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식탁은 늘 젖어 있었다.
엄마는 아침을 치우고 나서도 한 번, 점심을 대충 먹고 나서도 한 번, 저녁상을 물리고 나서도 또 한 번 식탁을 닦았다. 나는 그게 그냥 엄마의 습관인 줄 알았다. 손에 물기 하나 남기지 않으려는 사람의 결벽 같은 것이라고, 그때는 아주 쉽게 생각했다.
엄마가 식탁을 닦는 동안 나는 자주 방문을 닫았다.
학생일 때는 공부하느라 바빴고, 어른이 되어서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말을 아꼈다. 엄마가 “밥 먹어” 하고 부르면 “이따가”라고 했고, “오늘 회사는 어땠어?” 하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답했다. 엄마는 내 짧은 대답 끝에서 더 묻지 않았다. 대신 행주를 물에 적셔 식탁을 닦았다. 물이 한 번 지나간 자리에는 조금 전까지 어질러져 있던 밥풀과 국물 자국이 사라졌다. 나는 그게 참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은 늘 누군가의 수고로 금방 깨끗해지는 곳이었다.
그날도 별다를 것 없는 저녁이었다.
나는 회사에서 기분이 상한 채로 돌아왔고,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괜히 큰 숨을 쉬었다. 엄마는 내 얼굴을 한번 보더니 “많이 힘들었어?” 하고 물었다. 나는 신발도 제대로 벗지 않은 채 “힘든 건 다 똑같지”라고 말했다. 엄마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손 씻고 와, 국 식는다”라고 했다.
저녁 내내 나는 날이 서 있었다.
반찬이 짜다는 둥, 왜 이렇게 많이 차렸느냐는 둥,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비해 집에서는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둥, 그런 말을 쏟아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엄마에게 한 말이 아니라 세상에게 화를 낸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은 늘 가장 만만한 사람에게 가장 날카로워진다. 엄마는 대꾸하지 않고 밥을 더 덜어주기만 했다. 나는 그것마저 답답해서 됐다고, 그만하라고 말했다. 식탁 위의 공기는 금방 싸늘해졌다.
식사가 끝난 뒤 나는 컵을 싱크대에 던지듯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엄마가 내 등을 보며 아주 작게 말했다.
“너는 힘들 때 왜 꼭 나한테만 그러니.”
그 말은 이상하게도 큰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나를 붙잡은 것은 원망이 아니라, 원망조차 크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뒤돌아본 엄마는 이미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 등을 조금 굽힌 채 접시를 물에 담그고 있었다. 고무장갑 낀 손등은 갈라져 있었고, 목 뒤로는 짧아진 흰머리가 몇 가닥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엄마가 늙고 있다는 사실을 봤다. 엄마는 원래부터 엄마였던 것이 아니라, 오래 참고 오래 닳아 여기까지 온 한 사람이었다.
나는 방문을 닫듯 살아왔다.
엄마가 부르면 나중에, 물으면 그냥, 걱정하면 알아서 한다고 말했다. 내가 조금만 예민해도 엄마는 이해해야 한다고 믿었고, 엄마의 피곤과 서운함은 가족이니까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여겼다. 가족이라는 말은 이상해서, 가장 사랑하는 사이를 뜻하면서도 가장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면허처럼 쓰인다. 나는 그 면허를 너무 오래 가지고 있었다.
그날 밤, 엄마는 평소처럼 식탁을 닦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주를 짜고, 접힌 자리 없이 네모나게 펴서, 식탁 모서리까지 천천히 문질렀다. 그런데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엄마가 닦아온 것은 나무 식탁이 아니라 하루의 표정들이었다는 걸. 아버지의 침묵, 내 짜증, 가족들 사이에 흘렀다가 어디에도 놓이지 못한 말들. 엄마는 늘 그것들을 마지막까지 혼자 닦아냈다. 우리가 편히 잠들 수 있도록.
나는 엄마 옆에 서서 행주를 받아 들었다.
엄마는 됐다고 했지만, 나는 처음으로 됐다는 말을 듣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늦게, 너무 늦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신기해서, 입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체면을 깎는 말 같다가도, 막상 나오고 나면 사람을 다시 사람답게 만든다. 엄마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배고프면 내일 아침에 계란말이 해줄게”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용서라는 걸 알았다. 세상에는 사과를 받아내는 사람도 있지만, 사과를 밥처럼 데워서 다시 내어주는 사람도 있다. 내 엄마가 그랬다.
돌이켜보면 나는 엄마에게서 사랑을 배운 것이 아니라, 사랑이 버티는 방식을 배웠다.
사랑은 대단한 선언이 아니었다. 새벽마다 쌀을 씻어두는 일, 내 표정이 안 좋으면 과일을 깎아두는 일, 서운해도 다음 날 국을 끓이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안다. 가족이란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가 가장 늦게 철드는 자리라는 것을.
요즘도 본가에 가면 엄마는 식탁을 닦는다.
예전처럼 나는 방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행주를 같이 헹구고, 의자를 제자리에 넣고, 그날 있었던 일을 조금 더 길게 말한다. 엄마가 듣고 있다는 사실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자주 말하려 한다. 엄마, 그때 정말 미안했어. 그리고 고마워. 내가 너무 늦게 배웠지만, 이제는 안다고. 사랑은 떠드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남아서 식탁을 닦는 사람 쪽에 더 가까이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