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향의 교향악 축제를 다녀와서
매년 예술의 전당에서는 4월 한달동안 교향악 축제라는 큰 행사가 열린다. 전국 교향악단의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을 4월 내내 볼 수 있는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아주 설레는 행사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번에 춘천시향의 공연을 갔고 춘천시향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과 프랑크 교향곡을 연주했다.
여담으로 이번 공연은 개인적으로 뜻깊었던 것이 회사에서 친한 동료와 함께 간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그 동료는 항상 내가 공연을 보러다니는 것에 대해 호기심이 있었고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을 추구하는 친구다. 조심스럽게 같이 공연 가자고 제안을 했고 그는 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고 같이 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색다른 경험을 해서 너무 좋았다고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좋은 경험을 안겨준 것 같아 뿌듯했다.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노 솔로를 위해 오케스트라는 반주 역할을 하는 장르다. 그래서 피아노 솔로와 오케스트라의 합이 굉장히 중요하다. 피아노 솔로를 돋보이게 배경 음악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하는 것과 더불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주고 받는 대화를 할 때는 그 대화의 상대방으로서 역할에도 충실해야 한다. 뭐가 되었든지 간에 오케스트라는 주인공이 아니고 배경 내지는 동료의 역할을 해야 한다.
반면 교향곡은 오케스트라가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표현하는 주인공으로서 역할을 한다.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보다 크고 강하게, 슬픈 이야기를 하고 싶은 부분은 보다 애절하게 등등 오케스트라가 주인공으로서 그 역할을 해낸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의 공연은 오케스트라가 그 역할을 잘 해냈다. 1부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할 때는 오케스트라는 피아노 솔로를 충실하게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멜로디를 주고 받는 부분에서는 피아노의 오랜 친구처럼 좋은 말동무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의 피아니스트인 주희성 서울대 음대 교수의 연주가 더 돋보였던거 같다. 주희성 피아니스트는 베토벤 협주곡 3번을 거침없이 그려내갔다. 특히, 1악장 마무리 부분에서 매우 여리게 피아노를 컨트롤하며 포르테 그 이상으로 끌고 가는 부분은 정말 일품이었다. 피아노의 섬세한 테크닉을 오케스트라가 긴박한 분위기를 만들어가며 배경을 깔아줘서 피아노가 더 돋보였던거 같다.
반면 2부의 프랑크 교향곡은 이제 오케스트라가 당당하게 주인공으로 나왔다. 애절한 멜로디하며, 점차 고조되는 긴장감, 그리고 이완하는 부분들... 모든 부분들을 오케스트라가 자신감있고 당당하게 표현했던거 같다. 베토벤 협주곡에서 조연으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이 기억 안날만큼 주연으로서의 역할을 확실하게 한 연주였다.
우리도 삶을 살아갈 때 다양한 상황에 놓이고 이 상황마다 우리의 역할은 다르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철두철미하게 일처리를 해야하는 직장인으로서의 모습과는 달리, 애인 앞에서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역할을 해야한다. 애인앞에서 철두철미하게 하나하나 따지는 모습은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모습을 좋아하는 애인앞에서라면 모를까..ㅎㅎ)
그런데 우리는 가끔 우리의 역할을 혼동하여 그 역할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때도 있다. 우스개소리로 낄낄빠빠라는 말이 있다. 낄데는 끼고 빠질때는 빠져라는 건데 우리가 처한 역할에 충실하라는 말에 잘 어울리는 표현인거 같다. 오늘의 공연에서 협주곡을 연주할 때 오케스트라가 '낄낄빠빠'하지 못하고 주인공으로서 '나댔다'면 피아노 솔로는 확 묻히고 피아노 협주곡으로서의 음악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도 행동하기 전에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한번 생각해보고 행동하면 보다 어른스러운 삶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