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의 힘
전능하신 하느님도 한 번씩 실수할 때가 있는 모양이다.
내 경우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나는 태어날 때 하늘로부터 많은 재능을 받고 태어났다.
그런데 나를 그렇게 사랑하신 하느님께서 나를 만드실 때 깜빡 잊고 안 준 게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그림 그리는 재주'다.
그 결과, 국민학교 다닐 때 다른 과목에서는 다 '수(秀)'를 받았는데 미술에서는 항상 '미(美)'를 받아 한 번도 일등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선생님들께서 하나같이 미술(美術)이란 과목에서 가장 미(美)적인 점수인 미(美)를 주었다는 것은 어쩌면 내게서 장래의 피카소가 될 소질을 발견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이게 말이 되든 안 되든 여하튼, 대학 들어오고 난 후부터는 그림 그리는 재주가 없다고 해서 내 인생에 불이익을 준 것 없으니 그리 아쉬울 것도 없다.
그러나 나머지 하나, ‘사람 웃기는 재주’가 없다는 것은 참말로 아쉽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살이에서 없어서는 안 될 양념 같은 것인데 그게 영 수준 미달이다 보니 아내의 오랜 친구 중 한 사람으로부터 이런 말까지 들어야 했다.
"한 교수님은 다 좋은데 너무 진지해서 탈이야."
처음에는 살짝 기분이 상할라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리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아 순순히 받아들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재미없는 사람은 결코 아니다.
젊은 시절. 나는 누구를 만나든 두어 시간 정도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들어 줄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양한 대화 콘텐츠로 사람들을 몰입하게 만들고 즐겁게 한 것이지 내 아들처럼 대화 가운데 순간순간 받아치는 위트와 개그로 사람을 웃기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내가 자랑하는 그 콘텐츠란 것도 우리 아이들 앞에선 '아재 개그'로 전락하여 통 쪽을 못쓴다.
명절 때 오랜만에 온 식구가 모여 저녁 식사 후 맥주 한잔하며 나누는 즐거운 대화 시간, 나 딴엔 식구들 즐겁게 해 줄 거라고 비장의 무기 두어 개를 준비해 가서 들려주면 식구들 반응이 영 신통찮다.
“아이고, 이야기 끝나기도 전에 자기가 먼저 웃고 난리다. 저 봐라. 너거 아부지 지금 눈물까지 닦아가며 혼자 난리다.”
“아~ 집이 갑자기 왜 이리 춥지? 엄마, 에어컨 틀었어요?”
이 정도 반응이면 김이 새도 한참 샌지라 그다음부터는 입은 닫고 귀만 열고 있게 되었다.
그러다 딱 한 번, 아이들을 크게 웃긴 적이 있는데 웃어준 게 얼마나 감격스러웠으면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 그 장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까!
그날은 내 차에 딸, 아들 태우고 온천장으로 가는 날이었다.
이야기는 만덕에서 출발할 때부터 시작해서 만덕 제1터널을 빠져나와 내리막길로 접어들자마자 끝이 났는데 끝나는 순간 아이들 둘이 한꺼번에 웃음을 팍 터뜨리면서 말했다.
“야~ 울 아부지, 오랜만에 웃기는 이야기 한번 했다. ㅋㅋ”
“진짜 우습나?”
“예, 이건 확실히 성공작인데요.”
이쯤 되면 '필자가 무슨 얘기를 했길래 그동안 안 웃던 자식들이 웃었을까?' 하며 독자들도 궁금해할 것이라 이야기보따리를 한번 풀어보기로 하자.
세종대왕이 내시 노조 설립을 불허한 이유
때는 세종대왕 시절. 임금이 하도 어질다 보니 여기저기서 노조가 생겨나고, 급기야 내시들도 자신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조를 설립하고자 하였다.
이에 그들은 단체로 임금님을 찾아가 그동안 그들이 당한 설움에 대해 구구절절이 설명한 후 노조 설립을 윤허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들의 이야기들 다 듣고 난 대왕께서는 한마디로 잘라 ‘불가’라 하였다.
임금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면서 철떡 같이 믿었던 세종대왕의 입에서 불가라는 말이 떨어지자 내시들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대왕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답했다.
“단체를 결성하려면 먼저 발기인대회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너희들이 과연 발기를 할 수 있겠느냐?’
헐!~~~
"아~니~되옵니다~."
"그러면 좋다. 발기인대회를 했다 치자. 그러고 나면 정관을 만들어야 하는데 너희들에게 제대로 된 정관이라는 게 있기는 있느뇨?’
"없사옵나이다~."
"그래, 좋다. 정관까지 만들었다 치자. 하지만 너희들이 노조를 만든다면 제일 먼저 대신들이 들고일어날 터이고, 그들을 무마하려면 발이 닳도록 쫓아다니면서 사정해야 할 것인데 너희들이 그렇게 사정할 자신이 있느뇨?"
내시들은 점점 고개가 숙어지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하였다.
"없사옵나이다~."
"마~ 대신들까지 설득했다 치자. 그렇다 하더라도 일이 성사되기까지 온갖 시련과 난관에 부딪힐 터인데 너희들이 그 난관을 뚫을 자신이 있느뇨?"
이제 내시들은 완전히 울상이 되어 흐느끼듯 말했다.
"없사옵나이다."
"이것이 내가 반대하는 이유니라. 알아들었느뇨?"
"예이~, 성은이 망극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