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09 관조(觀照)의 눈, 욕망(欲望)의 눈

눈이 둘인 이유 8

by 한우물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 중 사람들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건 아마도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의 선악과(善惡果) 나무 이야기일 것이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으신 후 사람을 위하여 에덴동산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두었는데 동산 내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으되 중앙에 있는 나무 열매는 먹지 못하게 금하였다.


어느 날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 제일 간교한 뱀이 이브에게 나타나 참으로 교묘하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에 이브가 답하길「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에 이브는 평소에는 아예 쳐다볼 생각도 안 하다가 뱀의 말을 듣고서는 마음이 동하여 그 나무를 본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


이 사건 이후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고, 이브는 출산의 고통과 함께 자식을 낳고 아담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아담은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아 땅이 저주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어 평생 얼굴에 땀 흘리며 뼈 빠지게 수고해야 입에 풀칠하고 살아가게 되는 형벌을 받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한 형벌은 그들 대에서 끝난 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후손에게까지 대물림되어 우리네 인생살이를 이다지도 고달프게 만들었으니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브 할머니는 그딴 뱀의 꾐에 넘어갔단 말인가?


그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브가 선악과를 보고 느낀 감정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여자가 나무를 본 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이 부분을 어려운 신학적 해석 대신 마~ 내식대로 쉽게 설명하자면 그녀의 눈에 그 사과는 입이 즐겁고, 눈이 즐겁고, 정신적 욕구까지 채워줄 대단한 것으로 보였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 대목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

본능, 정욕(情欲), 욕망, 욕구 등으로 표현되는 위와 같은 감정은 결코 품어서는 안 될 나쁜 것인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생명체에 없어서는 안 될 강력한 생명력(生命力)이다.


며칠을 굶어 위와 장이 다 비었는데도 먹고 싶다는 욕망이 없다면,

물 구경한 지가 며칠이나 되었는데도 갈증을 느끼지 않는다면,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았는데도 자고 싶다는 욕망이 없다면 우리는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돈에 대한 욕망이 없어 집안에 양식이 떨어졌는데도 가장이 돈 벌어올 생각은 않고 집안에서 빈둥거리고만 있으면 식구들 입에 밥은 누가 넣어주나?


이성(異性)을 보고서 욕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어떻게 개체를 보전(保全)하며 종족을 번성케 할 수 있을까?


보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보다 높은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욕구가 없다면 어찌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으며 언제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생명체에게 본능(本能)이라는 이름으로 욕망과 쾌락을 부여하셨다.

어떠한 악조건 하에서도 부디 살아남으라고, 이거라도 즐기며 견뎌내라고, 그래서 온 땅에 번성하라고.
그런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사과를 본 이브가 느낀 세 가지 감정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문제는 이들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데 있다.


자신을 만든 창조주가 하지 말라고 금(禁)한 것을 범(犯)한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왜 범했나? 그건 바로 욕심 때문이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본능을 넘어서는 욕심(慾心)에 있다.

동물은 본능만 충족시키고 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인간은 거기서 멈출 줄 모르고 채우면 채울수록 커지기만 하는 욕심이라는 단계로 발을 내디딘다.


임자가 있는 사람이 불가촉(不可觸)의 이성과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 바람에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경우를 종종 본다.


매력적인 이성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자연스런 생물학적 현상이다.

하지만 '보암직하다'에서 끝내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을 '먹음직스럽다'라는 경지로 발을 내딛는 순간 불행의 씨앗이 싹을 틔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에 대한 안전장치로 눈(目)을 하나 더 주셨다.

눈을 하나만 주면 세상을 온통 욕망의 시선으로만 바라볼까 봐 관조(觀照)의 눈을 하나 더하셨다.


육신의 정욕과 머릿속 생각을 다 내려놓고 호수처럼 고요한 마음으로 있는 모습 그대로 사물을 바라보며 진리의 등불에 비추어 보는 바로 그 눈, 관조의 눈 말이다.


그동안 인간은 욕망(欲望)의 눈만 너무 크게 뜨고 살아왔다.

그 결과, 인간의 능력은 이제 신의 자리까지 넘볼 만큼 커졌는데 행복의 분량은 갈수록 줄어들고 교만이라는 이름의 열차는 파멸의 종착역을 향해 지칠 줄 모르고 달린다.


이제 우리 그동안 감다시피 한 관조(觀照)의 눈을 뜨는 연습을 해보자.

매일 아침 명상(冥想)과 묵상(默想)과 기도로 새벽을 열며 관조의 눈으로 조용히 나 자신을 바라보자.


그리하면 욕망으로 달아올랐던 눈의 열기가 식으면서 차분하고 평온한 관조의 눈이 점점 크게 뜨일 것이다.

그리하여 두 눈의 조화로운 시선으로 안팎을 바라보고 자신과 세상을 보다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