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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Jun 29. 2022

인II 04 울타리(1) 그리운 얼굴들

인(人)과 정(情)

보고싶은 얼굴


2020년 1월 31일

내가 35년 6개월 근무했던 대학에서 퇴직한 지 1년 5개월이 되는 날, 

퇴직 후 처음으로 과거 초음파실에서 나와 함께 근무하던 옛 동지들을 만났다.

그날은 10년간 내 밑에서 팀장으로 일하던 안 선생의 영전을 축하해주기 위해 내가 마련한 자리였다.  


첫 입사 때부터 시작해서 16년 간 초음파실에서 나를 한결같이 보좌해온 사람.

그런 그가 작년 말 한 대학의 방사선과 교수 모집에 지원하여 9:1의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올 3월부터는 대학병원 방사선사에서 대학교수로 신분을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평소 나는 초음파실 방사선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다그쳤다.


"쉬지 말고 공부해라. 그리하여 부디 박사학위 따서 대학교수 자리 나면 그 길로 가라.

너희들은 실무 경험도 풍부하고 자질도 훌륭하니 충분히 그럴 자격 된다. 

그리되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고 정년도 훨씬 연장될 것이다."


이제 그 두 번째 열매가 맺혔으니 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하지만,  퇴직 후 호주머니 사정이 옛날 같지 않은지라 

처음엔 아직 과 내에 남아있는 방사선사 세 명만 부를까 했다.


그러다가, 25년 동안 나와 함께했던 접수요원 미스 전이 알면 섭섭겠다 싶어 미스 전도 부르라 했다.

(이제 나이 50 줄에 들어선 아이 엄마지만 처녀 때 내가 뽑은 여성 동무들은 영원히 미스로 부른다).


그러다 보니, 타 부서로 전출되어 간 미스 신이나 막내 방사선사 지희가 알면 또 서운하겠다 싶어

그들도 부르라 했다.


그러고 나니, 10년 전 해운대 백병원이 생길 때 분사되어간 방사선사 4명과

마산대학 방사선과 교수로 간 구 선생까지 눈에 삼삼하여 그들도 다 부르라 했다.


이제 끝났나 싶었더니
이 번엔 5년 동안 방사선실장을 하면서 나를 극진히 모신 김 실장이 생각났다. 

그는 나의 퇴직 후에도, 하지 말라는 데도 말 안 듣고, 명절 때마다 선물을 보내오는 고약한(?) 사람인데
얼마 전에 실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런 그에게도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어 같이 오라 했다.


이제 참말로 끝났나 했는데, 또 한 사람 마음에 빚 진 사람이 생각났다. 

그가 레지던트 하던 시절은 말할 것 없고, 퇴직 후에도 컴퓨터 문제로 애로사항이 있을 때마다

전화를 걸어 귀찮게 해 온 제자 김 교수. 그에게도 밥 한 번 사야지 싶어 오라 했다.


그러고 보니 도합 13명이 되었다.


이제 날짜를 정할 차례.

이런 일은 빠를수록 좋고 어차피 13명의 스케줄에 다 맞출 순 없는 지라 

안 팀장에게 두 날을 제시한 후 한 날 잡아서 알려 달라 했다.

그래서 정해진 날이 1월 31일. 11명이 참석 가능하단다. 


다음으로는 장소를 정할 차례.

처음엔 부산백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서면에 있는 음식점으로 하려 했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 단골이었던 횟집 여주인이 카톡으로 신년 문안 인사를 보내온 게 생각났다.


‘아이고, 요새 경기가 말이 아니라 장사도 힘들 텐데 이왕이면 그 집을 팔아줘야 안 되겠나!' 

그래서 정한 장소가 허심청 뒤, 온천시장 골목 안에 있는 추억의 칠암횟집.


오랜만에 주인장인 임 사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그녀를 비롯해 다들 보고픈 그리운 얼굴들이라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떠올리며 가슴이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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