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에세이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지난 두 시간 반 동안 있었던 장면들을 회상하는 동안,
안 선생이 한 말 한마디가 나를 깊은 상념에 빠지게 했다.
”교수님, 이번에 저는 울타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울타리’라~~~
그가 내뱉은 이 한 단어 속에 함축된 그의 감정과 의미가 내 가슴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내가 있을 땐 아무도 초음파실을 건드리지 못했다.
심지어, 강력한 카리스마에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파워를 휘둘렀던,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 앞에만 가면 벌벌 기던 재단 이사장마저도 건드리지 못했다.
그런 내가 35년 간 초음파실에 쳐놓은 울타리가 나의 퇴직과 함께 사라지자
초음파실에는 곧바로 삭풍한설(朔風寒雪)이 몰아쳤다.
나처럼 초음파실을 차고앉아 초음파 하나만 하겠다는 후계자가 없다 보니,
내가 나가고 나자마자 내가 구축해 놓은 시스템은 붕괴되고
초음파실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방사선사 세 명 중 두 명은 초음파실을 떠나야 했다.
그중 막내인 지희는 그나마 비뇨기과 초음파쇄석실로 가서
지금껏 배운 것을 더 잘 써먹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안 팀장은 팀장 계급장 떼고 일반촬영실로 전출되어 가서
신입사원들과 함께 매일 단순X선촬영이나 하고 있으려니 오죽이나 속이 쓰렸겠는가!
그는 지난 1년여 동안 그야말로 절치부심(切齒腐心),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세월을 보내면서
대학교수라는 제2의 인생에 대한 강력한 동인(動因)과 투지가 생겨났고
마침내 그 열매를 따게 되었으니 그 또한 나만큼이나 이 자리가 감회 깊은 자리가 되었을 것이다.
울타리의 의미
이 사회에서 울타리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남자가,
집에서는 가장이요 직장에서는 한 부서의 장이 되었을 때 갖추어야 할 요건 중
가장 중요한 덕목 하나를 들라면 무엇이라 하겠는가?’
이런 자문(自問)에 대해 나는 젊어서부터 일관되게 다음과 같이 답해 왔다.
“그것은 내 휘하의 부하직원들이나 가족에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
화살이 날아올 땐 방패가 되어주고,
세찬 비가 내릴 땐 우산이 되어 주고,
찬바람이 휘몰아칠 땐 따뜻한 외투가 되어 덮어주는
울타리 같은 가장(家長), 그리고 상사(上司).
하지만 이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울타리는 없다.
그러니,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울타리 안에서 안주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
언젠가 그 울타리가 걷혔을 때를 대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며 실력을 쌓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안 선생은 멋지게 성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