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에세이> 3월 호
부부로 산다는 것
지난해 11월, 결혼기념일이 있는 달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두 사람 다 깜박 잊고 며칠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런 일은 결혼 후 처음 있는 일이라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옷이라도 한 벌 사 입으라고 돈을 주고는 결혼 40주년 기념일에 아들이 보내온 편지를 읽으며 함께 감회에 젖었다.
《아들의 편지》
먼저 40년을 같이 살아내신 끈기와 참을성에 존경을 표합니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40년을 같이 산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이 역시 신앙의 힘으로 버텨내셨겠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난 40년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노력해주신 아빠!
어딜 가서도 기죽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덕분에 어머니도 저희도 행복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언제나 강하고 무섭기만 한 줄 알았지만, 엄마와 가족들에게는 따뜻한 사랑을 주시는 반전 매력까지.
가장 기억나는 반전은 3년쯤 됐을까요?
언젠가는 외제 차로 엄마를 편안하게 모시겠다던 다짐을 이루실 줄은 알았지만, 그게 1,800cc짜리 혼다 시빅일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아들로서 아빠의 강직함과 끈기 그리고 노력을 물려받았어야 했는데,
‘대체 나는 어떤 걸 물려받은 건지?’ 하고 고민도 했었는데,
30대 중반으로 접어드니 확실히 탈모는 물려받은 거 같습니다.
앞으로도 거울 보면서 평생 아빠 생각 많이 날 거 같아요.
아직도 많이 어리고 약하기만 하지만 아빠의 정신을 이어받아 험한 세상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날이 올 때까지 부산제2항운병원 파이팅입니다.
자식을 2명 키워보니 엄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제야 많이 느끼고 있네요.
40년간 엄마의 내조와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희도 아빠도 없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쩌죠? 저는 아직 한 30년 남았습니다.
이제 전반전 끝나고 쉬는 시간이니 더 힘내서 아빠랑 잘 지내셔야 합니다.
아들이 돼서 엄마한테 좋은 거 사드리고 잘 챙겨드리고 해야 하는데 아직도 빌빌대고 있으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대신, 그 누구도 생각 못 했던 누나가 저렇게 잘하니 ‘역시 죽으란 법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같이 살면서 내방 뒤져서 과자 훔쳐먹고 할 때는 몰랐는데 요즘 정말 고맙다 누나야.
매형이 있었으면 볼 때마다 이유 없이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했을 거 같은데 그런 마음 안 가지게 해줘서 고맙고, 애니랑 오래오래 행복하길 기도할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역시 이 세상에는 우리 가족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들게 해주는 가족들!
정말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봅시다.
-그나마 유일하게 개그감이 있는 아들 올림-
결혼 후 43년이란 세월이 살 같이 지나갔다.
이제 칠순을 갓 넘긴 나이가 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 무얼까?’ 생각해 본다.
젊을 때는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일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내 능력보다 훨씬 큰 성과도 이루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어떤 것도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평생을 인생의 동반자로 살아가는 것만큼 위대한 일은 없는 것 같다.
둘 다 철없을 때 만나 멋모르고 결혼해서 자식 낳아 키우고 교육하고 자립시킬 때까지
서로 지지고 볶고 아웅다웅하면서도 자식들에게 상처 남기지 않고 큰 풍파 없이 오손도손 살아가며
황혼을 맞이하는 것만큼 위대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러기에 지금의 나에게 가장 위대한 인물은 평생토록 나의 손 꼭 잡고 함께 걸어온 나의 아내,
바로 당신입니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 위의 글은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2022년 우수콘텐츠잡지’인 <월간에세이> 20123년 3월 호에 게재돤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