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그 밤, 두 개의 침묵

진실은 말보다 먼저 흔들린다.

by 붕어예요

홍충현, 한때의 어의.
지금은 만초방의 은둔자.
그는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서화.. 그 아이가 연자근을 찾고 있네.”

그 말에 윤 씨 부인은 책장을 덮고,

놀라서 물었다.

“…네? 어르신 그게 무슨...”

“흐름이 움직이고 있네.
그 아이가 연자근을 찾다니...
그것도 바로 자네 딸아이가 말일세.”

“아니요. 어르신,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백서는 짧은 침묵 끝에 물었다.

“그럴 테지. 하지만, 너무 위험해.”

윤 씨 부인은 찻잔을 들던 손을 멈췄다.
찻잔 위로 피어오르는 김이 조용히 흔들렸다.

“…그 아이는 지금처럼 모른 채로 살아갈 것입니다.
다시는… 그날의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정희야..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걸 멈출 수는 있겠느냐?”

“……그 아이는 늘, 누군가를 위해 움직였지요.
그 본성은…”


윤 씨 부인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뜨며
슬픈 목소리를 애써 삼키며 말했다.

“그렇기에.. 정말 서화가 연자근을 찾는 게 사실이라면
우리 손에서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르신… 다시 그 길을 걷게 둘 순 없습니다..”


백서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등잔불 너머로 마주 앉은 두 사람 사이,
오래도록 잠잠한 과거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며칠 후, 윤 씨 부인은 연심의 낌새를 느꼈다.
평소답지 않게 자주 안채를 드나들며,
서화를 살피고, 혼잣말을 자주 중얼거리는 모습.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한 눈빛.
그 모든 것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연심 이를... 지켜보라 하게.”

윤 씨 부인은 조용히 옥련에게 명했다.

“그 아이가 누구를 만나고,
어떤 말을 흘리는지 정도만 알아보면 되네.”

며칠이 지나지 않아, 보고가 올라왔다.
서화가 월촌에 다녀갔다는 것.
복돌이와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이가
바로 연심이라는 것.

윤 씨 부인은 등불 아래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

향기로운 연기가 피어올랐지만,
그녀의 눈빛은 차가운 결의로 물들어 있었다.

‘서화야…
부디, 더는 가까이 가지 말거라.’

윤 씨 부인은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찻잔 바닥엔 아직 따뜻한 김이 맴돌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싸늘한 예감으로 굳어 있었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연심이, 네가 그랬구나.”

그 말에 옥련이 눈을 들어 조심스레 되물었다.

“마님, 혹시… 아이들을 숨긴 것이 연심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윤 씨 부인은 말을 자르지 않았다.
단지 고개를 아주 천천히, 조용히
갸우뚱할 뿐이었다.

“그 애가 직접 그랬을진 모르지. 다만,
춘매가 시킨 일일지도 모르겠네.”

“춘매가요?”

“서화가 뭔가를 알게 될까 봐…
자신이 직접 할 수 없으니
연심 이를 통해 피신시킨 거겠지.
그 아이는 늘 서화를 위해 움직였으니까.”

윤 씨 부인은 눈을 감았다.

“문제는, 연심이도…
자신이 왜 그런 일을 해야 했는지,
정확히는 모를지도 몰라.
그저 ‘지켜야 한다’는 말 하나에, 움직였을 테지.”

그 무렵, 서화는 자신의 방에 앉아 연심이
내온 차를 천천히 식히고 있었다.
따뜻해야 할 향긋한 박하 향이 어쩐지
서늘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연심이는 방 한구석, 조용히 앉아
서화를 바라보다 말없이 시선을 피했다.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 입술을 달싹이다가,
끝내 아무 말 없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 연심아.”

“예, 아씨.”

“무슨 일 있느냐?”

“예..?”

서화는 그녀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연심의 손등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연심이 움찔, 손을 빼며 황급히 말했다.

“지는… 마당일이 남아서유..! 다녀오겠구먼요, 아씨.”

그 말만 남긴 채,
연심이는 허둥지둥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서화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무엇이든, 연심은 분명 그것을 알고 있었다.

서화는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박하 향이 희미해지고, 방 안엔 고요만이 남았다.

‘분명… 무언가 숨기고 있어.’

서화는 천천히 창가로 다가갔다.
아무 일 없다는 듯한 연심이의 발걸음.
하지만 그 안에 감춰진 조급함이,
어쩐지 마음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복돌이네 움막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너무 그대로였어.
마치… 미처 챙길 새도 없이 급히 떠난 사람처럼.’

서화는 괜스레 가슴이 저려왔다.
그날의 바람, 그 침묵이 다시 마음속을 스쳐갔다.
서화는 조심스럽게 서랍을 열고,
지난밤에 품에 넣어두었던 작은 수첩을 꺼냈다.
연자근.
그 아이의 말대로라면,
병을 고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약재.
하지만 연자근은 구하기 어렵고,
심지어 어머니께선 저리 강경하시니..

“… 왜 어머니께서는 연자근을 찾지 말라 하시는 걸까?.”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말.
서화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 파문처럼 퍼지는 찜찜함을 되짚었다.
연심이의 행동, 복돌이네 움막,
어머니의 이상한 반응… 그리고 연자근.

어쩌면… 모든 것이 이어져 있는 건 아닐까?

그날 밤, 서화는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그리고 마음속엔 한 가지 결심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었다.

‘확인해 보자.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찾아야지.’

바람은 밤새도록 살랑였다.
서화는 등을 돌린 채 눈을 감고 있었지만,
그 무엇도 잠을 데려다주지 못했다.
깊고 조용한 밤.
어딘가… 자꾸만 마음이 흔들렸다.

조금 뒤,
곁에서 들리던 연심이의 숨소리가 잦아든 틈을 타
서화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불을 밝히지는 않았다.
방 안에 스민 어스름한 달빛만으로도
익숙한 공간을 더듬는 데엔 충분했다.

작은 탁자 위에 놓인 종이와 붓.
서화는 그 앞에 앉아 무언가를
꾹꾹 눌러쓰기 시작했다.
그녀가 글을 쓸 때면 늘 그렇듯,
심장은 잔잔한 파문처럼 고요히 떨렸다.

‘누군가는 감추려 하고,
누군가는 입을 다문다.
하지만 나는…
진실이 궁금하다.
무엇을 그토록 숨기려 드는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서화는 마지막 문장을 적은 뒤,
그 종이를 서랍 안 깊숙이 넣어두었다.

그 순간—

방 안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잠든 줄 알았던 연심이 조용히 눈을 뜨고 서 있었다.

“… 아씨, 여적 안 주무셨데요?”

서화는 놀라지 않았다.
연심의 표정은 어둠 속에서도 낯설 만큼 조심스러웠다.

“응, 그냥 잠이 오지 않아서.. 생각할 것도 좀 있고..”

서화는 짧게 웃으며 자리에 누웠다.
그러나 연심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잠시 머뭇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잠들지 못했다.

서로 다른 침묵 속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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