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란 존재
# 2016년
지난 토요일
아내가 동창회 모임으로 2박3일 제주도 여행을 갔다.
평소 집에 들어오면
모든 걸 말씀으로만 창조하시는 남편의 특성을 잘 아는 아내는
남편이 혼자 손쉽게 차려먹을 수 있도록 소고기국과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굶거나 사먹지 말고 꼭 집에서 먹으라 당부하고 떠났다.
첫 날 저녁은 잘 차려먹었다.
하지만 먹을 땐 좋았는데 먹고나니 문제였다.
그릇 치우랴, 식탁 닦으랴, 설거지 하랴, 식기건조 하랴 행주 빨랴 ~~
다음 날 아침
뭐 간단하게 먹을 것 없나 싶어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이런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듯 평소에는 잘 사놓지 않는 수프를 사 넣어 놓았다.
옳다구나 싶어 물을 끓이고
그 안에 봉지 집어넣고 충분히 둔 후 꺼내어 봉지 잘라 그릇에 담고
한 숫갈 뜨니 아직 찹차부리하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시작버튼 누른 후
땡 소리 나길래 꺼내어 먹으니 아직도 미지근떱덥하다.
나 이거 원~~~
무슨 놈의 수프 하나 먹기가 이렇게 힘들어?
다음 날 아침, 배는 고프고 무슨 수가 없나 하고 둘러보았더니
가스렌지 위에 토요일 아침에 먹고 남은 국밥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다 싶어 얼른 데워서 그 동안 익힌 선행학습대로
식탁 안 치우려 종이 네프킨 먼저 깔고,
설거지 줄이려 밥그릇 없이 냄비 채로,
냉장고 여닫는 수고 줄이려 반찬 없이 먹었다.
그날 오후. 퇴근 해 집에 오니 아내가 와 있었다.
“여보, 먹다 남은 국밥 어쨌어요? 내가 버리고 간다는게 깜박했는데?”
“내가 먹었지.”
“아니, 그게 언제 건데~~ 안 쉬었어요?”
그러고 보니 먹을 때 맛이 약간 새꼬롬한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뭔가 속이 꿀꿀해 오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런 말 했다간 또 잔소리 들을 것 같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괜찮아. 모든 균은 끓이면 다 죽어요. 나 지금 멀쩡한 것 보면 몰라?”
결론
아내가 집에 있으면 황제밥상 받고 아내가 집에 없으면 거지밥상 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