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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May 03. 2024

유머51 냉장고에 얽힌 세 남자의 죽음과 그 사연

성담(性談) 06

#Scene 1

시대 배경: 한국의 IMF 시절

장소: 저승의 염라대왕 집무실     


염라대왕의 일과는 매일매일 올라오는 사자(死者) 명부(名簿)를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어느 날, 명부를 훑어보던 대왕이 비서실장을 불러 물었다.     


"요즘 들어 Korea란 이름이 부쩍 많이 눈에 띄는데 어인 일인고?"

"네, 요즈음 그 나라 경제 사정이 안 좋아 IMF 귀신인가 뭔가가 돌아다니면서 많이들 잡아 오는 모양입니다."

"그래? 알았다."     


며칠 후,

대왕의 눈에 또다시 Korea란 이름이 들어오면서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죽음이 눈에 띄었다.  

저승에 올라오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의 남자 셋이 거의 동시에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괴이한 데 그들의 주소지마저 같은 게 아닌가!


<Korea, 부산시, 북구, 덕만동, 덕만 아파트, 101동, 1~2라인, 8층, 9층, 10층>     


"거 참 이상타!"     


궁금증을 참다못한 대왕은 도대체 이들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 사람씩 불러 직접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 Scene 2

남자 1: 8층에 사는 30대 초반 기혼남     


대왕: "너는 이 젊은 나이에 어인 일로 여기 오게 되었는가?"

남자 1호: "대왕님, 저는 억울합니다."

대왕: "그래? 그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말해보거라."

그러자 남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저는 결혼한 지 1년밖에 안 된 사람인데 일주일 예정으로 지방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아직 신혼이나 마찬가지인 저는 아내를 즐겁게 해 줄 요량으로 일을 서둘러 마치고 하루 일찍 연락도 없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문밖에서 벨을 누르니 답이 없었습니다. 초저녁인데 말입니다.


한 다섯 번쯤 누르자 그제야 아내가 문을 여는 데 당황해하는 빛이 역력했습니다.

"어머, 어쩐 일이에요? 내일 돌아온다더니?"      

아내의 옷차림은 야사시한 네글리제 바람인 데다 현관에는 남자 구두가 보이고 거실에 보니 술상이 차려져 있지 않겠습니까!     

순간 눈이 획 돌아버렸지요.


마침, 현관에 야구방망이가 있길래 그걸 들고 '어느 놈이야?' 하며 고함을 지르면서 온 방을 다 뒤졌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베란다에 나가보았지요. 그랬더니 베란다 난간에 손가락 열 개가 붙어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성을 잃고 야구방망이로 그 손가락을 하나하나 찧었습니다. 드디어 '으악' 하는 비명과 함께 열 손가락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떨어져 죽었겠지 하고 밑을 내다봤습니다. 그런데 글쎄 이 녀석이 나무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 분을 참지 못하고 어떡하면 죽일까 생각하며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이 놈을 끌어다가 밑으로 던졌지요. 그런데 재수가 없으려니 하필 그 냉장고 줄에 제 발이 걸려 제가 그만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대왕님,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그래? 억울할 만도 하네. 알았다. 나가보거라."         




# Scene 3

남자 2: 9층에 사는 30대 중반 기혼     


다음은 남자 2호의 더 기막힌 사연.

  

“사건이 벌어진 날은 일요이었지요.

평소에 회사일 때문에 항상 늦게 귀가해 아내에게 미안하던 차, 무언가 아내를 즐겁게 해 줄 일이 없을까 하여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베란다 유리가 더러우니 좀 닦아달라 하였습니다. 

비록 겁이 나긴 했지만, 아내를 즐겁게 해 줄 요량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유리를 닦기 시작했는데, 그만 발을 헛디뎌 아래로 떨어졌지요. 하지만 다행히 아래층 베란다 난간을 잡고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살았다 싶어 살려달라고 소리치려는 순간 안에서 무언가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큰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다짜고짜 내 손가락을 방망이 같은 거로 찍어대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 고통을 견디다 못해 손가락을 풀고 아래로 떨어졌는데 다행히 나무에 걸려 이제 살았구나 싶어 한숨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전생에 저와 무슨 원수지간이라도 되는지 이번에는 냉장고를 집어던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만 그것에 맞아 떨어져 죽고 말았지요. 저는 평소에 아랫집사람들과 잘 지내온 사람입니다. 대체 내가 무얼 잘못했기에 이런 일을 당해야 한단 말입니까? 흑 흑. 대왕님, 전 정말 억울합니다.“     


“흠~~ 거 참 사정이 딱하게 되었구먼.”        




# 남자 3: 10층에 사는 20대 총각     


다음은 남자 3호의 참으로 황당한 스토리.     


“저는 그날 저녁 산책하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8층 아주머니와 만나게 되었지요. 

그녀는 얼굴도 예쁜 데다 평소에 지나가다 만나면 제게 아주 친절하게 대해 주어 호감을 느끼고 있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자꾸만 말을 걸면서 남편이 출장 가고 없어 외로우니 자기 집에 가서 맥주나 한잔하고 가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안 그래도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그녀를 따라가 거실 소파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간단한 술상을 보아 거실 테이블 위에 차려놓고 제게 술을 한 잔 따라주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함께 술을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주머니가 ’왜 이리 덥지?‘ 하면서 샤워 좀 하고 나오겠으니 잠시 혼자 마시고 있으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T.V. 를 보면서 맥주 한잔하고 있었지요.

한 10분쯤 지나니 샤워를 마친 아주머니가 아주 섹시한 속옷 차림으로 욕실에서 나와 소파에 앉지 않겠습니까! 그때부터 우리는 무언가 야릇한 분위기 속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지요.     


그때, 갑자기 현관 벨이 울렸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하면서 문구멍으로 내다보더니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왔으니 일단 아무 데나 빨리 숨으라고요. 이에 저도 깜짝 놀라 이방저방 들어가 보았지만 숨을 곳이 마땅찮아 냉장고 안으로 들어갔지요.


그리고, 그 후로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대왕님, 제가 왜 여기에 와 있지요? ”     


"헐! 거 참........."              



이 이야기의 출처를 밝히려면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때는 서기 2,000년, 당시 대한민국은 1997년에 터진 외환위기 사태로 다들 힘겹게 살던 시기였다.

어느 더운 여름날, 까다로운 내 밑에서 열심히 초음파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불쌍한 레지던트들을 격려해 주기 위해 그날 저녁 회식 자리를 마련했다.


일과 후, 나는 그들을 데리고 서면에 나가서 외식집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난 후 2차로 나의 단골 카페에 가 한잔 하게 되었다. (당시의 카페는 커피 전문점이 아니라 고급 술집을 일컫는 용어였다.)

다들 술이 거나하게 되자 내가 제안을 하나 했다.     


"동무들, 이제부터 돌아가며 재미있는 이야기 한 자루씩 하기요."    

 

그러자 그들은 평소 자기네들끼리 모였을 때 시시덕거리며 하던 야설(夜說)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는데 그때 내 귀를 의심할 만큼 놀라게 한 이야기가 바로 위의 스토리다.     

우리나라 야설 치고 저렇게 잘 짜인 스토리 형 담론은 처음 접한지라, 나는 앞으로 두고두고 비장의 카드로 써먹을 요량으로 바로 다음 날 아침에 그 내용을 메모해 두고 외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모임에 가서 막상 써먹으려니 어느 남자가 제일 먼저 나오는지, 어떤  층부터 시작하는지 헷갈리는 게 아닌가! 처음이 헷갈리니 스토리가 뒤죽박죽이 되어 말을 꺼낸 나만 영구처럼 되어버렸다.  


"와~, 이럴 수가! 이 무슨 창피냐."   


그때부터 나는 자칫 꼬이기 쉬운 이 복잡한 스토리를 어떻게 하면 안 헷갈리고 술술 풀어갈 수 있을까 하며 고심 끝에 다음과 같은 비법을 하나 찾아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이 이야기를 어디 가서 써먹으려면 이 점을 잘 알아두시라요. 안 그러면 여러분도 옛날의 나처럼 창피당할 수 있으니끼니.    

      

1) 제일 아래층부터 시작한다.

2) 냉장고 집 주인부터 시작한다.              



*표제사진 출처: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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