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07 때로는 한쪽 눈을 감아라

눈이 둘인 이유 6

by 한우물
절영지회(絶纓之會)


때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한 왕이 반란을 진압하고 성에 돌아와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문무백관을 불러다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무희(舞姬)들이 나와서 춤을 추고, 분위기는 무르익고, 다들 거나하게 취해서 즐겁게 노는데 갑자기 광풍(狂風)이 불어와 촛불이 다 꺼지는 바람에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그때 왕의 옆에서 시중을 들던 애첩(愛妾)이 비명을 지르면서 왕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전하, 방금 어느 못된 자가 제 몸에 손을 댔습니다. 마침 제가 그자의 관(冠)끈을 잡아 뜯었으니 빨리 불을 밝히시어 관의 끈이 잘려나간 자를 잡아 엄히 다스리소서.”


그러자 잠시 후 왕은

"내가 신하에게 술을 내려 그들로 하여금 술에 취해 예를 범하게 만들었거늘 내 어찌 부인의 정절을 드러내기 위해 신하를 욕보이겠소!” 하더니 좌중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늘은 과인과 함께 마시는 날이니 관끈을 끊지 않고 마시는 자는 이 자리를 즐기지 않는 것으로 알겠다. (今日與寡人飮, 不絶冠纓者不歡)"


이에 모든 신하가 관끈을 끊자 다시 불을 밝히고 밤새도록 흥겹게 연회를 즐겼다.


보은(報恩)


그로부터 몇 년 후, 진(晉) 나라의 침공으로 전쟁이 일어났다.

서로 밀고 밀리며 승패를 가늠할 수 없는 치열한 전투에서 한 장수가 다섯 번이나 선봉에 서서 죽음을 불사하고 적을 물리친 끝에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전투가 끝나자 왕은 그 장수를 불러 감격하여 물었다.


"나는 너를 특별히 대우해준 준 기억이 없는데, 너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싸울 수가 있더란 말이냐?"


그러자 피투성이가 된 그는 비장한 얼굴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몇 년 전에 이미 죽었어야 할 목숨이었습니다.

지난날 술에 취해 예를 잃었을 때 왕께서는 그것을 참고 감추어 저를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언젠가 이 한목숨 바쳐 왕의 은혜에 보답할 날만을 기다려왔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전하, 신이 바로 그 잔치에서 관끈이 끊긴 자이옵니다."


한쪽 눈을 감아야 할 때

위의 이야기는 ‘관(冠)의 끈을 끊고 마시는 연회’란 뜻의 절영지회(絶纓之會), 혹은 絶纓之宴(절영지연)이란 이름으로 전해오는 초(楚) 나라 장왕(莊王)과 신하 장웅(蔣雄) 사이에 있었던 일화에 관한 것이다.


2,600여 년 전의 이 고사(古事)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관용(寬容)의 덕과 힘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하나면 족할 눈을 둘씩이나 준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와 같이 때로는 한쪽 눈 지그시 감으라고 그리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에나 다 눈을 감으라는 말이 아니다.


불의에 대해서는 두 눈 부릅뜨고 결연히 대항해야 한다.

의도적으로, 습관적으로 나쁜 짓을 하는 자는 엄히 다스려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어리석은 자는 지적하고 가르치고 훈계하여야 한다.


하지만 고의성 없는 실수, 인간이기에 저지를 수밖에 없는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는 한쪽 눈 감고 알아도 모른 척 그냥 넘어가 주자.


가족 중 누군가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했을 때,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라 새하얀 거짓말이라면 알아도 모른 척 한쪽 눈 감아 주자.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인생길은 한 가닥 모노레일 위에 하나의 전동차를 함께 타고 가는 것이 아니라, 두 가닥 철로길을 두 개의 전동차로 달리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부부라고 해서 배우자에 대해 모든 걸 다 알아야 하고 모든 걸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평생을 함께 살아도 때로는 홀로 있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 외로워지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목놓아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혼자만 들락거릴 수 있는 내 마음속 비밀의 화원.


그곳은 서로가 존중하고 지켜줘야 할 금단(禁斷)의 영역이라.

두 눈 밝히 뜨고 들여다보려 하지 말고 그냥 한쪽 눈 감고 모른 척 지나가라.


사람이 한쪽 눈을 감으면 다소 우스꽝스럽고 바보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을 항상 매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보다는 이런 사람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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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의 의미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가장 후회스러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점이다.

‘나는 사람을 볼 때 왜 그리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을까?'

'나는 사람들에게 왜 그리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을까?’

‘그때,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줄걸!’

‘그때, 그냥 한쪽 눈 감아줄걸……'


콧구멍에는 뚜껑이 없다.

귓구멍에는 뚜껑은 있으되 닫을 수가 없다.

하지만 눈구멍에는 내 마음대로 닫을 수 있는 뚜껑이 달려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뚜껑의 의미가 소록소록 가슴에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