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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12 엄마와 딸

가족의 의미

by 한우물

나는 내 방에서 글 쓰고 아내는 온 방 문 열어 놓고 거실에서 청소기를 돌리는데

아내 폰 벨 울리는 소리와 함께 전화받는 소리가 들린다.


말을 하대하는 걸 보니 딸아이인 모양이다.

다음은 아내의 통화 내용과 나의 상상


"지금의 고난은 내게 유익이라 장차 다가올 영광과 비교가 안 된다'라고 사도 바울도 말 안 했나!"

(딸아이가 요즈음 많이 힘든 모양이다. 엄마 첫마디가 저런 걸 보니.)


아내의 말이 이어진다.

"죄인이 죄인 괴롭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니겠냐?"

(어느 넘이 우리 딸을 이렇게 힘들게 하지? 콱, 마!)


"오늘 아침에도 아빠와 식사 도중 이야기했지만 내가 죄인임을 안다면 세상에 용서 못할 사람이 어데 있겠노?"

(지당하신 말씀! 하지만 그거이 어디 쉽더나?)


딸아이가 뭔가 항변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라고 기도하라고 안 가르치셨냐?"


"이거, 알고 보면 무서운 말인거라. 너 나 할 것 없이 다 죄인인데 네가 더 죄인이니 어쩌니 하며 따진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우습겠노?"

(조언을 아주 잘하고 있다.)


"옛 말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 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

(우리 장모님이 생전에 자주 하던 말씀.)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갚아라. 그게 최선이다."

(지당하신 말씀!)


이제 대충 상황이 정리되어 가는 느낌이다.


나를 닮아 불의한 것, 잘못된 것, 억울한 것 못 참고, 아무리 윗사람이라도 할 말은 또박또박하는 다소 모난 성격의 소유자.


하지만, 그 영혼은 참으로 맑고 순전한 아이인지라 저렇게 조곤조곤 타이르면 금방 수긍하면서 "엄마, 맞나? 그렇제?~~"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모습이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이렇게 이어진 통화는 약 20분 만에 끝났고 통화가 끝나자마자 아내가 쪼르르 달려와 하는 말.


"아이고, 피곤하데이. 아침부터 진 다 뺐네. 여보, 여보, 우리 '선'이 앞으로 크게 될 모양이오. 하나님이 저~레 트레이닝을 시키는 걸 보니!"

"그러기 말이야~~"


힘들고 어려울 때,

하소연하고 상의할 엄마가 있다는 게, 오만 말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엄마가 있다는 게, 얼마나 복된 일인가!


그리고, 그런 하소연 들어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식이 있다는 것 또한 얼마나 복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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