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끌려나가 꽃다발로 맞은 날

가정폭력, 깊고 넓은 구덩이

by 가람

"강다솜 너 나와!"

아빠의 고함이 불 꺼진 거실에 울려 퍼졌다. 잠결임에도 지옥이 시작됐음을 직감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안고 헐레벌떡 침대에서 내려와 실내화를 신었다. 급한 마음에 실내화가 자꾸 벗겨졌다. 결국 실내화를 신지 못한 채 맨발로 지옥을 마주하러 달려 나갔다.

중학교 3학년때였다.

원래라면 MP3을 들으며 잤을 터였다. 그날은 잠들기 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임을 느꼈다. 침대에 누워 귀에 꽂은 이어폰을 뺐다. 별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며 잠을 청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아니나 다를까 일이 터진 것이다.


"아빠 미안해. 자다가 일어나서 실내화가 안 신겨져서 빨리 못 나왔어."

그가 화내는 이유가 이것이 아님을 알았지만 조금이나마 진정시키고 싶었다.

"넌 네가 뭐라도 되는 것 같지? 너 진짜 아무것도 아니거든? 네가 공부를 하면 얼마나 한다고, 네가 그렇게 잘난 것 같지? 내 전화에 마지막 대답을 안 하고 끊어? 내가 아주 상전을 모시고 살지?"


전말은 이러했다. 아빠와 엄마는 저녁에 외출을 했었다. 난 엄마의 휴대폰으로 연락을 했다. 엄마는 차에 휴대폰을 두고 내렸다. 전화벨이 울리자 차에 있던 아빠가 받았다. 난 엄마를 찾았고, 아빠는 엄마의 상황을 말해줬다.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통화를 종료했다. 마지막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밤에 귀가한 아빠의 표정은 매우 안 좋았다.

"다녀오셨어요. "

얘길 해도 응하지 않고 빠르게 안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난 자다 끌려 나와야 했다.


아빠는 주방으로 가 유리컵들을 내게 던졌다. 손으로 방어했지만 몇 개의 컵에 몸과 이마를 맞았다. 벽과 바닥에 부딪혀 깨지기도 했다. 분이 안 풀렸는지 아빤 내게 달려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발로 복부를 찼다.

"너, 네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 하나쯤 인생은 끝나게도 할 수 있다고. 어디 얼굴 멍 투성이로 해서 학교에 얼굴 못 들고 다니게 해 볼까? 네 학원 선생들한테 개망신당하게 해줘 봐?"

난 울며 잘못했다고 했다. 아빠는 의자를 들어 내 얼굴을 찍어 내리려 했다. 이내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당신이 얼마 전 사온 장미 꽃다발을 들어 내 머리를 내리쳤다. 머리에 맞은 꽃다발은 이내 꽃 잎들이 거실 한 복판으로 퍼져 떨어졌다. 꽃을 사 온 당신은 그 꽃으로 날 가격하리라 예상했을까. 줄기가 뭉쳐진 꽃다발로 맞으니 꽤나 아팠고 꽃 잎들은 내 지옥과 다르게 어처구니없도록 로맨틱했다.

다음 날 만신창이의 몸으로 등교했다. 때때로 종아리의 멍이 교복치마에 가려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를 가리고자 난 전교에 몇 없던 교복바지 입는 여학생이 됐다. 내 무릎에 앉길 좋아했던 친구는 그날도 평소처럼 내 무릎 위에 앉았다. 무방비 상태였던 난 멍이 눌려 고통스러웠고 비명을 질렀다. 친구는 놀랐지만, 내 가정사를 알던 터라 이내

"그날이야?"

하며 안쓰러워했다. 그 당시 많이 듣던 노래가 '검은 행복-윤미래(2007)'였다. '나는 내 안에 기대 너무나도 참혹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음악이 그립다고 탈출을 시도해 no 붙잡힌 나는 밤마다 기도했고 드디어 난 이제 자유의 몸'이란 가사. 미래엔 지금보다 덜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했다. 자유의 몸이 된 윤미래가 부러웠다. 노래 마지막에 나오는 웃음소리가 슬퍼질 만큼 부러웠다.

엄마의 말처럼 내가 좀 더 애교 많은 딸이었다면 달랐을까. 아빠와 통화에서 마지막 말에 대답을 하고 끊었더라면 어땠을까. 귀가한 아빠에게 아양을 떨었다면 그날은 평온했을까. 지금의 난 달라졌을까. 가정 폭력이 정말 잔인한 점은 자신의 뿌리부터 갉아먹게 한다는 것이다.


태초부터 문드러진 내 마음은 이후 어떠한 줄기와 잎을 뻗어도 어둠이 묻어있다. 가정폭력에 의해 형성된 불안정 애착은 친구 관계에서도, 연애와 사회생활에도 부작용을 초래했다. 연재를 시작하며, 글에 첨부할 어린 시절 사진들을 찾아봤다. 중학교 시절엔 친구와 함께 찍은 졸업앨범 사진 외에는 웃고 있는 사진이 없었다. 언제나 위축된 모습만 있었다. 당시 친구 관계도 원활하질 못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거부당한 기억이 있어 더욱 마음을 열기 어려운 아이가 됐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아빤 '개긴다, 뻣뻣하다'라며 화를 내고 폭력을 가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무뚝뚝한 딸은 아니었다. 동생처럼 귀여움과 사랑만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나도 누구의 앞에서도 당당했고 맑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어린 내 숨통을 조금씩 옥죄어 온 그들. 그들이 만들어낸 내 모습들은 그들에게 외면당했다.


나를 세상에 있도록 한 사람들에게 부정을 당했다. 이에 익숙해졌다. 스스로 긍정하는 법을 잊어갔다. 부정하는 것에 세뇌당했다. 자책에 능숙해졌다. 외로움이 습관이 됐다. 이 슬픔의 굴레에 허덕여 살아갈수록 그들을 원망했다. 그럴수록 사람을 미워하는 데에도 큰 힘이 드는 것을 경험했다. 원망이 없는 삶이 궁금해졌다. 단 하루만이라도 내게 그들의 그림자를 걷어내 나로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들이 밉지만 그들을 미워하는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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