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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Jul 31. 2021

어린 왕자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 있다. 제목은 어린 왕자. 책을 펼치다 종이쪽지가 툭 떨어져 펼쳐보니 학번과 이름이 적혀있었다. 책 주인의 이름임이 틀림없었다. 이 책을 나에게 빌려주고는 꼭 돌려달라고 이름을 앞과 뒤에 쓰고도 쪽지에 또 한 번 써서 준 이 친구는 누구였던가. 이 친구는 나를 기다렸었고 나는 망설이다 책을 돌려주지 못하고 말았다.

   기억은 벌써 대학교 1학년 봄으로 달려가 있었다. 영어 시간에 옆자리에 앉은 M은 항상 책을 읽는 소년이었다. 그만큼 나도 그렇고 다른 학생들도 대학생이라는 말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그런 시기였던 것 같다. M은 친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자주 책을 빌려주었다. 처음에는 누나 책이라며 ‘캔디캔디’ 만화책부터 시작하여 사진집과 시집 등 종류도 다양했다. 기쁘기는 했지만 빌려 준 책을 읽기도 전에 새로운 책을 갖고 와서 괴롭기도 했기에 솔직히 말했다. “내가 원하는 책도 갖고 있니? 어린 왕자라는 책도 있니?”라고. 그랬더니 대뜸 “응.”이라며 내일 갖고 온다는 것이 아닌가. 어린 왕자를 교재로 한 수업에서 책을 꼭 읽어오라 하였는데 M이 책을 많이 가진 것 같아서 물어보았고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도서관에 가면 분명히 있을 책이지만 수업에서 한다고 하니까 발 빠른 학생들이 빌려 가 버리고 말았다. M은 다음날 “천천히 읽고 돌려줘.”라며 혹시 내가 M의 이름을 모를까 봐 학번과 이름을 적어 주었고 나는 그 쪽지를 책갈피에 끼워두었다.

   어린 왕자라는 책은 겉표지를 보아서는 내용이 쉬워 보이지만 실은 작은 책 속에 많은 진리가 담겨 있다. 행복이라는 표현 중에서 “오후 4시에 약속을 하면 오후 3시부터는 아주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게 된다.”라거나 “누군가 몇 백만 개의 별 어딘가에 피어있는 한 송이의 꽃을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은 많은 별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질 수 있다.”라는 부분이 특히 그렇다. 소소한 일상의 발견에서 오는 기쁨을 예쁜 그림이나 말로 나타내고 있다. 가끔은 깊은 뜻이 있어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두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깨닫게 되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어린 왕자의 저자인 생텍쥐페리는 프랑스 항공에서 일하였다고 한다. 내가 솔직히 항공사를 다니고 싶었던 이유도 이 책의 저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책의 내용처럼 저자가 항공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모든 항공사가 멋있어 보였다는 생각도 맞을 것이다. 그래서 항공사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내가 마치 하늘을 나는 생텍쥐페리가 되는 듯했다. 그러다 지금 놀랍게도 글을 쓰는 과정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어린 왕자는 나에게 있어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준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이런 귀한 책을 빌려 준 M의 집은 유명한 출판사를 겸한 서점이었다. 1학기 기말시험이 끝나고 서점에 가자고 해서 따라가 보니 시내 한복판에 M의 이름으로 된 서점과 학습지가 보였다. “그랬었구나.” 그래서 M이 책이 많은 환경에서 자라 책을 좋아하고 나에게도 책을 많이 빌려 주었다. 하지만 M은 다시 태어난다면 책을 많이 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왜 M이 그토록 책을 좋아하면서 부정하는지 알 수가 없다. 주변에서도 남들이 보기에 부러움을 사는 직업임에도 절대로 이런 직업을 자식에게만은 시키고 싶지 않다는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결국, 그 말의 진실은 부정이 아니라 결과가 되어 버리지만 말이다. M도 더 많은 책을 읽기위해 아르바이트를 자신의 집보다 더 큰 서점으로 정해 버렸고, 많은 부모도 부정은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걸어가는 자식을 보게 되는 것이다. 

   M과 멀어지게 된 것은 M이 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인 것 같다. 발렌타인데이 때 같은 서점에서 일하는 동료와 나에게 준다며 초콜릿을 같이 사러 가자고 하였고, 나는 왠지 모르게 화가 나 버렸다. 그날 이후로 서먹해지더니 나도 다른 아르바이트로 바빠지자 서로 약속이 엇갈리다 오늘에 이른 것 같다.

   M은 책을 돌려줄 것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때 내가 솔직하게 화가 난 심정을 전했으면 좋았으련만 알 수 없는 자존심인가 보다. 아직도 책장에서 귀하게 자리 잡고 있는 ‘어린 왕자’라는 책만이 알 수 없는 내 마음을 대신하여 주고 있다.*    

                                                            2015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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