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졌음이 실감 났다.
아침 공기가 부엌까지 스며들었다.
창호지 가장자리에 맺힌 물기가 햇빛에 반짝였고,
양은냄비 안에선 된장국이 자글자글 끓었다.
경자 어머니는 부엌과 안방을 쉴 새 없이 오갔다.
밥상 옆에는 목장갑과 수건, 보온병, 커피통과 설탕 병,
프리마 봉지, 과자며 사탕 봉지가 한데 모여 있었다.
그 옆엔 작은 약통과 반창고도 올려져 있었다.
“엄니, 오늘 뭐 있데유? 아침부터 뭐 이리 부산혀유?”
경자가 숟가락을 들며 물었다.
어머니는 경자 쪽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보온병 뚜껑을 조여 놓으며 말했다.
“이이~ 올해 첫 굴 들어온댜~
선착장 한켠이 북적북적할 겨.”
그랬다. 꼭 이맘때만 되면 부녀회 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굴을 까 생활비에 보태곤 했다.
“그럼 오늘 핵교 끝나고 가봐야 것네~”
뒷문이 덜컥 열리며 경자 아버지가 들어왔다.
외투에 바닷바람 냄새가 배어 있었다.
“경자 엄마, 전부 연락 혔지?”
“이~ 그라암~ 새벽에 이미 다 돌렸슈.
걱정 붙들어 매유~”
두 사람의 말 사이로 찻물 끓는 소리가 났다.
바다에서 불어온 냉기와 국물 냄새가
부엌 안에서 살갑게 섞였다.
경자는 두부 한 조각을 밥 위에 얹어 꿀덕 삼켰다.
그렇게 분주했던 아침이 조금씩 흘러가고 있었다.
“엄니, 다녀오겄슈!”
경자가 신발을 꿰어 신고 밖으로 나서자
제법 찬 바람이 볼을 스쳤다.
잠시 뒤, 교실 창으로 가을빛이 더욱 길게 흘렀다.
분필가루 냄새와 젖은 나무 바닥의 냄새가 은근하게 섞였다.
종이 울리기 전, 아이들은 벌써부터 떠들썩했다.
“야, 오늘 굴배 들어온다드만.”
“우리 엄니도 나간다드라?”
“오늘은 굴죽도 끓인다던디. 맛있겄다~”
덕배는 굴죽 생각에 입맛을 한번 다시더니,
방금 생각난 듯 영수 옆구리를 툭 찔렀다.
“야, 영수야. 그 강아지 이름 지었냐?”
창밖을 보던 영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생각 중이야.”
영수의 말에 석호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럼 내가 지어줄게. 백구 새끼니께 ‘백돌이’ 워뗘?”
“에이... 그건 좀.”
그러자 덕배가 장난기 어린 눈으로 불쑥 말을 했다.
“그럼 부굴이 워뗘? 부녀회에서 굴 까는 날 지었다고 혀서,
부굴이!”
그 말을 들은 석호가 뒤로 넘어갈 정도로 배를 잡고 웃자
아이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따라 깔깔댔다.
“야, 부굴이는 너무했다~”
옥순이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냥 선물이로혀. 덕배가 준 거잖여.”
영수는 입술을 한번 깨물고 말이 없었다.
마음 어딘가가 간질간질했지만,
딱 붙는 이름은 아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왔다.
“얘들아, 뭘 그리 재밌게들 떠드니?”
“영수네 강아지 이름 짓는 중이였고만유!”
“허허, 그래? 그래도 이름은 영수가 짓는 걸로 하고.
자, 이제 책 펴자.”
아이들 웃음이 잦아들었고
창 밖으로 얇은 구름 한 장이 흐르며
교실 바닥에 잔무늬가 비쳤다.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의자를 밀치며 벌떡 일어났다.
“야야, 언능들 가자!”
마을로 내려가는 길,
바싹 마른 노란 잎사귀들이 바람에 데굴데굴 굴렀다.
아이들의 그림자가 바다 쪽으로 길게 늘어졌다.
선착장 한켠은 벌써 북적였다.
널빤지 위로 굴망이 쏟아지고,
빨간 고무장갑 낀 손들이 쉼 없이 움직였다.
굴껍데기가 탁탁 맞부딪히는 소리,
작은 버너 위에서 끓는 주전자 소리,
멀건 커피 냄새와 삶은 국수 냄새가 엷게 뒤섞였다.
바다 위에서는 갈매기 한 둘이 낮게 호를 그렸다.
“경자야, 니 엄니 저쪽에 계신다~
어? 우리 엄니는 왜 안보인댜?”
옥순이가 경자에게 턱짓을 했다.
그리곤 두리번두리번 본인의 엄마를 찾기 바빴다.
경자 어머니는 수건을 머리에 질끈 두르고
굴살을 분주히 떼어냈다.
옆자리 아주머니들이 수다를 이었다.
“올해는 날이 일찍 추워져서 그런가, 살이 통통허네.”
“그러게 말이여~ 아, 굴이 모레 또 들어온다던디?”
“너무 가까이들 오지 말어! 굴껍데기 튀면 다친다!”
덕배 어머니가 아이들 쪽을 힐끔 보며 소리쳤다.
아이들은 한발 물러나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쟁반 위에 하얀 굴 살들이 점점 쌓였다.
영수는 무심코 손등을 문질렀다.
어젯밤, 작은 온기가 그의 팔목을
잠시 붙잡았던 느낌이 떠올랐다.
석호가 팔꿈치로 영수를 툭 찔렀다.
“야, 저~봐라. 막 배 들어온다.”
멀리서 작은 배 한 척이 느릿하게 미끄러져 들어왔다.
선착장 위의 그림자가 배를 향해 길게 기울었다.
오늘 읍내에서 청포리로 오는 마지막 배였다.
사람들이 저마다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보는 사이,
배에서 학생 하나가 먼저 내렸다.
검은 교복에 커다란 안경,
한 손에 책가방을 든 중학생이었다.
“저 동수 오네~”
“동수야, 핵교 끝나고 오냐?”
굴을 까던 아주머니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셔유.”
동수가 짧게 인사했다.
햇빛이 안경알에 반짝 박혔다.
곧이어 한 아주머니가 동수를 불러 세웠다.
“아이고, 동수야~ 니가 공부를 그리 잘한다믄서?
읍내서 최고라던디, 진짜여?”
“이이~ 언니는, 그 소식 못 들었는가베?
동수 서울로 고등학교 간다든디? 장학금까지 받았다잖여~
동수 엄마는 복도 많어~”
옆에서 굴망을 정리하더 동수 엄마가
쑥스레 웃으며 말했다.
“뭘유~ 지가 열심히 하는 거쥬”
그러자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더해졌다.
“아이고~! 잘혔다, 잘혔어.”
“아무렴, 자식이 공부 잘한다면야.”
“동수 엄니 부럽네유~”
칭찬이 밀려오자 동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고개를 더 숙이고 안경을 한번 올려 쓰며
빠른 걸음으로 골목으로 사라졌다.
영수는 동수가 사라져 간 방향을 한참 바라봤다.
그 뒷모습 너머로 굴껍데기 하나가 바람에 굴러와
발끝에 와서 멈췄다.
그때 옥순이가 옆에서 팔을 쓱 끌었다.
“왜 또 멍하니 있데? 가자~ 구경하러.”
영수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둘은 굴 까는 아줌마들 사이를 피해 조심스레 옆으로 돌아갔다.
경자는 어느새 엄마 곁에서 굴껍데기를 줍고 있었다.
“엄니, 지가 도와줄게유!”
“그려 그려~ 손 조심 혀라~”
경자 어머니는 경자 손을 한 번 쓱 살피고
다시 고무장갑을 꾹 끼워 올렸다.
분주한 손놀림 사이로 국수 끓는 냄새가 바람에 섞여왔다.
그때, 뒤쪽에서 훌쩍훌쩍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여서 뭐 하는겨?”
덕배였다.
헐레벌떡 달려와 아이들 옆에 쭈그려 앉더니,
숨을 한번 고르고 손가락으로 작업장 옆을 가리켰다.
“저기 봐~ 보글보글 끓고 난리도 아니여.
지금 국수 삶고 있던디?”
덕배 말에 아이들 눈이 동시에 반짝였다.
“진짜? 완전 잔치네, 잔치!”
옥순이와 석호는 서로를 밀치며 들떠 있다가
어느새 코를 벌름거리며
먹을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쭉 빼 들었다.
잠시 후, 국수를 끓이던 한 아주머니가 손을 멈추고 외쳤다.
“얘들아! 이리 와서 국수 한 그릇씩 먹어!
바람 찬디 그냥 서 있지 말고!”
그 말에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갔다.
마치 아기새들이 모이를 찾듯이
저마다 그릇을 내밀며 외쳤다.
“아줌마, 지두유! 지두유!”
양은 냄비 옆에서 뜨끈하게 김이 솟아오르고,
국수 그릇이 하나씩 아이들 손에 들려갔다.
“앉어, 앉어. 뜨거우니께 흘리지 말고 조심혀.”
아이들은 작업장 뒤에 주저앉아
후후 불며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와... 이거 뭐여... 진짜 맛있다.”
석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젓가락질을 멈추지 못했다.
“우리 엄니가 굴죽도 끓일 거라드라.
오늘 저녁은 배 터지겠다~”
덕배가 입가에 국물을 묻힌 채 껄껄 웃었다.
바닷바람이 한 번 휘돌며
굴 비린내와 국수 김이 선착장 끝까지 퍼져갔다.
그때였다.
“조심혀! 굴 쏟는다!!”
목수건을 멘 아주머니가 외쳤다.
커다란 굴망이 ‘텁’ 하고 널빤지 위에 떨어지고,
물과 껍질이 사방으로 튀었다.
“꺆, 튀었어!”
옥순이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굴껍데기 몇 조각이 석호 무릎 위로 튕겨 올랐다.
옥순이 어머니는 급히 달려와
아이들 머리를 쓸어주며 말했다.
“이래서 가까이 오지 말라 헌거여.
후딱 먹고 저짝 가서 놀어. 알긋지?”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먹는 속도를 더 높였다.
조금 멀찍이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굴망 쏟아지는 곳에 가 있었다.
“우와... 굴 진짜 많다...”
“저거 다 까면... 얼만겨?”
“몰러~ 옆집 이모는 벌써 이천원 넘었다던디?”
그때 바람 한 줄기가 스쳐 지나가
갈매기 한 마리가 크게 선회해
멀리 갯벌 쪽으로 날아갔다.
선착장 위의 소리들
굴껍데기 부딪히는 탁탁, 칼 긁는 소리,
양은 냄비 부딪히는 소리,
아줌마들 목소리, 아이들 웃음
이 모든 것이 뒤섞여
청포리만의 하루를 만들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