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왜 늘 괜찮다고만 말했을까

by 오피스 내비게이터

우리 집에서 가장 짧은 문장을 많이 쓰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다녀오겠습니다. 먹었다. 됐다. 자라. 괜찮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들은 말은 단연 괜찮다였다. 어디가 불편해 보여도 괜찮다, 일이 힘들어 보여도 괜찮다, 무거운 짐을 들어도 괜찮다, 늦은 밤까지 잠을 못 자고 있어도 괜찮다. 나는 오래도록 그 말이 사실인 줄 알았다. 아버지는 원래 잘 견디는 사람이고, 웬만한 일에는 끄떡없는 사람이라고.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집에서 자기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와 어떤 말을 했는지, 요즘 무엇이 힘든지 같은 것들을 먼저 꺼내는 법이 없었다. 식탁에 앉아도 반찬 이야기를 했고, 뉴스 이야기를 했고, 내일 비가 온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작 자신의 하루에 대해서는 한두 마디면 충분하다는 듯 입을 닫았다. 엄마가 “오늘 일 많았어?” 하고 물으면 “늘 그렇지 뭐” 하고 말했고, 내가 “피곤해 보여”라고 하면 “나이 들면 다 그래” 하고 웃었다. 그 웃음은 대개 대화를 끝내는 쪽에 가까웠다.


어릴 때 나는 그런 아버지가 조금 멀게 느껴졌다.
엄마는 표정으로도 마음이 읽혔지만, 아버지는 아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베란다에서 말없이 화분에 물을 주거나, 고장 난 의자를 뒤집어 놓고 나사를 조이곤 했다. 말이 없는 사람은 마음도 단순할 거라고 나는 어리석게 짐작했다. 기쁘면 웃고, 힘들면 말하면 될 텐데 왜 늘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 저녁이었다.
아버지가 평소보다 조금 늦게 들어왔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나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는 신발을 벗는 동작이 평소보다 느렸다. 허리를 펴는 데도 잠깐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두꺼운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어두는데, 어깨선이 눈에 띄게 처져 있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가 ‘늙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늙어 간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있었을 텐데, 내가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엄마가 저녁상을 차려놓고 밥을 권했지만, 아버지는 금방 먹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거실에 앉아 한동안 손을 펴고 오므렸다. 손등의 살은 거칠었고, 손마디는 전보다 더 굵어 보였다. 나는 괜히 그 손을 오래 보았다. 나를 업어 들던 손, 자전거 뒤를 잡아주던 손, 이삿날 무거운 짐을 번쩍 들던 손이었다. 한 번도 약해질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손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그 손이 조금 낯설었다. 견디는 데 익숙한 손 같았다. 오래 버티느라 제 모양보다 더 단단해진 손.

식사 자리에서 엄마가 말했다.


“병원 한번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버지는 밥을 한 숟갈 뜨고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별거 아냐. 좀 무리해서 그래.”
엄마가 다시 “자꾸 어깨 아프다며” 하고 묻자 아버지는 늘 하던 말처럼 웃으며 말했다.
“괜찮다니까.”

그때 나는 이상하게 화가 났다.
괜찮지 않아 보이는데 왜 자꾸 괜찮다고 하는지, 가족한테까지 그렇게 말하면 우리는 뭘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나는 조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안 괜찮아 보이는데 왜 맨날 괜찮대.”

말이 끝나자 식탁 위가 잠깐 조용해졌다. 아버지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아주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너희까지 걱정하면 뭐 하냐.”

그 한마디를 듣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주저앉았다.


아버지가 왜 늘 괜찮다고 말했는지,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라,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자기 몫이라고 여겨서였다는 것을. 집 안에서 누군가는 무너지지 않는 쪽에 서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 피곤해도 내색하지 않고, 아파도 조금 미루고, 걱정은 밖에 두고 들어와야 한다고 배운 사람. 아버지 세대의 많은 남자들이 그랬듯, 사랑을 표현하는 대신 버티는 쪽을 선택한 사람.

나는 그날 이후로 아버지를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말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말을 아끼는 사람. 무심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몫의 불편을 조용히 뒤로 미루는 사람. 생각이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설명하지 않는 쪽이 더 익숙한 사람. 우리는 종종 말이 적은 사람을 오해한다. 마음이 없는 줄 알고, 상처도 덜 받을 거라 짐작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없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말로 옮기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서 조용하다.

며칠 뒤 주말 오후였다.


아버지는 베란다에서 오래된 전등을 갈고 있었다. 나는 별일 아닌 척 옆에 서 있었다. 전등 커버를 받쳐 들고 있는데 아버지가 한쪽 팔을 잠깐 멈췄다. 순간 아주 짧게 인상을 찌푸리는 얼굴을 보았다. 정말 잠깐이었다. 누가 보면 못 알아챘을 만큼 짧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사람은 아플 때보다, 아픈 티를 감출 때 더 애처로워 보인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전등을 다 갈고 나서 아버지는 습관처럼 말했다.


“됐어. 이것도 별거 아니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예전처럼 넘기지 않았다.
“아버지, 안 아프면 좋겠는데 아프면 아프다고 해.”
말해놓고도 조금 어색해서 괜히 창밖만 봤다. 아버지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드문드문 웃으며 말했다.
“알았다.”


그 알았다가 진짜 알았다는 뜻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여전히 쉽게 속을 보여주지 않고, 여전히 괜찮다는 말을 먼저 한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괜찮다는 말 뒤에 남아 있는 피곤과 통증과 걱정을 조금은 상상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 번 더 묻는다. 정말 괜찮은지, 어디가 얼마나 불편한지, 병원은 언제 갈 건지. 아버지는 귀찮다는 듯 대답하면서도, 예전보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준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사이에서는 큰 변화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크게 해본 적이 없다.
대신 비 오는 날이면 내 우산을 먼저 챙겼고, 시험기간이면 말없이 과일을 깎아두었고,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거실 불을 켜둔 채 잠들었다. 내 차가운 도시락통을 아무 말 없이 씻어두고, 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는 오래 기억하면서도 자기 서운함은 금세 접어두는 사람. 아버지의 사랑은 늘 말보다 뒤쪽에 있었다. 설명보다 행동에 가까웠고, 티를 내지 않는 방향으로 오래 흘렀다.

나는 한동안 그런 사랑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사랑은 다정한 말과 선명한 표현으로만 오는 줄 알았다. 그래서 조용한 사람의 마음은 자주 지나쳤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떤 사랑은 자꾸만 괜찮다고 말하는 쪽에서 온다는 것을. 내 앞에서는 무너지지 않으려는 마음,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자기 아픔을 접어두는 마음, 말 대신 책임으로 제 자리를 지키는 마음. 그것이 꼭 좋은 방식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 안에 사랑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요즘 집에 가면 아버지에게 전보다 말을 조금 더 건넨다.


오늘 어땠는지, 어디는 괜찮은지, 요즘 잠은 잘 자는지. 아버지는 여전히 짧게 대답하지만, 가끔은 먼저 묻기도 한다. 너는 괜찮냐고.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든다. 평생 괜찮다고만 말하던 사람이, 이제는 내 괜찮음을 먼저 살피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도 짠하다. 그래서 나는 예전보다 천천히 대답한다. 정말 괜찮은 날은 괜찮다고 말하고, 아닌 날은 아니라는 말도 해본다. 어쩌면 가족 사이에서 자란다는 것은 그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래 침묵하던 사람의 언어를 뒤늦게 배워가는 일. 그리고 그 사람이 평생 입버릇처럼 삼켜온 괜찮다는 말 속에서, 제일 늦게 사랑을 발견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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