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두 살 강다솜입니다.

가정폭력, 깊고 넓은 구덩이

by 가람

안녕하세요, 두 살 강다솜입니다.



자기소개 첫마디를 하면 사람들 눈엔 궁금증이

생긴다.

‘두 살이라고?’


난 가정폭력 생존자다.

이십여 년간 지속된 끔찍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집에서 하루빨리 나만의 평온한 가정을 만들어 도망치고 싶었다. 아빠와 딱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연애를 했다. 스물여덟의 겨울, 트라우마로 인한 공황장애로 퇴사를 했다. 지금은 내 마음 돌보기에 집중해 산지 2년이 된, 두 살 강다솜이다.

첫 폭력은 다섯 살 때였다.

어린이집 짝꿍이 연필을 선물해 준 날이었다. 이를 본 아빠는 자고 있는 날 깨웠다. 이내 차분히 내게 도둑질을 했냐며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하자 아빠는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도둑질과 거짓말이라고 했다. 거짓말을 하면 크게 혼을 낼 것이라며 도둑질을 정말 한 것이 아닌지를 다시 한번 물었다.

어렸던 나는 험악한 분위기에 도둑질을 했다고 거짓 실토를 했다. 아빠는 고함을 치며 내 배냇머리를 잡았다. 그리곤 밥상으로 사용하던 접이식 헬로키티 상을 발로 차 두 동강을 냈다. 엄마는 말렸지만 아빠는 막무가내였다. 다음 날 엄마는 그 친구에게 “네가 연필을 선물해서 아빠한테 혼났다.”라 말하며 연필을 돌려주라고 했다. 이날 이후에도 발생한 폭력들은 지금까지도 내게 뿌리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화목한 가정의 정의는 주관적이지만 그 범주에 내 환경이 속하지 못함을 안다.

한때는 화목한 가정의 자식들처럼, 부모가 내 세상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기에 폭력이 발생한 날엔 내 세상이 붕괴되는 것 같았다.


“부모가 체벌이 아닌 이유 없는 폭행을 한다면 반항할 거야.” 고등학생 때 친구가 한 말이다.

그 순간 내 부모가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그들을 부정하는 순간 여태의 삶이 끝없는 나락으로 빠질 것이 느껴져 두려웠다.


대학생이 되며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10대 시절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생겨났다. 그럴수록 내겐 남다른 과거가 있음이 확실해졌다.

마음의 병이 있음 또한 확신했다. 미뤄왔던 과거와 마음들을 털어내 마주 보았다. 그들은 동생에겐 일절 손찌검과 윽박이라곤 없었다. 집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는 내가 원인으로 결론이 났다. 비하 발언을 들으며 자랐다. 힘들 때 기댈 사람이 없었다. 기억들을 마주 볼수록 내 인생이 억울해졌다. 마치 신데렐라 같았다. 폭력에 지친 어느 날 할머니께 전화해 부모가 날 원해서 낳은 것이 맞는지 물었다. 혹시 혼전 임신이라 날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는지. 전혀 아니라 했다. 혼후 임신이며 계획해 출산한 것이라 했다. 그렇다기엔 내 인생은 드라마 속 비중 없는 조연 같았다. 이런 내 인생은 싫다며 다른 드라마를 틀 수도, 다른 역할을 배정받을 수도 없다.


가해자인 아빠, 나보다 아빠를 더 사랑해서 방관한 엄마. 부모가 처음이었기에 당신들을 이해하라던 그들. 엄마는 피해 사실들을 집 밖에서 말하지 말도록 신신당부를 했다. 내 얼굴에 침 뱉는 일 이랬다. 사회는 차갑기에 잠시 날 동정하는 듯해도 ‘집에서도 대우 못 받는 애’라며 무시하고 약점을 이용할 것이라 했다. 밖에 나가면 내 편은 없고, 자기라서 날 생각해서 해주는 말 이랬다. 아빠와 사이좋게 지내진 못해도 앞에서 웃어주며 애교 부리는 연습을 하라 했다. 그렇게 아빠에게 필요한 것들을 꾀어내며 여우같이 편하게 좀 살라 했다. 분가하는 것이 제일 확실한 방법이겠지만 능력이 안 된다면 아빠와 척져봐야 내 손해라는 것이다.


난 태어날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자식이 됐는걸.

부모가 될 준비를 할 당신들은 나보다 여유가 있지 않았을까? 나이만으로 따져 봐도 내가 2n 살 어린데. 당신들을 이해할 아량이 있어야 할까. 정녕 내 편이라면 본인을 의지하도록 가스라이팅 할 것이 아니었다. 부부간 대화를 통해 내 양육 방식을 개선해야 했다. 이토록 말도 안 되는 우리 집 법칙 하에 집이란 아빠에게 맞지 않기 위해 비위를 맞춰야만 하는 공간이 됐다. 사회에 찌들어도 돌아가 편히 쉴 집이 없었다. 아빠가 무섭고 싫었다. 어색하고 뻣뻣해졌다. 이런 마음들을 아빠는 언제나 눈치채고 괘씸하다며 또다시 폭력이 시작되곤 했다.


이 집에 날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던 일은 그저 이 집을 벗어날 능력이 생기기 전까지 아슬아슬한 하루살이 인생을 사는 것이었다. 부모의 역할을 하지 못한 그들이라 스스로에게 사랑을 가르쳐야 했다. 아빠 역시 가정폭력 가정에서 자랐다. 당신은 여러 방법으로 맞아봐 어떻게 때려야 더 아픈지 잘 안다고 얘기하곤 했다. 윗세대의 결핍이 내게 전해졌다. 나의 결핍이 내 주변과 후세대에 전해지는 것이 두렵다. 그들에게 누가 되기 싫어서라도 나를 건강하게 만들고 싶었다. 사실 더 큰 이유는 하루라도 마음의 병 때문에 힘들지 않은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였다.


자식 사랑으로 가득한 남들을 볼 때면 억울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이 결핍은 나를 꽤 단단하고 건강한 내면을 가꾸도록 인도했다. 내 부모는 그들의 결핍을 다스리지 못했다. 결핍을 인지하지도 못했기에 치료 또한 생각을 못 했다. 때문에 그들의 잔상을 내게 남겼다. 나는 그들보다 건강한 정신을 가졌고 성숙하며, 강인하다.


미성숙한 그들은 폭력의 기억이 없다는 말로 오늘까지도 내게 이중 상처를 주고 있다.

내 마음속 멍투성이인 내가 가여워 글을 쓴다. 그리고 나 같은 생존자들에게 내가 나아진 과정들을 나누고 싶다. 평온한 하루를 간절히 원했다. 절박한 마음으로 책들을 읽었고 심리 상담을 받았다. 흉터를 바라보고 타인에게 꺼내어 보이는 연습을 했다. 상처의 깊이는 변하지 않지만, 그 흉터를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지자 요즘의 난 꽤 살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