장 두려웠다. 쉬는 시간이 오지 않길 바랐다. 쉬는 시간이 되면 반 친구들이 혼자 앉아있는 내 모습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따돌림당하는 모습을 들키기 싫었다. 쉬는 시간 내내 엎드려 잠을 자는 척을 했다. 수업시작종이 울리면 선생님께서 빨리 들어오시길 목 빠져라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6학년이 되었다. 새로운 시작을 할 기회였다. 애석하게도 그 시절엔 친구 관계가 중요한 화두였던 만큼, '은따 강다솜'은 전교에 소문이 나있었다. 처음 보는 친구들로 가득한 새 학년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날 알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은 좋아하질 않았다. 따돌림을 당한 아이와 친하게 지내면 본인마저 따돌림을 당하기 쉬운 시절이었다. 학교에서마저 부정을 당하기 시작했음을 확신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등바등 몇 친구들에게 눈치 없는 척 붙어 다녔다. 본인들의 휴대폰 연락처를 1년 내내 알려주지 않으려 해도 그들의 마음을 모른 척했다. 필통을 두고 온 날에 그들에게 필기구를 빌리려 해도 필통을 손으로 가리며 본인들 필통엔 아무것도 안 들었다며 빌려줄 것이 없다는 거짓말을 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그들 옆에 있었다.


집에서 친구들 얘기를 한 적이 없자 이상함을 느낀 엄마는 친한 친구가 있는지 물었다. 망칠 대로 망친 것 같은 학교 생활을 엄마에게 꺼내보이기 죄스러웠다.

"당연히 있지. 근데 사람이 100의 수치만큼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다 치면, 난 1 만큼씩 100명과 친해."

란 에두른 변명을 했다. 엄마는 그렇게 지내면 안 된다고 나무랐다. 친한 친구는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이 대화를 들은 아빠는 혼을 냈다.

"네가 지금 나이 때엔 공부는 못해도 돼. 친구 관계는 무조건 잘해야 해. 너 나이 때엔 그게 전부야."

그 말을 듣곤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 문을 잠그고 소리 없이 오열을 했다. '엄마 아빠 미안해. 못난 딸이어서 미안해. 난 친구도 없어. 나한테 딱 하나 바라는 친구 관계도 못해내서 미안해.' 자책했다. 내가 힘든 것도 힘든 것이었지만, 부모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는 것이 비참했다. 그 뒤로도 내 친구관계는 외로움 투성이었지만, 그들을 실망시키는 괴로움이 더 컸기에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외롭고 고된 싸움을 해온 그때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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