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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의자

by 한우물


설악산 피골 계곡 초입(初入)

돌아가는 길목에 놓인 두 개의 낡은 의자


누가

갖다 놓았을까


가서

가만히 앉아본다


편안~하다


눈에 들어오느니

색색의 들꽃이요

초록 수풀이요

푸른 하늘이요

흰 뭉게구름

들리느니

새소리

맡기느니

피톤치드 향


참 편안~하다.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지나온 인생이

망막 위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 세상에 얼굴 내민 지 65년

사회에 첫발 디딘 지 39년

내년이면 의사 생활 40년

교직 생활 35년

첫 직장에서 정년을 채우고 물러난다


그러고 나면

그분이 준비해 놓은

인생 2막이 기다리고 있겠지


그동안

이 몸으로

참 치열하게 살아왔다

최선을 다해 달려왔다


내 소신껏

누구 눈치 보지 않고

거침 없이 살아 왔다


올라가 볼 만큼 올라가 보았고

이룰 만큼 이루었다


내 가진 능력

내 노력보다

몇 배 몇십 배로 부어주셨다


그때 깨달았더라면

그때 고쳤더라면

그때 참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부끄럽거나 후회스럽게 살진 않았다


너 그동안 참 수고 많~았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 곧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된다

이 후반전은 정해진 시간이 없다

그저 심판이 '끄~ㅌ' 하면

군소리 없이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길어야

전반전의 삼분의일도 안 될 것이다


지금은 하프 타임

쉬어가라고

그동안 몸에 쌓인 독소 마음의 찌든 때

다 빼고 닦아내라고

이 에덴동산에

보내셨나 보다

일주일이라는 최장의 휴식 시간과 함께


편안~하다

참 편안~하다


계곡 올라갈 사람 잠시 숨 고르라고

계곡 갔다 내려온 사람 잠시 쉬어가라고

후반전 뛸 사람 잠시 앉았다 가라고


저 의자는

저 길목에서

저렇게

기다리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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