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층 창문에 새겨진 기특하고도 안쓰러운 인사
판독실에서 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며 일을 하는 내게, 한두 시간마다 일어나 암막을 걷고 창밖 풍경과 마주하는 순간은 눈과 마음을 보듬어주는 더없이 소중한 휴식의 시간이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해서 방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유리창에 길게 늘어진 지저분한 음영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새가 유리창에 지리고 간 배설물이었다.
창문을 열고 손을 뻗어보았지만, 도무지 닿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내 방은 7층, 내 힘으로는 어찌해 볼 재간이 없어 시설과 직원을 불렀으나 그 역시 고개를 저으며 감당 불가라 하였다.
그 후, 지친 눈도 풀 겸 창밖 풍경을 즐기려 할 때마다 그 오물이 눈에 들어와 볼 때마다 기분이 언짢았고, 일상의 낙은 금세 짜증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며칠을 찌푸린 얼굴로 지내다가 문득 생각을 달리해 보았다.
새의 입장이 되어본 것이다.
'변을 보고 싶다면 그냥 나뭇가지에 앉아 편안히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테고, 아니면 창공을 날아가며 지나가는 사람 머리 위로 시원하게 한 방 날릴 수도 있었을 터인데, 어쩌다 이 녀석은 절벽이나 다름없는 유리창에다 지리고 갔을까?'
그 과정을 그려보았다.
유리창을 향해 가미카제처럼 돌진해 오다 부딪히기 일보 직전에 몸을 뒤집으며 꽁무니가 유리창에 닿을 듯 말 듯한 상태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투하하고 비상하는 장면을.
그러자 그 절묘한 테크닉과 타이밍에 경이로움마저 느껴졌고, 아찔한 그 순간의 위태로운 몸짓을 상상하니 언짢았던 마음은 어느새 안쓰러움으로 바뀌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짜증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러면서 드는 또 하나의 생각.
"13층 건물의 하고많은 유리창을 두고 하필이면 7층 내 방 창문이라니! 참으로 기특한 새로다. 얼마나 내게 인사가 하고 싶었으면 저렇게 어렵사리 자국을 남기고 갔을까? 까치였을까, 아니면 까마귀였을까?"
달라진 일상
상황은 바뀐 것이 없다.
오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내 손은 여전히 그곳에 닿지 않는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오물'을 '애틋한 인사'로 바꾸어 보는 순간, 그녀가 남긴 형상은 차원이 달라 보였다.
"야~ 예술 작품이 따로 없네. 이건 마치 묵화가(墨畵家)가 일필휘지(一筆揮之)로 힘차게 한 획 그어놓은 것 같구먼."
그 후로 나의 창가는 다시금 즐거운 휴식의 공간이 되었다.
이제 나는 매일 아침, 목숨을 걸고 안쓰러운 안부를 건네준 그 기특한 친구의 작품을 감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새똥이 전하는 메시지
그렇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인생이란 조각보에는 타인에 의한 것이든, 나의 잘못에 의한 것이든,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결과이든, 자신의 힘으로 닦아낼 수 없는 보기 싫은 얼룩이 여기저기 묻어있다.
이미 벌어진 바꿀 수 없는 상황. 이를 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여기에 가장 강력한 처방은 '해석의 렌즈'를 갈아 끼우는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오물을 탓하며 풍경을 포기하는 대신, 그것을 하나의 서사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불편한 진실 속에서도 미소 지을 여유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