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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Jun 30. 2022

인II 05 울타리(2) 재회 그리고 이별

생활 에세이

3분 스피치


2020년 1월 31일 오후 6시.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길치인 나를 위해 시장 밖 까지 나와 기다리다 내 차를 안내해온 임 사장 덕에 

시장 골목 안 횟집 코앞에 차를 대는 호사를 누리며 가게 안에 들어가니 대부분 이미 와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 보고 싶었던 얼굴들. 

다들 일어서서 환한 웃음으로 “교수니~ㅁ” 하며 반긴다.


참석 예정 인원 11명 중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긴 1명 빼고 10명이 모였다.

밑반찬과 건배용 술이 들어온 후, 먼저 내가 일어나 축사와 더불어 반가움의 인사를 전하고,

다음으로 당사자인 안 선생이 답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김 실장이 건배사를 하였다.


회와 술이 본격적으로 들어오자 먹고 마셔가면서 앉은 순서대로 한 명씩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3분 스피치가 시작되었고 

오랫동안 내 밑에서 이런 트레이닝을 받아온 그들은 

어느 누구도 쭈뼛거리거나 버벅대지 않고 파도타기 하듯 자연스레 술술 이어나갔다. 


‘회식 자리에서 3분 스피치 라니?’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사람도 많겠지만 

나는 재임 시 내 휘하의 직원들과 회식할 때면 그 순서만큼은 빼먹지 않고 시켰다.


내가 그리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회식 자리에서 한 사람이라도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그 방법으로는 3분 스피치를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식 자리에 대한 나의 지론은 이렇다.


'직장 내에서는 직무와 직급에 따라 철저히 위계질서를 지키며 절도 있게 일하되, 

회식 자리에서는 그딴 것 다 벗어던지고 한 식구로 하나 되어 

격의 없이, 더불어, 즐겁게 놀아야 한다. 

그래야만 직장 회식이 피곤한 자리가 아니라 우애 넘치는 기다려지는 자리가 될 수 있다.'

 

 

보디가드


3분 스피치가 전부 끝난 후부터는 

테이블마다 왁자지껄 깔깔대며 자~알 먹고, 자~알 마시고, 자~알 논다.

오랜만에 그런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내가 현직에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혔고 

그런 환상은 화장실 갈 때 최고조에 달했다.


회식 자리에서 내가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뜨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남자 직원 한 명은 어김없이 내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 나오는데 

이 날은 평소 말없는 영주가 말없이 따라나섰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혹시라도 내가 넘어질까 해서다.

 

1988년, 

나는 회식자리 끝에 빗길에 넘어져 대퇴부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일 이후로 직원들은 내가 화장실 계단을 올라갈 땐 나보다 한 계단 밑에서 따라오고 

화장실에 들어가면 밖에서 장승처럼 지키고 섰다가 

계단을 내려올 땐 먼저 한 계단 아래로 내려가 내 발걸음에 보조를 맞춘다. 


홀 내에 화장실이 있는 가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화장실 간다고 자리에서 일어서면 

직원 한 명이 같이 일어나 뒤를 바싹 따라오며 다른 사람이 부딪히지 않게 막고,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고 섰다가, 

내가 나오면 또다시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며 보디가드처럼 행동한다.  


그러다 보니 다른 테이블 손님 중엔 염치없이 표시 나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아마도 그들의 눈엔 내가 암흑가의 보스나 경호를 요하는 VIP 쯤으로 보였나 보다.  


현직에 있을 때나 은퇴 후나 한결같이 대하는 사람들.

요즈음 세상에 이런 충직한 부하들이 또 있을까?


석별의 시간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사이 매운탕과 밥이 나온다.

여느 때처럼 나는 미리 계산해놓기 위해 자리를 뜨니 이번에는 안팀장이 따라 나온다.


"교수님, 오늘 계산의 절반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너는 내가 가고 난 후 다들 데리고 허심청 브로이에 가서 맥주나 한 잔 사줘라. 

그게 오늘 니가 할 일이다."

 

초장집 주인에게 계산하자 하니 “교수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며 인사를 한다. 

나는 기억에 없는데 이 아주마씨는 나를 기억하나 보다.


계산서를 보니 먹은 것에 비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적게 나왔다. 

횟집 임 사장이 나 오랜만에 왔다고 회를 정신없이 막 썰어 준 모양이다.


"아이고, 이래 가지고 남는 게 있겠냐?"


내가 미리 바꿔간 현금으로 전액 지불하자 초장집 주인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현금으로 주시면 제가 이 돈 다 못 받지예!" 하며 만원을 돌려준다.


나는 그 돈을 우리 테이블에 음식 날라다 준, 

지금은 계산대 안쪽에서 설거지하고 있는 알바 아주머니에게 

오늘 수고 많았다는 인사와 함께 건네주었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 

이런 시장통에서 서빙과 잡일을 하며 팁을 받아보는 게 처음인지 선뜻 받지를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아이고, 내 손이 다 무안할라 카네.” 하는 나의 말과 

“손님이 주시는 돈이니 마~ 받아라.”는 주인의 말에 

그녀는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두 손으로 공손히 받는다.

 

매운탕에 밥까지 맛있게 먹고 난 후, 

대리운전기사로부터 근처에 당도했다는 전화가 오자 전부 일어섰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 차 앞에서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차에 올랐다.

그러자 다들 내 차 주위를 에워쌌고 나는 유리문을 내리고 다시 한번 인사하며 손을 흔들었다.


“교수님, 안녕히 가세요~~”  

“건강하세요~~” 


모두들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내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댔다.

차가 시장을 빠져나가자 나는 등받이를 약간 뒤로 재치고 편히 앉아 눈을 감았다.

 

오랜 세월 동안 너무 많이 정이 든 사람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저들을 오늘처럼 다 함께 만날 수 있을까?


안구가 촉촉해져 오는 걸 보니 나도 이제 나이가 들만큼 든 모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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