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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32 고롭다? 괴롭다?

by 한우물

이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헬스 트레이너와의 개인 PT가 다소 과한 탓이었는지 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니 딱히 아픈 곳은 없는데 뭔가 몸이 찌프둥하면서 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 고롭다와 괴롭다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건 분명 괴로운 것이라기보다는 고로운 것이 맞는데?


'고롭다'는 '괴롭다'의 방언?

사전을 찾아보니

괴롭다는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럽다.'로, 고롭다는 괴롭다의 방언형으로 주로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 등에서 쓰인다고 나와있다.


하지만 똑똑한 AI들이 다양한 자료로부터 수집하여 정리한 것을 보면 보다 차원 높은 사실을 전한다.

** '고롭다'는 몸이나 마음이 편치 않고 고통스러운 상태를 나타내는 말로, '괴롭다'의 본딧말이자 옛말입니다. 이는 한자어 '쓸 고(苦)'와 접미사 '-롭다'가 결합하여, '고통스러운 것', '마음이 아픈 것'을 뜻하게 된 것입니다. **

**어원과 변화 과정을 보면 'ㅣ모음 역행동화' 현상으로 '고롭다' → '괴롭다'로 변화했습니다. 뒷음절의 'ㅣ' 소리가 앞음절에 영향을 주어 '고' → '괴'로 변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고롭다는 말은 괴롭다의 원형으로서 현재는 일부 지방(특히 경상도)에서만 쓰이는 방언쯤으로 취급받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의미의 차이

그럼 둘 다 같은 의미의 말일까?

글쎄.


괴롭다는 말도 알고, 괴롭다는 말도 아는 경상도 출신인 필자는 젊어서부터 두 단어를 차이 나게 사용해 왔다.

'괴롭다'는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태에서도 간혹 쓰긴 했지만 주로 정신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써 왔고 '고롭다'는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찌푸둥하고, 뭔가 기분 나쁠 정도의 통증이 있을 때 사용해 왔다.

이는 학교나 부모에게 배워서도 아니요, 내가 공부해서 알아낸 것도 아니요, 그저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입에 붙은 말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주장이 신빙성이 있으려면 증거가 뒷받침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먼저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예문들을 뒤져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 사전에는 '고롭다'는 단어는 아예 등재되어 있지 않고, '괴롭다'에 대해서만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럽다.'는 정의와 함께 다음과 같은 예문을 올려놓았다.


1)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순간이었다.

2) 몸이 괴로워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3) 거짓말을 하려니 마음이 괴로웠다.

4) 나 때문에 사고가 난 것 같아 너무 괴로웠다.

5) 두고 온 자식들과 마누라의 일이 걱정이 되어서 나날이 괴로웠다. ≪최일남, 거룩한 응달≫

6) 고지식한 사람이 세상 살아가기가 더 힘들고 괴롭다.

7) 시험에 낙방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아들 보기가 괴롭기 짝이 없다.


자, 어떤가? 일곱 개의 예문 중 육체적으로 힘든 것에 사용된 것은 단 하나.

그렇다면, 필자가 앞서 주장한 '괴롭다'는 말은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상태에서도 간혹 쓰긴 했지만 주로 정신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써 온 말이라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란 사실이 증명된 셈이다.


다음으로, 고롭다가 들어간 가상의 예문을 한번 살펴보자.


1) 산사태로 마을이 쑥대밭이 되어 주민들의 마음이 많이 고로웠다.

2) 오랜 지병으로 몸이 고로워 눕는 날이 잦아졌다.

3) 부모님의 불화로 어린 시절을 참으로 고롭게 보냈다.

4)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에 하루하루가 고롭다


이들 표현 중 필자에게는 2번을 제외한 나머지 예문들은 너무 어색하게 와닿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 생각이 다 맞다고 자신할 순 없다.

경상도 사람들은 다 나와 같은 생각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요청한다.이 글을 읽는 독자 중 경상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리지널 경상도 사람 중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분들에게 댓글로 자신의 견해나 경험을 밝혀주십사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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