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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Sep 04. 2023

내가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라고 말해주라

가정폭력 생존자의 절박한 자애

꼭 쓰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 대학생시절 연애와 친구 관계이야기였다. 정확히는, 공개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미 글은 3주 전에 썼으니까. 마음속 엉켜있던 타래를 시원히 뱉어냈다.


그것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3주의 시간 동안 퇴고를 했다. 여태 쓴 글들 중 가장 마무리하기 어려운 글이었다. 대학생 때 인연들과는 아직도 지인이 많이 겹친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돼선 안 됐다. 어떻게 그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몇 날 며칠을 끙끙 앓다 지인에게 자문을 구했다.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나라면 긁어 부스럼일 일은 아예 안 쓸 것 같아. 애초에 부모님에 관한 글도 안 썼을 것 같아."


'아니. 난 써야겠는데?'

란 마음이 대번에 들었다. 불쑥 튀어나온 그 마음에 놀랐다. 에너지가 강한 마음이었음에 반하여, 존재의 타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몰랐지만, 난 꼭 써야만 했다. 대체 왜? 왜 써야만 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대학생시절의 얘기보다 이 마음의 근원에 집중하게 됐다.


내가 쓰고자 했던 글의 결론은 이러했다. 그들은 내게 첫사랑 같은 존재였다. 가장 서툰 시기에 만나 깊이 사랑한 사람들. 그에 반해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마음을 표현받아본 적도, 내 마음을 표현했을 때 따스히 받아준 사람도 없었기에.


내가 좀 더 빨리 마음의 병을 알아차렸다면. 그렇게 내가 조금 더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면 그들을 잃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들과 멀어진 후 6년간 2주에 한 번씩 그들의 꿈을 꿨다. 언제나 그들에게 울며 사죄하는 꿈. 사실 난 당신들과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며 절규했다.



3주간 골똘히 마음을 들여다본 결과, 이러한 글을 쓰고 싶은 이유를 찾았다. 내 마음의 본질적 외침을 바라보게 됐다. 이젠 이미 써둔 뒤 퇴고를 마치지 못한 글을 놓아줄 수 있게 됐다.


그보다 요즘 찾아낸 '반드시 써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쓰고 싶다. 애초 내 상처와 트라우마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이유에 대해선 명확히 알고 있었다. 나와 같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상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랐다.


그 시작은 나부터. 상처를 있는 그대로 마주 보는 내 모습에 다른 사람들도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들 또한 털어놓고 싶을 때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엄마가 내게 주입한 상처는 약점이 되니 숨겨야 하는 세상. 그 세상에 저항하고 싶었다. 내가 만난 세상은 엄마의 말보다 따듯한 곳이었다. 내 마음을 따스히 안아준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나와 같은 상처 입은 사람들을 따스히 안아줄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마음이 복잡할 때면 그 원인에 대해 글을 썼다. 감정의 늪에 허덕이다가도, 원인과 감정을 한 발자국 떨어져 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원인과 감정을 분리해 인식할 수 있게 됐다. 글을 쓸수록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는 요즘 이런 방식으로, 상처에서 벗어나 차분함을 갖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일까.


이것 또한 이유에 포함되긴 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였다면 개인적인 글, 일기만 써도 됐을 터인데, 혼자 읽고 쓰는 일기로는 부족함을 느꼈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나는 왜 공개된 글을 쓰는가.


이 또한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내게 가해한 일들 대부분의 기억이 없다. 나까지 이 기억을 잊는다면, 내 고통의 기억들은 가장 고독한 영면을 맞을 것이다. 너무나 외로웠던 나의 어린 시절에 나까지 가해할 순 없었다. 내가 알던 이유는 이것이 전부였으나,  '정말 그뿐인가?'

란 생각이 들었다. 명쾌한 답이 아님을 느꼈다.



마음 더 깊숙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는 심리상담 중 대학생 시절 인연들에 관해 이야기를 하며 알게 됐다.


"그 시절의 제 얘기를 꺼내고 싶어요. 하지만 친구들과 관련이 있어서, 어떻게 해야 그들의 감정이 상하지 않을지 많이 고민돼요. 지인이라면 어떻게 할지 의견을 물어봤는데, 긁어 부스럼을 만들 것  같아서 아예 쓰지 않을 것 같대요. 애초에 자기였다면 부모의 이야기부터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 의견은 제게 설득력이 전혀 없었어요. 저는 꼭 써야만 되겠거든요."


"왜 써야만 할 것 같을까요?"


"... 그들에게 내 마음은 사실 그게 아니었다고 얘기하고 싶은 것 같아요."


"이전에 그 친구분들이 2주에 한 번씩 꿈에 나왔다고 하셨는데, 아직도 그런가요?"


"아뇨. 6년 동안 그랬고 지금은 안 그래요. 그 친구들 중 한 명에게 할 얘기가 있으니 만나달라고 했어요. 그 친구는 절 자꾸 피했어요. 끝내 약속을 잡았지만, 당일 약속 취소를 했어요. 할 얘기가 있다면 문자로 얘기하랬고요. 제가 전달할 마음들은 문자로 다 담아내기 어려웠고, 아주 간략히 마음을 전달했어요. 그 친구와 관계가 나아지진 않았지만, 그 뒤론 더 이상 꿈에 나오지 않아요."


"그 친구분들과 사이가 멀어지기 전엔 본인과 성향이 아주 잘 맞는 사람들이었나요?"


"음, 아니요. 전 내향적인데 그 사람들은 외향적이어서 힘든 때도 자주 있었어요. 그들이 싫다는 건 아니었는데. 잘 맞았던 것 같진 않아요."


"그분들 외에 잘 안 맞았던 사람들이거나, 이미 멀어진 사이임에도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 한 적이 있으셨나요?"


"네. 초등학생 때 은따를 당했을 때, 중학생 때 친구들 무리와 멀어졌을 때 전부 그랬어요. 사이가 틀어진 그 당시엔 오해를 풀고자 대화를 시도한 것이라 생각하고요. 제가 말씀드리는 건 그 뒤로 6개월~1년 정도가 흐른 뒤에 그들에게 손편지와 문자로 '그때는 내가 미안했다.'라고 했어요. 그리고 대학생 시절 6년간 연애한 애인과는 잠수이별을 당하며 헤어졌고, 3~4년이 흐른 뒤 제가 전화했어요. 내 20대 초반을 함께해 줘서 고마웠다고. 많이 고맙고 미안했다고 했어요. 통화를 하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어요. 그 사람도 제게 고마웠고 미안했다고 했고요. 각자의 삶을 응원했어요. 아! 이것도 해당되려나요? 최근에 택배 주소지를 도로명주소랑 지번주소 반반씩 섞어 적어서 택배 기사님께서 집 주소를 똑바로 적으라고 화내셨었는데요. 전화 통화를 끊고 몇 분 뒤에야 상황 파악이 돼서 기사님께 다시 전화를 걸어 사과드렸어요. 이런 제 모습을 본 지인은 '보통이라면 그렇게까진 안 할 텐데'라며 신기해했고요. 만약 이것도 예시에 해당이 된다면, 일상 중 이러한 경험이 굉장히 많아요. 제게 누군가 조금이라도 서운해할 상황이라면 신경이 쓰여요. 누군가가 절 미워할 수 있는 상황이 두려워요."


"상담을 진행하면서 그동안 하셨던 이야기들의 방향성이 두 가지로 정리돼요. 한 가지는, 다솜님은 부모님께 상처를 입으셨어요. 부모님께 사랑을 받고 싶으셨고, 인정을 받고 싶으셨던 마음을 부모님께 충족이 안되셨어요.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부족한 사랑을 받고자 노력하신 것으로 보여요. 상처에 관한 글을 쓰시는 이유도 같은 이유로 보여요. 부모님께 받으셨던 상처를 부모님께 치유받지 못하셨어요. 어머니께선 오히려 그 상처를 숨기고 잊으라고 말씀하셨고요. 얼마나 아프고 힘드셨을까요. 부모님께 치유되지 못한 상처를 다른 사람들에게라도 털어놓고, 공감과 치유를 받고 싶으셨을 것으로 보여요. '나 꽤 괜찮은 사람이지? 나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지? 나 미워하지 말아 줘.'라 말씀하시는 거죠. 사실은 부모님께 듣고 싶었던 얘기인데. 다른 곳에서라도 그 얘기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보여요. 그게 마음이 너무나 아파요. 나머지 한 가지는 한창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자존감을 키울 시기에 사랑대신 상처를 받으셨어요.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섬세한, 건강한 까탈스러운 자아와 성격을 가지게 된 가능성이 커 보여요. 비유하자면 미식가인 거죠. 여태 만나오셨던 사람들 중 딱 맞는, 편안한 성향을 찾기 굉장히 어려우셨을 거예요. 그럼에도, 본인과 잘 맞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쉽게 끊어내지 못하셨을 거예요. 주변에 사람이 없어 외로우셨던 시절이 길었기에.  모든 관계 하나하나가 소중하셨으니까요. 미식가이지만 너무 허기가 져서,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어도 억지로 먹는 것에 비유할 수 있어요.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해 본 경험이 거의 없으셨기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원만한 관계는 힘드셨고 애인 관계도 편안하지 못하셨어요. 그럼에도 그들과 멀어지고 싶진 않으셨을 테고요. 엉킨 관계를 풀어낸 뒤 다시 잘 지내본 경험도 없기 때문에 사이가 틀어진 친구와 애인과 관계회복이 어려우셨을 거고요. 결국 멀어진 사람들에게 '첫 번째 방향성'이었던 '나 미워하지 말아 줘'마음이 들으셨을 것 같아요. 때문에 고민 중이신 대학생 때 멀어진 친구분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으신 것 같고요. 어떠하신 것 같아요?"


"네 맞는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이 나중에라도 제 글을 보고 제 진심을 이러했다고 알아주길 바라요. 그들과는 연락을 안 하고 지낸 지 오랜 시간이 지났고. 서로 남인 시간이 길었기에 이전처럼 잘 지내긴 어려울 것이라 생각돼요. 그럼에도 절 너무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다솜님의 외침 속,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던 '상처는 밝혀선 안된다. 약점이 된다.'를 걱정하시는 것이 느껴져요. '나 이런 상처가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얘기해 줘.'란 마음이 느껴져요. 제 경우를 말씀드리자면요. 본인의 상처를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사람. 그 과정을 공개하며 본인과 비슷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약하게 보이진 않아요. 오히려 더 강해 보이고, 응원하고 싶어요. 멋있어요."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사실 전 아직 엄마에게 주입된 세상에 살고 있어요. 상처를 말하면 안 되는 세상. 하지만 실제 만나본 사람들 중엔 제 상처를 뜨겁게 안아준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가 살고 있는 세상에 저항하고 싶어요. 제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지만, 아주 조금은 두려움이 남아있어요.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세상에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는 듯, 몇 사람은 제 상처를 약점으로 보는 사람들이야 있을 수 있겠죠. 그렇지만  '그럼 뭐 어때?'란 생각이 들어요."


"그거예요! 다솜님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한가운데 있어요. 그런 움직인들을 거쳐 상처의 깊이는 점점 얕아질 거예요. 긴 길을 돌아오셨고, 힘든 과정이 많으셨을 텐데. 강인한 마음의 힘으로 정말 잘 해내주셔서 감사해요."

상담사 선생님께서 '부모에게 치유되지 못한 상처를 다른 사람들에게라도 공감과 치유를 받고 싶음'을 말씀하셨을 때 마음속 어린 내가 목을 놓아 울었다. '나 꽤 괜찮은 사람이지? 나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지? 나 미워하지 말아 줘.'라는 말을 언제나 달고 다니던 내 마음. 사실은 부모에게 듣고 싶었던 얘기인데.


옛 기억 하나가 스쳤다. 대학생 시절, 고등학생 때부터 친했던 친구에게 뜬금없이

"나는 어떤 사람이야?"

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라고 말했다. 그때 참 정곡을 찔렸는데. 지금도 여전히 사랑을 갈구하는 내 마음속 어린아이는 정곡에 찔렸다. 너무나 여린 아이. 나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내느라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여전히 그 자리에 울먹거리며 흐릿하게 서있었다. 이제야 알아차려줘서 미안하다며 내 마음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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