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빈첸시오 May 31. 2022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세대

끝없는 갈라치기


1. 서론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로 불렸던 나를 포함한 20대들은 어느덧 세 가지를 뛰어넘는 N포세대로 진화했다. 포기가 만연한 시대가 된 것은 경제적 요인이 강력했다.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끝없는 알바를 하면서 생활을 간간히 유지해 간다. 하지만 학자금 대출은 늘어나 빨리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무기력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는 대학을 가지 않고 취업을 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국은 대학을 가는 것이 당연한 스펙이었고 불과 5년 전만 해도 80%에 육박하는 대학진학률을 보였지만 현재는 70%가 조금 안 되는 수준이다. 대학을 안가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회라 생각해서 취업을 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대졸자 보다 경제적대우도 적고, 고졸이라는 학력이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 청년은 386세대와는 다르게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안에서 우리의 모든 행위는 소비지향적인 형태를 보이지만 수입이 없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들이 많아지게 된다. 이 욕망의 포기는 욕망의 소멸이 아닌 욕망의 재정립을 의미한다. 그래서 현재 청년의 소비는 멈추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20대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울 때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생각은 기업의 마케팅 전략으로 이용되고, 심화된다. 

 이 보고서를 통해 자본주의와 기업이 나이 별로 세대를 어떻게 만들어 내고 이용하는지 파악해 볼 것이다. 청년의 소비습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청년이 원하는 삶의 기준이 어떻게 변하게 되는지, 현재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세대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지 세대마케팅과 만들어진 세대들의 정치참여 방식을 분석해 풀어나가려고 한다.      


2. 세대 마케팅

 젊은이들이 사회의 주요 세대로 된 90년대부터 현재까지는 소비의 형태에 따라 새로운 세대가 탄생해왔다고 파악했다. X세대부터 현재까지의 공통적인 특징이 소비의 민감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당시 광고 등의 미디어를 통해 접할 수 있다. 미디어는 당시 세대를 위한 의류, 청소년을 위한 휴대폰, 젊은 세대를 위한 식당 등의 상품이 출시되고 노골적으로 세대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표현함으로써 그 당시 세대들을 견고히 굳혀가는 역할을 해왔다.

 세대의 정보 또한 미디어를 통해 취득한다. 이연경(2015)은 경험적 연구결과에서도 청소년과 노인 세대는 서로에 대한 정보를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통해서 얻기보다는 주로 간접적인 경로로 얻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두 세대 모두 상대 세대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얻는 경로는 대중매체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자기기의 발전으로 새로운 것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빠르게 새로운 기술에 녹아들며 일상화된다. 청소년, 20대의 스마트폰 중독이 대표적인 예다. 스마트폰 사용은 세대 뿐만 아니라 주변인들과의 대화가 단절되는 악영향이 있으며, 메신저, SNS의 발달로 인해 많은 대화를 스마트폰을 통해서 한다. 구세대도 다수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긴 하지만, 새로운 것에 잘 적응하는 젊은 세대와는 다르게 카카오스토리 같은 고정적인 장이 형성되어 그 안에서 구세대들의 문화가 유지된다. 그래서 현재 청년세대와 부모님세대는 문화의 경계가 이루어져있다. 또한 일상에서 신-구세대는 공간적으로 분리되어있기 때문에 소통의 부재 또는 다른 문화가 형성된다. 현재 젊은 세대들에게 공간을 통한 마케팅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연남동, 홍대, 합정, 이태원 등의 상업지구와 지방에서는 시내라고 불리는 번화가 등이 대표적인 젊은 세대의 공간이다. 이 공간 속에 있는 대부분의 매장은 10, 20대를 위한 상품으로 집중되어있다. 젊은 세대들의 소비는 그 공간 안에서 집중되어 일어나고 있고, 많은 기업들도 그 공간에 자리를 차지하려고 한다. 젊은 세대는 이동성이 높기 때문에 특정한 공간으로 모이는 것이 쉽고, 그 안에서 세대의식을 학습하는 효과를 갖기 때문에 특히나 특정 공간을 통한 세대마케팅이 강하게 작용된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나타난 뉴 실버세대는 예전 노인세대와는 다르게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정년퇴직 후에도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세대를 말한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그만큼 기대수명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정년퇴직 후의 노인세대들은 자식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더 노력하고 있다. 이 세대는 정년퇴직을 통해 사회적 이탈을 경험했기 때문에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더 집착한다고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성향 역시 세대마케팅의 한 분야가 된다. 현재는 건강식, 교류 공간, 의류 산업 등 과거 노인세대들이 사회에서 이탈 당함을 느끼는 신체적인 한계에 편의성을 제공해주는 상품들로 실버마케팅을 하고 있다.

 특히 의류 산업의 경우는 의류가 세대를 분류하게 되는 한 가지 방법을 생성했다. 젊은 세대는 미디어를 통해 연예인을 모방한 모습, 구세대는 등산복이 세대를 상징하는 상품이 되었다. 이렇게 미디어를 통한 기업의 광고와 판매는 세대라는 것이 자본주의 속에서 마케팅, 상품으로 인해 세대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하나의 논증이 될 수 있다.     


3. 정치 참여

 386세대와 현재의 신세대는 정치 참여 방식이 다르다. 386세대는 거리선전, 홍보물 등 직접 발로 뛰었다면 현세대는 SNS로 인한 정치참여가 상당히 높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 참여가 독려된다는 것은 좋은 사회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세대는 SNS로 인한 소통의 부재를 갖고 있다. SNS가 사회적, 정치적 장처럼 형성되어있지만 특정 세대가 집중되어있는 공간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SNS는 젊은 세대가 많이 이용하고 있기도 하고, 구세대들도 이용을 한다고 해도 빅데이터 시대에서는 젊은 세대와는 다른 커뮤니티, 정보를 제공받는다. 같은 브랜드의 SNS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사회적으로 학습되어온 관심사, 문화만을 습득하게 된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50대 이상이다. 그들도 역시 구세대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젊은 층과 소통하기 위해서 SNS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인의 게시물을 직접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그 안에서 장이 분류되어 있기도하고, 젊은 세대는 그들에게 익숙한 커뮤니티를 통해서 다양한 정보 중 하나로 취득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왜곡이 나오고 논쟁이 나온다. 하지만 SNS가 직접적인 소통이 아닐뿐더러, 다른 커뮤니티를 한 번 더 거쳐서 정보를 얻는 것은 신뢰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논쟁이 일어난다는 것은 이용자의 사회는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역효과로 정치에 대한 고민이 줄었다. 특정한 커뮤니티에서만 정보를 취득하기 때문이다. 현재 미디어의 발달로 다양한 곳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그 정보들은 정치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미디어는 세대 간의 주적을 만들어내고 세대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정보취득의 공간을 제한한다.

 취득하는 정보도 다를 수밖에 없다. 신세대는 구세대가 정치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 미디어 종류에 따른 정보의 질 차이 때문이다. 신세대가 이용하는 SNS 속에서의 커뮤니티, TV프로그램 등은 혼성모방의 미디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문제에 대한 자각은 부족하고, 재미를 위해 특정인물을 비난, 농락하는 행위를 학습한다. 결국 실질적으로 얻는 정보의 깊이는 얇다. 구세대의 경우는 SNS를 개인 의사표현의 장 정도로 생각한다. 정보취득은 TV뉴스, 신문 등 조금 더 사실관계에 집중한 정보들을 얻는다.

 서로 정보를 얻고, 의사표현을 하는 장이 다르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은 세대별로도 나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운동을 할 때에도 세대에 맞는 전략을 갖추고, 개표방송을 볼 때도 나이별 득표수를 알려줄 정도다.

 작년부터 시작된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에서는 한 공간에 다른 세대가 모였을 때의 갈등을 볼 수 있다. 한 번에 백만 명이 모일만큼 신-구세대가 광화문에 모였다. 시위문화의 차이도 있었지만 각자가 경험해왔던 방식과 시민의식의 발전으로 차이가 생겼기 때문에 넘어가도록 한다. 난 탄핵 후에 생긴 갈등이 세대갈등이라고 생각한다. 386세대들은 보통 지지정당에 대해 이분법적인 태도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집회에 나왔던 386세대들은 거의 다 문재인지지자로 볼 수 있다. 이들은 같은 공간의 집회로 인해 신세대도 모두 문재인지지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문재인이 당선된 후 진보성향의 청년들이 집회하는 것에 대해 386세대들은 훈계를 내렸다. 박근혜를 몰아냈으니 이제 문재인을 같이 지키자는 논리다. 이 상황은 편향된 미디어를 학습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고, 각자가 이용해왔던 커뮤니티에서는 비주류 정당의 정보를 파악하기 힘들고 지지정당의 긍적적인 정보만 취득한 결과다. 젊은 세대들은 그러한 상황을 혼성모방하여 커뮤니티 내에서 세대갈등을 재생산한다.

 결국 세대갈등은 미디어가 세대별로 나눈 경계로 인한 소통의 부재가 원인이다. 이 갈등 속에 다른 세대를 이해하는 지점은 없기 때문에 의미 없는 갈등이라 생각한다.          


4.결론 – 세대는 허구다.

 현재 세대는 자본주의 속에 기업이 판매 대상으로 지정하기 위해 만들어낸 결과다. 또한 미디어를 통해서 세대를 학습하고 재생산한다. 내가 이 보고서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느끼는 세대는 허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청년들이 구세대에 비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느끼고는 있지만 그것은 세대로 씌워질 문제가 아니다. 구세대들이 길을 잘못 닦아났다? 그 영향도 있을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취득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그것을 해석하지 못하며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청년세대가 전부 가난한 것은 아니다. 수저론은 오히려 세대가 힘들다는 것을 부정하는 말이 되는데, 부모님의 형편에 따라 본인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담론은 어쩌면 기업입장에서 유익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을 위한 저렴한 상품, 불량식품의 판매가 가능하다. 또한 절망적이고, 무기력한 청년세대에게 희망을 준다면서 책을 내면 불티나게 팔려간다. 미디어는 청년세대라는 자본주의 시대 이후 가장 불쌍한 세대 프레임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절망, 무기력을 재생산하고 구세대를 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청년들이 나가야 할 길은 자본주의와 미디어가 결정해줬다. 우리는 대학에 나와 취직을 해야 하는 인생이다. 그것이 청년에게는 당연함을 넘어 압박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국가는 왜 보장해주지 않는가? 왜 기회를 늘리는 것이 아닌 정년퇴직 나이를 줄여 구세대와의 갈등을 형성하는가?  나이별로 일상의 장을 떨어뜨려 놨기 때문에 소통이 단절되어있고, 청년세대는 구세대로부터 학습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구세대는 청년세대가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세대는 나이차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허구다. 그래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세대갈등의 해결책은 세대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사회문제를 구조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1. 김정실. (2008) 『고령화 사회의 뉴 실버세대 특성에 따른 마케팅전략에 관한 연구.』   Design Forum 

2. 이세희. (2012) 『네트워크 세대의 SNS를 통한 정치참여와 정당지지』

3. 김수정, 최슬기, 최샛별. (2014) 『대중문화와 세대: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사회과학연구, 27(1): 69-94

4. 이연경. (2015) 『TV프로그램 시청의 세대차이와 세대 간 소통에 관한 연구』

5. 송동욱. (2016) 『청년들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분석 – 삼포세대 담론을 중심으로』


작가의 이전글 영화<칠드런 오브 맨>과 원작 『사람의 아이들』의 비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