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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04 프랑크프루트의 밤

by 한우물


동양인이라고 무시해?


1997년 9월,

독일 마인츠(Mainz)에서 산부인과 영역에서의 삼차원 초음파(3D Ultrasound)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당시 한국은 의료기 제조 분야에서는 거의 황무지 같은 곳이었는데,

어느 날 '메디슨'이라는 한 벤처 회사가 혜성처럼 나타나 선진국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의료용 초음파 시장에 중저가 제품으로 도전장을 던지고 힘찬 도약을 시작할 때였다.


이 회사 창업주인 이민화 사장은 뒤떨어진 기술력의 공백을 3D 초음파로 따라잡고자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향후 주 소비층이 될 산부인과, 비뇨기과, 영상의학과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의사 4명을 모시고 이 학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마인츠는 조그만 소도시라 우리 일행은 학회 기간 중 프랑크푸르트(Frankfurt)의 한 호텔에 묵었다.

학회 마지막 날, 모든 행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니 밤 10시경.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내기 아쉬웠던지 다들 한잔하자며 호텔 바로 내려갔다.


바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곳은 예상외로 큰 맥주홀이었는데 조그만 무대에서는 2인조 밴드가 연주하고 플로어에서는 손님들이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보니 서양답게 생맥주 제일 작은 잔이 500cc라, 우리는 호기롭게 1,000cc짜리 조끼로 시작했다.

한 시간쯤 마시자 다들 기분 좋을 정도로 알딸딸해졌다.


그러자 일행 중 한 사람이 "한 교수님 노래 한 곡 하시지요." 하길래 나는 손사래를 쳤는데,

아 글쎄 이 양반 내 말도 무시한 채 바로 웨이터를 부르더니 무대에서 노래 한 곡 할 수 있느냐고 묻는 게 아닌가!

'어허이, 여기가 무슨 가라오케라도 되는 줄 아나?'


그러자 기골이 장대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백인 웨이터는 퉁명스러운 얼굴에 단호한 어조로 바로 ‘No!’라 답했다.

이 한마디에 내 심사가 확 뒤틀렸다.

그가 보인 행동은 서양인, 그중에서도 음식점이나 술집 종업원이 손님에게 보일 수 있는 매너가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규정에 어긋나면 No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손님에게 'No'라고 말할 때는 최대한 예를 갖추어 정중한 태도로 해야 한다.

그런데 이 친구가 보인 태도는 완전히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내 귀에는 그의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노란둥이 촌놈들이 와서는 감히 무대에서 노래를 해?!’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에선 동양인을 우습게 볼 때였다.

당시 유럽엔 동양인 관광객도 흔치 않았고, 실제 그날 홀 안에 있는 많은 손님 중 동양인은 우리뿐이었다.


이제, 그동안 내 속에서 잠자고 있던 젊은 헐크가 서서히 깨어나면서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옷이 찢겨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1,000cc짜리 생맥주 잔을 들고 천천히 그리고 한숨에 다 마셨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헐크처럼 무대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마침 밴드가 쉬는 타임이라 무대 옆 구석에 그들이 앉아 있었는데 나는 노래를 부르던 흑인 가수에게 가서 물었다.


"I am Dr. Han from Korea. Your wonderful music made my mood up. Can I sing a song on the stage?“

- 나는 한국에서 온 닥터 한입니다. 당신의 훌륭한 음악에 내 기분은 한껏 고조되었습니다. 혹시 내가 무대에서 노래를 한 곡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


그러자 그는 바로 ‘Sure!’ 하고 답했다.


나는 오르간 주자와 함께 무대로 나가 스탠드에 꽂혀있던 마이크를 빼 들고 노래 대신 멘트부터 날렸다.
이 집 손님들에게 자그만 동양인이라고 얕잡아 보이지 않기 위해선 먼저 기선을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


먼저 독일어 인사로 주목을 끌었다.

"Guten Abend! (구텐 아벤트) " - Good evening!'이란 뜻이다. -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선택한 것이 이런 데서 써먹힐 줄이야!


그러고는 영어로 말했다.

"Ladies and gentlemen! I am professor Dr. Han from Korea. I visited here to attend World Congress on 3D Ultrasound in OBGY at Mainz."

- 신사 숙녀 여러분, 나는 한국에서 온 의대 교수 닥터 한입니다. 나는 이번에 마인츠에서 열리는 산부인과 영역 삼차원 초음파 세계학회에 참석 코자 이곳을 방문하였습니다. -


서양에선 의사, 그중에서도 의대 교수란 타이틀은 요술램프 같은 효력이 있음을 알기에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Professor와 Doctor를 겹쳐 썼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말했다.


"우리는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프랑크푸르트에서의 마지막 밤을 맥주 한잔하며 보내려고 이곳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그만 이 바의 흥겨운 분위기에 반해 노래를 한 곡 하려 합니다. 비록 잘하진 못하더라도, 그리고 혹여 실수가 있더라도 즐겁게 감상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이 집 흑인 가수가 바로 앞 스테이지 때 부른 ‘Yesterday’를 청했다.

그래야 반주가 따라올 수 있을 테니까.


전주가 나가고 내 노래가 시작되자 시끌벅적하던 술집이 점점 조용해지기 시작하더니 마치 콘서트장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닥터, 프로페서, 그리고 내 노래. 이 삼박자가 어울려 매직 램프를 켠 것이다.


무대를 정복하다


비록 순간적인 혈기를 참지 못해 나오긴 했지만서도

아마추어에 불과한 내가 이런 대형 밤무대에 올라가

처음 접하는 많은 서양인과 프로 가수를 상대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생맥주 1,000cc 원샷의 힘은 컸다.

원래 노래란 술이 한잔 들어가면 더 잘 나오는 법,

일단 노래가 나오기 시작하자 학창 시절 의대 그룹사운드 Medical Four 4기 싱어로서

7년 동안이나 부산의 대학가 무대를 휘어잡았던 노래 실력이 여지없이 되살아났다.


나는 열창을 했고, 반주도 잘 바쳐주었고, 관중은 잡소리 하나 내지 않고 조용히 경청했다.

노래가 끝나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하자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정작 이 집의 전속가수가 노래할 땐 손뼉도 안 치던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앙코르’와 ‘브라보’를 연호하였고 일부는 기립박수까지 쳤다.


술김에 오기로 나갔다가 뜻하지 않게 앙코르곡까지 불러야 할 상항이 되자

이 예상치 못한 사태에 잠시 난감해졌다.

무얼 하지?


머뭇거림도 잠시,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생각 하나.

'그래, 먼저 독일어 인사로 가볍게 잽을 날리고, 영어 노래로 훅을 한 방 먹였으니,

이제 이태리 칸초네로다가 마지막 피니시블로를 날리자.'


하지만 반주자에게 곡목을 말하니 한 번도 연주해 본 적 없는 곡이라며 꽁무니를 뺀다.

하기야, 야간업소를 전전하는 미국 밴드가 이태리 칸초네를 해봤겠나?


나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를 달랬다.

"이 노래는 간단하니까 걱정 마세요.

A key에 세 개의 기본코드(A, D, E7)만 있으면 되니 음정 바뀔 때마다 감에 따라 그냥 코드만 눌러주면 됩니다. 자, 이제 A 코드로 그냥 '잔잔잔잔 잔잔잔잔 잔잔잔잔 잔잔잔잔' 하고 네 번 누르세요. 그것 끝나면 바로 노래 들어갈테니까."


제목은 La Novia(라노비아).

La Novia는 스페인어로 여자 연인 혹은 신부(bride)란 뜻으로, 노래의 내용은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야 하는 남자의 애끓는 슬픔을 노래한 곡이다.


네 번째 '잔잔잔잔'이 끝나자 내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래의 음파는 마이크를 타고 물결처럼 흘러가 청중의 귀를 간지럽히고 가슴을 적시기 시작했다.


이 노래가 어떤 노래인가?

젊은 시절, 나의 18번으로 가장 자신 있고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

한 순진한 여학생의 인생길을 뜻하지 않게 장애인의 아내로 들어서게 만든 바로 그 노래!


원곡의 애절한 감성에, 아내와의 연애시절 둘이서 걸어야 했던 그 험난한 고난의 가시밭길 추억까지 더해져

내 노래는 흐느끼듯, 포효하듯 울려 퍼졌다.

노래가 끝나자 홀 안은 박수와 환호로 뜨겁게 달아올랐고 또다시 ‘앵콜’이 터져 나왔다.


이러다간 밤새우겠다.

밥도 한 숟가락만 더 먹고 싶다 할 때 숟가락 놓아야 하는 법.

아쉬움을 남겨야 기억에 오래 남는다.

나는 손님들의 앵콜을 정중히 사양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조선고추의 매운맛


테이블로 돌아오니 일행들이 손뼉을 치며 난리가 났다.

"속이 후련하다."

"국위를 선양했다."

등의 말을 쏟아내며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잠시 후,

‘No!’라는 말로 내 속의 헐크를 일깨웠던 웨이터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왔다.

그는 자신을 매니저라고 소개하고는 아까는 사람을 몰라보고 실례를 범해 죄송하다면서

정중히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이 양반, 동양인이라고 그렇게 무시하더니 조선고추의 매운맛에 정신이 번쩍 든 모양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인간형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할 줄 아는 사람.

'야~ 멋지다. 그래, 이런 게 바로 진짜 사나이지. 고럼!'

이제 사람이 달라 보였다.


나는 그에게 당신의 말을 무시하고 내 마음대로 행동해서 오히려 내가 미안하다며 정중히 사과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노래가 너무 훌륭했다고 칭찬을 늘어놓으며

사과와 감사의 의미로 우리 일행에게 1,000cc짜리 생맥주 한 잔씩을 서비스로 내놓았다.


다들 의기양양해서 즐겁게 마시고 있는데 또다시 매니저가 병맥주 세 병을 가져왔다.

나는 의아해서 이게 뭐냐 물었더니 저 건너편 테이블 손님이 노래에 감사하는 뜻으로 보냈다고 한다.

누군가 싶어 돌아봤더니 내가 처음부터 유심히 보았던 커플이다.


이 집에 들어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는 진귀한 구경을 하게 되었다.

요즈음은 한국 드라마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남자가 여자에게 무릎 꿇고 꽃을 바치는 광경을 난생처음 목격한 것이다.


그런데 여자의 반응은 영 시원찮았고,

그 후 계속해서 두 사람의 얼굴에서 밝은 표정을 볼 수 없어 안쓰러워하던 바로 그 커플이었다.

나는 즉각 자리에서 일어나 그 테이블에 인사하러 갔다.


내가 감사의 인사를 하자 그들은 나를 반갑게 맞았고

잠시 같이 한잔하자며 웨이터에게 잔을 하나 가져오게 해서 맥주를 따랐다.


셋이서 호기롭게 건배한 후,

한잔 쭉 들이키고 대화를 시작하자 남자는 자신이 전에 한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하였다.

깜짝 놀라 어디서 근무했냐고 물었더니 인천에서 했단다.


이에 우리는 더욱더 친밀감이 느껴져 세 사람은 아주 즐겁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도 화기애애한 무드가 감지되었다.

이제 바람 잡고 사라져야 할 시간.


분위기가 무르익자 나는 마지막으로 여자에게 웃으며 말했다.

"세상 남자, 별 남자 있나요? 자기를 사랑해 주는 남자가 최고지.

내가 보기엔 두 사람 아주 잘 어울리는데, 앞으로 잘들 해보셔!"

그러자 여자가 호호호 하면서 웃는다.


나는 "bye bye"하고 일어섰다.

내 자리에 돌아와 한 번씩 곁눈질로 그 테이블을 쳐다보았더니

두 사람은 연방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운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촉매제 역할 하나는 확실히 한 모양이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프랑크푸르트의 멋진 밤이었다.

학생 때 낙제를 두 번씩이나 해가며 음악무대를 휘젓고 다녔던 경험이

훗날 이런 식으로 쓰임 받게 될 줄이야.....


역시,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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