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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Jul 30. 2021

그 찻집

 새로운 장소에 가면 항상 단골 찻집을 만들곤 한다. 내가 어디에 있든 차를 마시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익숙함과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굳이 차를 마시지 않더라도 내가 찜을 해 놓은 찻집을 지나가면 응원을 받고 있는 듯해서 새 힘이 생긴다고나 할까? 이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만의 비밀이기도 하다.

 그런 사랑스러운 찻집이 집 앞에도 생겼다. 처음에는 간판도 실내장식도 촌스러워 보였는데 개업할 때쯤 되니까 제법 그럴듯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무엇보다도 커피 가격이 저렴하고 화장실이 깨끗해서 맘에 들었다. 아무리 화려하고 좋아도 화장실이 더러우면 정이 뚝 떨어진다.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부분까지 신경 썼다는 점에서 맘속으로부터 믿음이 생겼다. 

 “오셨어요?”

 찻집에 들어서자 선한 표정을 한 주인이 미소로 날 반겨주었다. 실은 그 주인이 선할 것이라는 나의 판단은 찻집에 놓여있는 책들과 장식품 그리고 음악에 의해서이다. 유행을 따르지 않은 커피에 관한 서적과 그림책과 사진 책들이 그렇고 내가 좋아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캐릭터 인형이 그랬다. 이것들 모두 작지만 아무 데서나 살 수 없고 가격도 꽤 나가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것들을 알고 있다는 것도 놀랍고 즐거웠다. 아마도 이 집 주인이 나와 취향이 비슷한 것 같다. 

 찻집에 대한 첫인상은 대충 이러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좋다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던가! 자주는 갈 수 없지만,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날이나 힘없이 지쳐서 퇴근하는 날, 쉬는 날 가벼운 산책로를 통해 보이는 그 찻집이 왠지 모르게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주위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쌔근쌔근 잘 자는 아기처럼 자기만의 스타일을 꾸준히 지켜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나의 모습 같고, 또 내가 닮고 싶은 모습 같았다. 

 그런 찻집의 매력을 주위 사람들도 느꼈던지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신기하게도 주인과 비슷한 느낌의 책과 음악을 좋아할 것 같은 분위기의 멋진 손님들이 언제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밖은 시장골목과 상점들이 빽빽한 복잡한 서민 거리인데, 찻집 안은 색다르고 풍요했다. 기간제교사로 임용의 꿈을 안고 일터로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찻집 안에서 나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을 보곤 했다. 교육학이라고 쓰여 있는 두꺼운 책을 보거나, 인터넷강의를 듣고 있는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을 말이다. 근처에 대학교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는지 신기했다.

 일본 속담에 “비슷한 부류끼리 친구가 된다.”(類は友を呼ぶ)라는 말이 있다. 이 찻집의 주인과 내가 취향이 비슷하다보니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곳에 오는 손님들이 나의 내면의 조각조각 같았다. 

 이런 찻집에 사람들이 모이자 길옆에도 시장 안에도 비슷한 찻집이 들어서더니 큰 골목에 유명한 가맹점의 커피전문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두세 달 사이에 골목 전체가 주점과 분식집에서 커피전문점 거리로 탈바꿈해 버렸다. 이제는 멀리 가지 않아도 맛과 가격과 분위기를 비교해가며 얼마든지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한동안 나도 집 앞의 그 찻집을 잊게 되었다. 그러다 조금씩 궁금증이 풀어지자 다시 그 찻집으로 돌아왔다.

 “그 찻집은 그대로 있을까?” 

 예상대로 사람이 좀 줄어있었다. 하지만 주인의 태도와 커피는 변함없는 맛이었다. 경쟁상대가 생기면 가격을 올리거나 변화가 있을 수 있건만 한결같은 모습에 뭔지 모를 강인함이 느껴졌다. 그 순간 끝까지 그 찻집을 지켜주지 못한 나의 마음에 죄책감까지 느껴졌다. 나도 나 자신의 본 모습을 잃고 헤맸던 것이다.

 여기에서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

 아무리 어려움이 와도 초심을 잃지 말고 꿋꿋하게 나 자신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연약한 복숭아 빛깔의 강인함이 나를 기쁘게 만들어 주었다. 그동안 피나는 노력에 대한 아무런 결실이 없음에 실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는데 언젠가 찾아올 승리의 순간을 간접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포기 하지 마.”

 다시금 그 찻집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다른 더 좋은 커피맛을 제치고 알 수 없는 희망의 맛을 찾기 위해 멀리 돌아서라도 찾아온다. 처음에는 정에 끌렸다가 서서히 확신하게 되었다.

 요즘 그 찻집 앞에 조그만 상장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서 더욱 빛나고 예뻤다. 2011년 서울시 좋은간판상 “수다 카페”라고 말이다.

 단골이라는 것은 서로 닮고 싶은 끌림인 것 같다. 

 오늘도 차 한잔의 여유로움을 느끼며  방긋 미소를 지어본다.             

                                                                                                  201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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