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나의 나이차는 무려 약 열 살
후미에를 처음 만난 건 프랑스 안시라는 도시에서였다. 나는 갓 대학을 졸업하고 갔던 프랑스였고 그 친구는 이미 13년이나 직장생활을 하다가 온 넘사벽 친구였다.
나는 아직도 그녀의 나이는 모른다. 그 당시 젊은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제일 큰 언니’ 또는 ‘어른‘으로 통했다. 그런데 한국에서였다면 그 정도 나이차는 친구 먹기 어려운데 후미에와는 좀 달랐다.
그래서 난 아직도 그녀의 나이를 알지 못한다.
나이가 많으면 어떻고... 동갑이면 어떻겠냐...
우린 그렇게 나이차는 저 멀리 우주로 보내버리고 프랑스 안시에서 충분히 행복했다.
후미에는 어학원에 같이 다니면서 줄곧 나와 같은 반이었고 몇 안 되는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이었다. 나는 불어를 전공하고 와 문법엔 빠삭했던지라 수업을 따라가기가 어렵지 않았던 반면 후미에는 그저 "좋아서"하는 불어였다. 그래서 아직도 눈을 감으면 수업시간에 그녀가 발표를 하면 멋쩍어하며 어색한 듯 문법에 꼭꼭 맞춰서 프랑스어를 말하려던 모습이 생각난다.
한 번은 유학생들끼리 상부상조하던 시기에 도쿄에서 메이크업과 헤어를 좀 했다는 일본인 친구가 내 머리를 기숙사 방에서 잘라준 적이 있다. 친구니까... 당연히 무료라고 생각했던 철부지 나에게 후미에가 했던 말
이럴 때는 친구에게 커피 한잔을 사는 거야
오바산 후미의 이런 언행이 지금생각하면 꼰대처럼 느껴질 법도 한데 당시에는 어린 나도 수긍했던 것 같다. 늘 그녀를 통해 많이 배운다는 느낌을 받았다.
후미에는 항상 침착하게 말을 조곤조곤하게 했다.
그리고 늦은 나이였지만 본인의 버킷리스트인 프랑스에도 왔고
훨씬 어린 친구들 틈에서 꿋꿋하게 본인의 여유를 즐겼다.
그 후로 나는 후미에를 봤을까?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오자마자 우리 집에 후미에를 초대했다. 얼마나 조심성 있고 어른을 공경했으면 우리 엄마는 아직도 후미에를 떠올리면 사촌오빠(지금은 결혼한)와 맺어주고 싶어 하셨다.
그 후로 내가 해외에서 일을 할 때 휴가차 한국에 왔을 때 우리 가족과 후미에를 오사카에서 보기도 했다. 우연히 길을 지나다 내가 눈여겨본 오니기리 손수건을 기억해 두었다가 떠날 때 나에게 선물을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안시를 너무도 사랑하는 우리는 또다시 안시에서 뭉쳤다. 우리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에 좋은 친구와 다시 간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그러고 나서.... 10년이 훌쩍 넘도록 후미에를 만나지 못했다.
나라를 넘어 다니고 결혼과 육아를 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친구는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그러다 올해는 내가 꼭 후미에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25년 6월 3일 후미에를 다시 만났다.
호텔 로비의 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걸어 나오던 후미에는 흰머리가 듬성듬성했지만 내가 알던 모습 그대로였다. 어찌나 뭉클하던지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ひさしぶり (오랜만이야!)
정말 너무너무 오랜만이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도 편안한 분위기가 좋았다.
なつかしい (그립다)
오래된 친구와는 오랜만에 만나도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는다. 마치 거의 20년 전일이 어제였던 일처럼 같은 기억을 공존한다. 가수 양희은 님의 에세이 '그러라 그래'를 보면 그런 말이 나온다. '친한 사람은 자주보지 않는다.' 처음엔 이 말에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과의 관계는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후미에와의 만남은 오사카의 딸기케이크보다 훨씬 달콤했다.
어서 그녀가 이제 나를 만나러 한국에 오길 기다리는 중이다.
* 일본어로 오바산 (おばさん)은 아줌마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