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준비가 막막한 당신께, '성취기준' 다시 읽기

with [이해-과정-가치교육을 살리는 개념기반 탐구수업] 정민수/엠디랑

by 정민수

수업 준비가 막막한 당신께, '성취기준' 다시 읽기

글쓴이: 정민수


늦은 밤, 내일의 수업을 위해 책상에 앉습니다. 교과서와 지도서를 펼치고, 네모난 칸 안에 적힌 ‘성취기준’이라는 문장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물질이 물에 녹는 현상을… 비교할 수 있다.’

어느새 머릿속은 복잡해집니다. ‘어떤 실험을 해야 하지? 준비물은 뭘 챙겨야 하나? 한 시간 안에 다 끝낼 수 있을까?’ 해야 할 일(To-do list)들이 머릿속을 스쳐가고, 수업 준비는 이내 즐거운 창조가 아닌 무거운 숙제처럼 느껴집니다. 혹시 선생님께서도 이런 밤을 보내본 적이 있으신가요?

오랫동안 많은 선생님들이 성취기준을 ‘이번 시간에 반드시 끝내야 할 진도’나 ‘가르쳐야 할 지식의 목록’으로 여겨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이 딱딱하고 차갑게만 느껴지는 문장을 학생들의 사고를 깨우는 ‘보물지도’로 다시 읽는 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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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세 가지 색깔 펜으로 보물 원석 찾기

첫 번째 탐험은 보물지도 곳곳에 숨겨진 단서, 즉 ‘보물 원석’을 찾는 일입니다. 준비물은 세 가지 색깔 펜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5학년 과학의 한 성취기준을 예로 들어 함께 찾아볼까요?


[6과03-01] 용해 현상의 의미를 알고, 용질의 종류와 물의 온도에 따라 물에 녹는 용질의 양이 달라짐을 비교할 수 있다.


• 지식(Knowledge) -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명사 찾기)

학생들이 알아야 할 내용, 정보, 용어는 주로 ‘명사’ 형태로 나타납니다. 파란 펜으로 문장 속 핵심 명사들에 하이라이트를 해보세요.

[6과03-01] 용해 현상의 의미를 알고, 용질의 종류물의 온도에 따라 물에 녹는 용질의 양이 달라짐을 비교할 수 있다.


찾으셨나요? 이 성취기준의 핵심 지식 요소는 바로 ‘용해 현상’, ‘의미’, ‘용질의 종류’, ‘물의 온도’, ‘용질의 양’입니다.


• 기능(Skill) -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가? (동사 찾기)

학생들이 배워서 할 수 있어야 할 행동, 사고 과정 등은 주로 ‘동사’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번엔 빨간 펜으로 동사에 밑줄을 그어보겠습니다.

[6과03-01] 용해 현상의 의미를 알고, 용질의 종류와 물의 온도에 따라 물에 녹는 용질의 양이 달라짐을 비교할 수 있다.


네, 이 활동에서 학생들은 용해의 의미를 ‘알고’, 조건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교하는’ 활동을 해야 합니다.


• 태도(Attitude) -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숨은 의미 찾기)

태도는 성취기준에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장 속에 숨겨진 가치나 바람직한 마음가짐을 추론해야 합니다. 초록 펜으로 밑줄을 긋고 우리가 발굴한 태도를 적어봅시다.

[6과03-01] 용해 현상의 의미를 알고, 용질의 종류와 물의 온도에 따라 물에 녹는 용질의 양이 달라짐을 비교할 수 있다. (현상의 원인을 탐구하려는 과학적 호기심과 태도)


어떤가요? 밋밋했던 문장이 조금은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하지 않나요? 우리는 방금 성취기준이라는 땅속에 묻혀있던 세 종류의 보물 원석을 캐냈습니다.


[2단계] '왜?'라는 질문으로 보석 다듬기

이제부터가 진짜입니다. 캐내기만 한 원석은 그저 돌멩이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 원석들을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으로 다듬어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연장이 바로 ‘What(무엇을)’, ‘How(어떻게)’, ‘Why(왜)’라는 세 가지 질문입니다.


• 지식 → ‘이해 개념 (Understanding Concept)’으로 확장

단순한 사실 암기를 넘어, 그 속에 담긴 더 큰 원리나 관계를 포함하는 ‘핵심 아이디어’로 확장합니다. 이때 우리는 “그래서, 학생이 진짜 무엇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할까?”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기존 지식) 용질의 종류, 온도, 녹는 양 → (질문) 그냥 ‘소금은 잘 녹고, 온도가 높으면 더 잘 녹는다’만 알면 될까? 이 사실들을 통해 어떤 과학적 원리를 이해해야 할까? → (확장된 이해 개념) 관계, 변인, 조건


• 기능 → ‘과정 개념 (Process Concept)’으로 확장

단순 행동을 넘어, 학생들이 문제를 해결하고 탐구하는 일반적인 ‘방법’‘전략’으로 확장합니다. 이때 던져야 할 질문은 “그래서, 학생이 어떻게 학습하고 탐구할 수 있어야 할까?”입니다.

(기존 기능) 비교하기 → (질문) 그냥 소금 한 숟가락, 설탕 한 숟가락 넣고 비교하면 될까? 정확한 비교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 (확장된 과정 개념) 변인 통제, 실험 설계, 객관적 비교


• 태도 → ‘가치 개념 (Value Concept)’으로 확장

바람직한 자세를 넘어, 학생들이 삶에서 추구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와 신념으로 확장합니다. “그래서, 이 배움이 학생들의 삶에 왜 중요할까?”라는 질문을 통해 배움의 의미를 삶과 연결합니다.

(기존 태도) 과학적 호기심 → (질문) 호기심을 느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어떤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까? → (확장된 가치 개념) 과학적 탐구의 중요성, 합리적 문제 해결


교실의 풍경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이 두 단계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우리의 수업 설계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접어듭니다.

수업의 목표는 더 이상 ‘용해 실험하기’가 아닙니다. “변인 통제의 과정을 통해 조건과 결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과학적 탐구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훨씬 깊고 넓은 목표를 갖게 됩니다. 교사는 더 이상 실험 진행자가 아니라, 학생들이 ‘관계’라는 개념을 발견하도록 돕고 ‘변인 통제’라는 사고 과정을 안내하는 ‘사고의 설계자’가 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 과정이 낯설고 더 많은 시간이 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개념’이라는 튼튼한 그릇을 만들어두면, 학생들은 새로운 지식을 스스로 담고 연결하는 힘을 갖게 됩니다. 이는 결국 ‘진도’에 쫓기는 수업에서 벗어나, 깊이 있는 배움으로 나아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선생님, 오늘 밤 수업 준비를 하실 때, 단 하나의 성취기준만이라도 세 가지 색깔 펜으로 다시 한번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작은 시도가, 내일의 교실을 바꾸는 위대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엠디랑 팟캐스트 https://www.youtube.com/@mdrangnet

참고/수업도시락 엠디랑 mdrang.net

[이해-과정-가치교육을 살리는 개념기반 탐구수업: 이론] 정민수 BOOKK출판사

[이해-과정-가치교육을 살리는 개념기반 탐구수업: 실제] 정민수 외 BOOKK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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