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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Jul 23. 2021

언덕 위의 집

새로 이사 한 집은 언덕 위의 집이었다. 좀처럼 친근감이 느껴지지 않아 ‘몽마르트르 언덕’이라 이름을 붙여버렸다. 역에서 가까워서 좋지만 위로 올라가는 길에 상점들이 불규칙하게 간판을 맞대고 더덕더덕 붙어 있었고, 그나마 TV에서 본 듯한 회사의 아이스크림 가게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처음 보는 개인 상점이었다. 손님들이 많아 보여 들어가도 거의 맛이 없었다. 큰길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면 작은 술집과 커피숍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이런 곳을 가끔 어린아이들도 걸어 다니는 것이 보였다. 저녁에 거리를 지나 집으로 올라갈 때면 상점과 사람들의 거센 폭풍 속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일정하지 않은 계급의 사람들이 상중하로 나뉘지 않고 섞여지기도 하고 음식들도 그리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아 다양한 대화에 집중할 수 있어 보인다. 학문적이기 보다 예술적이고 계산적이기 보다는 인간적다. 마치 옛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처럼 말이다. 

   하지만 언덕을 조금만 올라가도 정반대의 풍경이 보였다. 숲 속의 냄새와 새들의 울음소리가 쉽게 들려왔다. 계단을 올라가 집에 도착하면 산꼭대기에 올라온 것 같은 풍경들이 내려다보였다. 베란다에서는 관악산과 촘촘히 작게 붙어있는 집들이, 부엌 창문으로는 방금 지나온 도시의 복잡함이 상반되게 펼쳐졌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조용한 생활이 엿보였다. 특히 높은 곳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있자니 조금 전에 지나 온 거리의 피곤함을 잊게 해주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었네.”   

   집에서 언덕 아래로 내려갈 때면 천국에서 세상으로 가는 것 같지만, 다시 언덕을 향해 올라갈 수 있어 행복했다. 마치 목욕탕에서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부모님의 경제적인 지원 없이 자신들의 실력으로 살아가려는 젊은 부부들의 열정도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옛 로마인들은 평지보다 언덕에서 살고 싶어 했다는데 살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꼭대기이기 때문에 거쳐 가는 사람들이 없고 빛을 쨍쨍하게 받는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는 공격이 많아 아래를 살펴 피신하기 좋았다는 이유가 컸겠지만, 가끔 위에서 아래의 집들을 내려다보면 고독하면서도 포근함을 준다. 군중 속의 외로움이 도시의 차가움처럼 멋스럽다. 

   처음에는 이 집과 동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에 살던 동네보다 정돈되어있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면 술집이 많아서이다. 교회 옆에도 맥줏집이 있을 정도로. 그래서 이런 상상도 해 보았다. 이 언덕은 몽마르트르 언덕과 같은 곳이고 여기에서 많은 예술인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작품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는. 언덕을 올라 위로 올라가면 내가 사는 아파트가 나오는데 이 아파트에도 실은 프랑스의 몽셀 미셀과 비슷한 곳이 있다고. 

   별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어둠 때문이라면 내가 사는 언덕 위의 집은 언덕 아래의 복잡함 때문에 더욱 엄숙하고 특별한 것 같다. 상상이긴 하지만 나만이 이 장소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하여 더욱 소중하다. 지금의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이 유명해져 버려 그때의 분위기가 점점 희미해졌다고 한다면 밝혀지지 않은 이런 곳이 예술의 소재로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교차하여 항상 좋은 것을 고르느라 정신이 맑아지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통해서 지금의 감사함을 아는 현실적인 곳으로서. 

   나의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된 것일까. 

   얼마 전부터 술집보다는 커피숍이 더 많아진 것 같고, 옆 골목의 재래시장이 새 로 단장하여 정돈되기 시작하였다. 언덕이라 겨울에는 정형외과가 붐비기는 하지만 음식재료를 사서 어렵게 올라가 만든 음식은 꿀맛 같다. 올라가다 힘들면 가끔 커피숍에 들어가 쉬곤 하는데 그때의 마음은 행복한 여행객이 따로 없다. 동네에서는 소박함이 느껴지지만, 커피 한 잔의 짧은 시간이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 주는 여행. 이런 고마움도 있어 언덕 위의 집으로 이사 오길 참 잘한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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