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간의 높이에서 드러나는 생각의 차이
2013년 그리스 산토리니를 여행했다.
2019년, 몰디브에 갔다.
아래 사진은 전문가가 찍은 사진
산토리니와 몰디브,
워낙 아름다운 곳들이지만 그 장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있다.
바로 난간을 최소화 했거나(산토리니) 또는 아예 없다(몰디브)는 것이다.
해안의 언덕을 따라 이어져 있는 그리스 산토리니의 산책길은 난간을 매우 낮게 만들어 놓았다. 난간의 높이가 어른의 무릎 높이에도 못미친다. 난간을 그렇게 낮게 만든 이유는 바다 전망을 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과연 난간을 저렇게 만들어도 될까?
몰디브의 리조트가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난간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저 다리들에 난간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경관이 크게 훼손될 것이다.
그런데 과연 난간이 없어도 될까?
이런 상상을 해보자.
누군가 술을 마신 상태에서 걷다가 실족을 했다고 가정하자.
산토리니에서는 언덕 아래로 구를 수 있고,
몰디브에서는 바다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술을 마시고 언덕 아래로 구른 사람은 아마도 높은 확률로 지자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리조트였다면 리조트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사실 술을 마시고 주의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실족한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가해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피해자라고 주장할 것이고, 난간을 낮게 설계한 이를 가해자라고 주장하며 책임을 물을 것이다.
언론은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지 않은 죄'를 물어 책임을 탓할 것이고, 입법자나 행정가들은 각종 규제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니까... 라면서...
그렇다면 서구 사람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그들의 생각은 "자신의 자의적 행위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오로지 진다"는 생각이다.
이 생각의 차이가 난간의 높이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러기에 바다전망을 가리지 않도록 산토리니의 산책로의 난간을 낮출 수 있고,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몰디브 리조트의 난간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책임진다는 생각이 자율을 만들어내고,
자율이 자유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자율은 성숙함에서 시작된다.
성숙하지 않은 생각에서는 자율이 생겨날 수 없다.
무슨 일만 벌어지만 책임질 사람부터 찾는 모습은 우리 사회가 미성숙한 사회임을 반영한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남에게 책임을 지우기 좋아하는 대한민국 사람도 산토리니나 몰디브에 가면
그곳의 규칙을 잘 이해하고 잘 따른다는 사실이다. 많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다.
나의 행동에 대해 온전히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 지금 대한민국인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