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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28 유머는 되고 농담은 안된다?

개념정리

by 한우물
"앞으로 교회에서 유머는 하되 농담은 하지 마세요!"


위의 말은 20여 년 전 조그만 개척교회를 할 때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정색을 하며 한 말이다.

그때, 나는 그 말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반감만 가졌다.


'아니, 둘 다 웃자고 하는 얘기인데, 왜 서양식 유머는 되고 한국식 농담은 안된다는 거야?

이거, 우리나라를 너무 낮춰보는 것 아냐?'


하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도 나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아 그때부터 나는 교인들끼리 하는 농담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점이 목사님으로 하여금 설교시간에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열받게 만들었을까?'


그러는 한편, 아내의 이야기도 듣고 나도 경험해 가면서 점차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아가기 시작해 지금은 그분의 심정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유머와 농담의 차이


우리가 흔히 쓰는 농담이란 말은 서양에서 통용되는 광의(廣義)의 유머처럼 우스갯소리 전반(全般)을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농담(弄談)의 사전적 의미는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 '정말이 아니고 재미로 혹은 장난으로 하는 말' 등으로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주 단어는 '장난'. '실없다', '정말이 아니다', '놀리다' 로서 '우습다', '재미있다'라는 말은 없다. 한자로도 농담(弄談)은 희롱할 '농'에 말씀 '담'을 쓰니 말뜻으로만 보자면 농담이란 '사람을 희롱하는 말'이 된다.


이를 종합해 보면 우리네 농담은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살벌한 순간을 웃음으로 넘기고, 좌중을 즐겁게 하고,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기보다는 있지도 않은 일을 마치 사실인 양 지어내어 사람을 놀리고, 골리고, 희롱하기 위한 장난의 성격이 더 강한 것 같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는 농담을 잘 관찰해 보면 이런 장난의 수준을 넘어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1. 상대방에 대한 비난을 농담 식으로 던지는 '뼈 있는 농담'.

2. 자신의 진심을 농담이란 포장을 씌워 툭 던져놓고 반응을 살피다 상대가 곤란해하거나 기분 나빠하면

"그거 농담이야." 하며 넘어가는 '농담을 빙자한 진담'.

3. 하지만 이보다 더 예후가 안 좋은 것은 '순진한 사람 바보 만드는 농담'이다..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주부나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순진한 사람, 혹은 I.S.T.J의 기질을 가진 사람을 앞에 두고 세상물 많이 먹은 사람들이 지네들끼리 통하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떠벌리며 재미있어하는, 그런 농담을 하다 보면 사람 하나 바보 만들기는 유도 아니다.


그럴 때, "왜 그래야 하는데?" 내지는 "그건 아니지!" 하며 반박이라도 할라치면

" 야~, 니 앞에선 농담도 못하겠네."

" 니는 꼭 개그를 다큐로 맏아들이더라."

하며 또 한 번 뒤통수를 친다.


그때 그 목사님이 화가 난 것도 바로 이런 유의 농담 때문이었으리라.

충분히 이해가 가고, 그 말씀에 100% 동의한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2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장난도 받아줄 수 있는 아주 친한 사이에서 별 뜻 없이, 심심하니까, 재미로 하는 장난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자신들과 성향이 다른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런 류의 농담은 삼가야 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선진국이 되고 말았다.

상황이 그런 만큼 우리네 농담도 그에 걸맞게 격을 좀 높여야 하지 않겠는가?

곧잘 사람을 희화화시키는 질 낮은 농담 대신, 보다 격조 높은 해학(諧謔)으로 말이다.



Tip:

위에 있는 붉은색의 말에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은 방책을 알려준다.


"그럴 땐 기분 나빠하지 말고 웃으며 되받아주셔."


"니 앞에선 농담도 못하겠네. 니는 어째 내가 말만 하면 꼭 다큐로 받아들이더라. 난 그저 개그를 했을 뿐인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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