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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15 유치장의 밤(후편)

by 한우물
경찰관과 아버지의 대화


나는 걱정하고 있을 부모님 생각에 집에 전화를 걸러 나갔다.

다른 멤버들은 아무도 안 나갔다.


아버지가 받았다.

밤잠 못 주무시고 내 연락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셨으리라.


“너 지금 어디야?!”

서릿발 같은 아버지의 음성이 귀청을 때렸다.


“중부서 유치장입니다.”

“뭐야?”


“여차여차하여 저차저차 되었습니다.”

“자아~ㄹ 됐네, 콩밥 좀 실컷 먹어보라우!”


‘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


나는 유치장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저리 나올 줄 몰랐는데 나한테 어찌 이럴 수가? 아이고, 이거 큰일 났네.


그부터 약 30분이 지난 후,

철창 밖에서 한 경찰관이 ‘한나영!’ 하고 내 이름을 부르고는 유치장 자물쇠를 열었다.


그를 따라갔더니 들어오는 입구 쪽에 작은 책상이 하나 놓여있고

앉아있는 경찰관 맞은편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나를 훈방(訓放, 훈계 후 석방)으로 빼내려고 오셨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너무나 반가웠다. 구세주가 온 것이다.


경찰관이 나를 보더니 아버지에게 “아들 맞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


경찰관은 나에게 훈계를 하려다 말고

“이거 장발이네!” 하더니 옆에 놓여있는 가위를 드는 것 아닌가.

위기일발!


그 순간, 아버지가

“그 녀석 머리 빡빡 깎아버리시라요!” 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아니 무슨 이런 황당한 시츄에이션이?

다른 건 몰라도 머리 자르는 것만은 봐 달라고 빌어도 시원찮을 마당에 아들 머리를 확 깎아버리라니?

이런 무심한 아버지가 있나?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

.

가위를 든 경찰관의 손이 내 머리에 닿기 직전, 아버지의 일갈(一喝)에 그의 손이 멈칫하더니

“오늘은 자네 아버지의 얼굴을 보아 그냥 내보내니 나가는 즉시 이발소에 가서 머리 깎아!”

하고는 가위를 도로 내려놓았다.


나는 속으로 "휴~~"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경찰서를 나온 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앞서가고, 나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뒤따랐다.


회상


나는 그날 하룻밤을 유치장 안에서 지새우면서 너무 놀랐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곳이야 말로 생지옥이었다.


철창 하나 사이에 두고 어쩌면 이렇게 세상이 다를 수 있단 말인가?

같은 하늘 아래 사는 동포인데 어쩌면 이렇게 서로 다른 세상에 살 수 있단 말인가!


상습적으로 유치장에 들어오는 저들은 어쩌다 저런 세상에 살게 되었을까?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들과 비교했을 때, 지금껏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내가 속한 세상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부모의 울타리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 지 그때 처음 알았다.




'아버지는 왜 유치장에 갇혀있는 불쌍한 나의 머리를 박박 깎아버리라 했을까?'

'아버지가 깎으라 하는데, 경찰관은 왜 가위를 도로 내렸을까?'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 내가 자식을 낳고 키워보니 부모의 심정이 이해가 갔고

기막힌 반어법(反語法)의 묘미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이란 하지 말라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만약 그때 아버지가 봐달라고 사정했다면 그 경찰관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하나 봐줬으면 됐지 뭐 두 개씩이나 봐 달라 하냐?'


그리되면 서로 입장 난처하게 된다.


아버지는 나를 훈방시키기 위해 아버지의 전직(前職)을 팔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존심 구겨가며 그 경찰관에게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그래서 일차 목적은 달성했는데, ‘장발’이란 돌발변수가 등장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목청을 올리면서 강력한 반어법을 사용했다.


그때, 나이가 제법 듬직한 그 경찰관이 어찌 부모의 심정을 몰랐겠는가.

거기다 그 목소리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뉘앙스를 느꼈을 것이다.


“야이 썅! 늙은 애비가 여기까지 와서 사정하고, 그래도 과거에 고관(高官)을 지낸 사람이

당신에게 머리를 숙였으면 이왕 봐주는 거 끝까지 봐주지 무얼 그리 치사하게스리....."




지금 생각해 보면 형제 중에 나만큼 부모 마음 아프게 하고 부모 속을 썩인 자식도 없는 것 같다.


불의한 일에 대해서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줄을 쥐고 있는 사람에게까지도 바로 쳐 받았던 그 꼿꼿한 아버지.

'잘 봐달라'는 말을 누구보다 싫어했던 아버지.

아마도 관직에 있어 그랬겠지만, 아무튼 경찰과 기자를 가장 싫어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늘그막에 자식 문제로 말단 경찰관 앞에 서서 '잘 봐 달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일 때는

오죽이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에그, 내가 죽일 놈이다, 죽일 놈이야!


거 참, 이상타.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면 자식은 왜 부모에게 잘한 것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못한 것만 생각날까?

그만큼 빚이 많아 그렇겠지?


아~ 오늘따라 아버지가 몹시 보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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