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신설'은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정치권의 단골 주제다.
수년 전에는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에서 "서남의대 없어진 자리에 의대 다시 설립하겠다"고 주장했고, 지금도 이곳 저곳에서 의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의과대학을 신설한다는 것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왜 실패하기 쉬운지를 서남대 사례를 들어 알아보자. 서남대는 설립된 의과대학이 최초로 폐지된 사례다.
1988년 세워진 서남대에는 1995년 의학과가 개설되었다. 의과대학 설립인가를 남발했던 김영삼 정권에서 받아낸 것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신설의과대학 건립이 난립했던 것은 사실이고 의대설립 인가에 뒷거래가 따른다는 소문이 무성했었으나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다) 그런데 의대설립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의학을 가르칠 교수들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몇명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라 해부/생리/병리/약리 등 다양한 과목의 기초와 20여개가 넘는 임상과목을 가르칠 요원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이 있는데, 의학의 특성상 이론만 배워서는 안되고 임상을 배워야 하므로 임상교육을 위한 부속대학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교회는 천막교회로 시작해서 궁궐같은 교회로 성장할 수 있지만, 의대는 천막교회로 시작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의과대학 설립은 계획서 만으로는 설립될 수 없고, 교수진들과 특히 부속병원을 설립한 다음에야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다룰 의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남의대는 제대로 된 부속병원 하나 없이 설립인가를 받았다. 확인된 바는 없지만, 설립자가 학교재단으로부터 횡령한 1천억원 이상의 돈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마치 천막교회처럼 계획서만으로 의대설립인가를 받아낸 것이다. 그러나 의학교육이란 것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기초의대 교수들은 어찌어찌 영입을 해서 생색은 낼 수 있었지만 의대부속병원의 설립은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의대부속병원을 세우는 것에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대형 규모의 설립에 적어도 수천억원의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설립 이후 병원의 지속적인 운영이 어렵다. 서남대의 경우 근거지를 둔 남원에 수천억 원의 막대한 자금을 들여 대형병원을 짓는다고 해도 너도나도 일류병원을 찾아 서울로 모여드는 시대에 지방의 종합병원을 가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결국 서남대는 고작 12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서남의대 부속병원으로 세웠다. 동네병원만도 못한 규모였다.
12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으로는 의과대학 부속병원의 역할을 해낼 수 없다. 의대 유지는 해야겠고, 제대로 된 부속병원은 짓기 싫었던 서남대는 편법으로 위탁부속병원이라는 제도를 활용하기로 했다. 이것은 기존의 규모 있는 병원에 의과대학생의 교육을 위탁하는 것이었다. 서남대는 600병상 조금 못되는 592병상 규모의 남광병원이라는 곳에 임상교육을 위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첫 입학한 학생들이 임상실습을 받아야 하는 기간이었던 2003~2004년에 이 두 병원, 즉 122병상 규모의 서남의대병원과 592병상 규모의 남광병원을 합하여 단 1건의 수술도 없었던 것이다. 즉 2년간 의대생들은 단 1건의 수술도 '구경도 못한 채'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면허를 받은 것이다.
2005년에는 마취과 의사가 입회한 수술이 131건을 기록했지만 그 중 이비인후과 수술이 100건이었다. 그리고 외래 환자수도 하루에 10명~20명에 불과했다. 의과대학생의 교육을 담당하는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동네의원보다도 못한 수준의 진료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서남의대는 의대생을 동네의원에 위탁교육을 시키기도 했다.
1995년 설립된 후 서남의대는 단 한 번도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시행하는 의과대학 인증평가를 통과하지 못했다. 2013년 1월에는 부실한 의학 임상실습을 했다는 이유로 대학을 졸업한 134명에게 의학사 학위 취소 명령이 내려졌고 일부 재학생들의 학점도 취소됐다. 이렇게 부실한 의대교육을 받은 서남의대 졸업생들에게 의사면허 응시자격을 주어야 하는지 의사들 사이에도 문제 제기가 꾸준히 있었다. 냉정하게 본다면 그들은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했으므로 응시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 맞았지만, 그들이 제도의 피해자라는 인식 아래 결국 그들은 모두 의사면허를 받았다. 그들이 피해자라는 주장은 사실상 맞는 주장이었다. 그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것은 학생들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책임은 학생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부실 의과대학에 개설허가와 신입생을 뽑을 수 있는 인가를 내어준 교육부에게 있었다.
이렇게 부실의학교육의 대명사가 되었던 서남의대는 2018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폐지가 되었다. 1995년 의과대학 설립 인가를 받은 후 의과대학 인증평가를 단 한 번도 통과하지 못한 채 23년만에 설립인가가 취소된 것이다. 의과대학이 탄생되어서는 안될 부실 의대가 하나 만들어지면 어떤 폐해가 발생하는지 서남대가 여실히 보여주었다.
요즘 나오는 의대 신설 주장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남의대처럼 천막교회 짓듯이 계획서만으로 의대를 만들겠다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의사들은 서남의대의 속편을 보고싶지 않다. 1편으로 끝났으면 하는 것이다.
남광병원 실태 충격적 "수련병원이 이 지경이라니"
https://www.medicaltimes.com/Users/News/NewsView.html?ID=1073524
서남대생 실습거부, 도대체 남광병원 어떻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