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둘인 이유 5
지금껏 우리는 외모 판단의 당위성과 근거, 외모가 주는 정보 및 그 판단의 한계성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제 남은 것은 사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이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20대에서 40대까지는 사람을 참 쉽게 판단했던 것 같다.
얄팍한 관상에 대한 지식과 그동안의 경험과 육감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분류했다.
인생의 경험이 일천 할 때는 요행히 10명 중 7-8명이 들어맞아 내 사람 보는 눈이 꽤나 정확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 대상이 늘어날수록 틀리는 경우도 늘어갔다.
필자는 지난 35년 동안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쳤고, 지금은 그로부터 4년이 더 지났다.
전공의 수련 동안 “저 친구 참 괜찮은 친구야.” 하면서 남다른 애정을 주었던 제자들은 수련 과정을 마치고 나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을 때 열 명 중 일고여덟은 나를 실망시켰고, “저 친군 왜 저래!” 하며 탐탁지 않게 대했던 제자 열 명 중 두셋은 당시 홀대했던 나 자신을 두고두고 부끄럽고 미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내 눈을 의심하게 되었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의 가장 큰 잘못은 사람을 바라볼 때 내 딴엔 객관적이고 정확한 눈으로 본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타고난 내 기질(氣質), 내 기호(嗜好), 내 가치기준(價値基準)의 잣대로 바라보고 판단하고 구분한 것이다.
그 결과, 나의 호불호(好不好)를 다른 사람의 정부(正不)로 착각한 것이다.
전공의에서 전문의로 신분이 바뀌고 사회적 지위가 달라졌을 뿐 그 사람의 본질은 변함이 없는데, 그런 걸 꿰뚫어 보지 못한 내 잘못은 생각지 않고 나 혼자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해가며 기대했다, 섭섭했다, 실망한 것이다.
하지만 실망하고 미안한 정도로 끝나는 스승과 제자 사이는 그래로 바깥 세상에 비하면 아주 양호한 편이다.
나에게 적지 않은 은혜를 입었던 사람이 내 입에서 “아니,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하는 말이 터져 나오게 만드는 기막힌 일도 당해보고, 철떡 같이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등에 칼 꼽히는 일도 겪어가며 지금껏 살아왔다.
이제 고희(古稀)를 갓 넘긴 나이가 되어 ‘인간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대해 내 생각을 정리해본다.
사람은 겪어보지 않고선 모른다.
함께 여행만 해보아도 지금껏 몰랐던 상대의 다른 면모를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은 고락을 함께 해보아야 한다.
평소 잉꼬부부로 소문난 부부 사이도 남편 사업이 망하거나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이 건강을 잃는 고난이 몰아치면 얼음처럼 단단하던 둘 사이에 금이 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떤가?.
필자는 의사 둘이 동업한 병원 치고 끝까지 사이좋게 함께 가는 병원을 본 기억이 없다.
처음 개업할 때는 돈도 없고 명승도 없어 마음 맞는 친구 둘이 의기투합하여 공동 개업을 한다.
초창기의 어려운 시기에는 서로 힘을 합쳐 열심히 헤쳐나가던 사람들이 병원이 자리 잡고 환자도 늘고 돈이 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하다 원수처럼 갈라서는 꼴을 무수히 보아왔다.
이런 걸 보면 역시 사람은 월나라의 책사 범려(范蠡)의 말처럼 '고난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영화를 함께 나눌 수는 없는 존재'인가 보다(可與共患難 不可與共樂).
하지만, 이러한 고락도 이별만 못 하다.
서로 가까이 있을 땐 앞모습과 옆모습 밖에 안 보이는 법. 뒷모습을 보지 않고 그 사람을 잘 안다 하지 마라.
몇십 년 동안 고락을 함께했던 둘 사이에 새로운 기회의 땅이 나타났을 때, 그걸 차지하기 위해 우정도 의리도 도리도 무시한 채 돌아서며 보여주는 그 뒷모습에 충격받는 경우를 누구나 한 번쯤은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상대를 완전히 알려면 헤어지고 나서 또 세월이 지나 봐야 한다.
깐깐하고 호랑이 같은 상사 밑에 있을 땐 그저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생각이 간절했는데 막상 그가 떠나고 나니 그 울타리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그 그늘이 얼마나 편안했는지,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그제서야 느낀다.
또한, 어떤 사람은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벽안개 걷히듯 기억에서 사라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월이 지날수록 가슴 시린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해 보자.
“인간은 과연 믿을만한 존재인가?”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마음 맞는 사람에게는 속 다 까발려 보여주는 남편이 걱정된 아내가 30여 년 전 한 말이 있다.
“여보, 내가 어디선가 읽었는데 이런 말이 있습디다. 사람은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라 단지 사랑해야 할 대상일 따름이라고요. 그러니 제발, 사람 너무 쉽게 믿지 마세요.”
그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아니, 사람을 못 믿으면서 어떻게 사람을 사귀냐?” 하며 핀잔을 주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은 여운이 남았다.
그러다가 믿었던 사람으로 인해 내 가슴 치는 일이 생길 때마다 그 말은 용트림하며 솟아올라 나의 심금을 울렸고 이젠 나의 뇌리에 다음과 같이 선명히 각인되었다.
“그래, 맞다. 사람은 결코 믿을만한 존재는 못 된다. 인간에 대해 믿을 건 단 한 가지. 너나 나나 똑같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뿐. 그래서 실수할 수 있고, 실망시킬 수 있고, 배신할 수도 있다. 그러니 어쩌겠나? 믿는 대신 사랑하는 수밖에.”
이제 '사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명제에 대해 필자의 시 한 수로 끝맺음하고자 한다.
관상보다 언행이 낫고
언행보다 세월이 낫고
세월보다 이별이 낫다
그럴듯한 외모에 현혹되지 말고
못나 보이는 외모에 편견 갖지 말고
말과 행실 두루 살펴 사람 중심 밝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