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깊고 넓은 구덩이
"애들이 너 따래. 놀지 말래. 난 너 한 명보다 여러 친구들이랑 친한 게 더 중요해."
학년 초에 친해지고 싶어 다가간 친구에게 들은 말이었다. 집과 학교가 세상의 전부이던 그 시절 안식처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체 어쩌라는 거야?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란 물음이 나를 가득 채웠다.
은따의 경험으로 마음속 결핍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때 중학생이 되었다. 여러 초등학교 학생들이 배정된 만큼 내 소문도 희석됐다. 이번엔 꼭 '온전한 내 편'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개학 첫날 옆자리와 대각선, 뒷자리에 앉은 세 친구들에게 말을 걸었다. 우린 네 명의 한 그룹이 되었다. 난 미화부장이었다. 미화부를 이끌어 학급을 꾸밀 재료를 사러 대형 문구점에 방문했다. 구입을 마치고 나오는데 사장님께서 한 친구 C를 붙잡았다. 가방을 열어보니 훔친 문구류가 들어있었다. 사장님은 C의 부모님께 전화를 걸으셨다. C를 제외한 우린 학교로 돌아왔다. 다들 놀란 눈치였다. 한 순간의 실수였을지 몰라도 C에게 실망을 했다.
5학년때 따돌림을 주도한 A가 생각났다. 나를 포함한, A를 따르던 친구들은 따돌림 피해자 B를 싫어하지 않았다. 본인들도 똑같이 당할까 두려워 A를 따랐던 것이다. A에게 우리의 마음을 전달하면 B와 다시 잘 지낼 줄 알았다. 친구들의 동의 없이 A에게 우린 B를 싫어하지 않음을 전달했었다. 이에 친구들은 내게서 마음을 돌렸고 나 또한 따돌림을 당한 순간이 기억났다. 그것이 진실임에도 전달하면 안 되는 것이 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때의 경험을 되짚으며, 지금의 이 일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친해진 세명의 친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드디어 찾은 안정감을 만끽하며 하루하루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내나 싶었다. 2학기가 시작되며 우리 그룹에 C가 갑자기 합류했다. C에게 실망한 적이 있어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를 친구들에겐 말할 수 없었다. 5학년때 따돌림 당했던 기억이 나 두려웠다. 동시에 C에게 내 사람들을 빼앗길 것 같았다. C 때문에 내 안식처가 불안정해질까 두려웠다. 이미 결핍에 잠식된 난 세명의 친구들을 일반적인 친구로 느끼질 못했던 것이다. '내 편'을 빼앗길까 두려웠다. 세 친구들에게 타당한 이유를 대진 못한 채 C의 합류가 내키지 않는다고 얘길 했다. 세 친구는 내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C가 나 빠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내 세 친구는 C에게 내가 본인을 불편해함을 얘기했다. C는 서운해했고 세 친구는 내가 아닌 C와 함께 다니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난 또 혼자가 됐다.
5학년때 날 따돌렸던 A가 생각났다. A도 어쩌면 나처럼 불안정 애착을 가지고 있진 않았을까. 자신의 안식처를 만들고 싶었던 걸까. A 때문에 은따의 트라우마가 생겼었다. 그런 내가 중학교 1학년때 A와 똑같은 행동을 저질렀다. 결과는 달랐지만 분명 A의 악을 학습하고 되풀이했다. 한때는 C의 비밀을 지켜주느라 따돌림을 또 당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러한 악을 경험해 놓고 학습한 내게 내려진 벌이었다고 생각한다.
난 또다시 급식을 혼자 먹고 쉬는 시간엔 잠자는 척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싫었다. 살고 싶지 않았다. 어린 동생을 위해 아침마다 틀어져있던 TV에서 항상 나오던 '꼬마산타 니콜라스(2007)-EBS'주제곡이 노이로제가 됐다. 그 노래를 들으면 지옥이 시작됐다. 하루가 시작되는 게 싫었다. 영겁 같던 시간이 흘러 중학교 2학년이 됐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처럼 내 은따 소문은 전교에 퍼져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집을 나서며 귀가를 할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날이 쌓여갔다. 혼자 다니는 것보다 외로움이 당연해져 감이 괴로웠다. 이런 내게 한줄기 빛이 내려왔다. 큰 키 덕분인지 농구를 꽤나 잘했다. 2학기때부터 시작된 체육시간 농구수업에서 만점을 받았다. 당시 학교 여학생들 중에서 농구를 가장 잘했다. 반 대항을 할 때면 항상 대표로 뽑혔고 상대팀들은 나부터 견제를 했다. '은따 강다솜' 이후로 '농구 잘하는 강다솜'이란 첫 정체성이 생긴 사건이었다. 점심시간과 방과 후 운동장에서 농구를 했다. 자연스레 농구부 남학생들과 가까워졌다. 여학생들과는 쉽게 어울리지 못했지만 그들과 함께 할 땐 마음 편히 웃고 장난치고 운동할 수 있었다. 그들 덕분에 2학년 때 조금은 덜 힘들게 살았다. 함께 꾸준히 농구를 했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농구부 학생들이 선도부가 됐다. 아침에 등교하는 학생들의 복장검사를 실시하는 등 함께하는 일이 추가됐다. 안정적인 소속감을 느꼈다.
덕분에 3학년이 돼선 여학생들과의 관계도 조금 나아졌다. 2학년 때 사이가 틀어진 C와 창의재량수업의 시간이 겹쳤고, 종종 내 실내화 가방을 자기 자리에 숨겨두는 행동을 했었지만. 크게 이렇다 할 따돌림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이때 친해진 친구들이 성인이 돼서도 인연을 지속해오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되었다. 나와 친구가 된 이상 나에 대한 소문은 꾸준히 그들에게 들렸을 터였다. 어떠한 소문에도 나를 나 그대로 봐주던 친구들이었다. 내성적인 성격에 조금이나마 '학습화된 외향력'을 주입시켜 준 밝고 쾌활한 친구도 있었고, 따스한 마음으로 내 결핍을 안아준 친구도 있었다. 그들은 소중한 인연이자 은인이다. 내면을 보듬는 과정 중 그들의 존재가 아직도 내 안에 있음이 느껴진다. 그들이 있었기에 자애의 시작을 조금 더 앞당길 수 있었다. 그들에게 도움을 받아 생존할 수 있었다. 조금 더 평온하고 온전한 하루를 보내게 되어 그들에게 보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