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사업은 한국과 달라야 하면서도 같아야 한다
중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믿음이 있다. 바로 한번 거절 당한 뒤에는 다시는 그 일을 시도하려 하지 않고 심지어 자신의 거절 경험을 동네방네 알리고 다닌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지금도 개발과 발전을 반복하고 있다. 오늘 안됐던 일이 내일 가능성이 열리기도 하고 오늘 됐던 일이 내일 갑자기 안될 수도 있다. 며칠 전 20년 가까이 중국에서 살았던 친구와 언쟁을 했는데 그 날에도 서로 본인이 맞노라 우기는 상황이었다. 언쟁의 주제는 중국 내 한국인 비자발급에 관한 것이었다. 두 사람이 경험한 바가 달랐기 때문에 일어났던 소소한 언쟁이었지만 그 일로 나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결코 정해진 것은 없다. 이곳은 중국이다.
내가 중국에 처음 왔을 때, 중국을 주제로 한 책을 찾아 읽은 적이 있다. 바로 조정래작가의 정글만리. 이 책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픽션, 즉 소설이다. 그렇지만 현실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중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갑자기 정글만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 속에 표현되었던 중국인들의 특성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하고 싶어서이다. 이 책을 읽게 된 독자에게 나는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알려주고 싶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든, 생활을 하든, 유학을 하든 공통 필수과목이 하나 있다. 바로 중국인을 이해하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공산주의 체제아래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어려서부터 중국이 세계최고라고 교육받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의심이나 비난이 없다. 그저 존중하고 존경하며 받아들인다. 국가에서 하라는 모든 것에 대해 반발하지 않으며 통제가 쉽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행동해” 라는 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런 공산주의 체제에서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중국인은 그래서 ‘죄송합니다’의 표현인 抱歉 baoqian 을 쓰는 일이 거의 없다. 이 말을 쓰는 순간 상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겠다는 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단 인정하고 뒤에 조목조목 따져서 풀어나가지만 중국은 먼저 조목조목 따지고 난 후에 인정한다. 순서가 다르다. 조목조목 따지는 부분에서 우리는 마치 중국인이 자꾸 핑계를 댄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배우지 않았고 우리 민주주의 문화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정의로운 모습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은 돈도 관시(关系)도 아닌 사람이다.
관시란 중국어 발음으로 꽌시, 관계 맺음을 뜻하는데 이 관계는 우리나라에도 있는 고향사람, 학교, 가족의 친구, 지인을 넘어 돈으로 맺어지기도 한다. 중국은 인구수가 14억 4847만1404명으로 세계 1위이다. 그러니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인맥이 당연히 있어야 하고 인맥이 없이는 일이 진척이 어려울 정도로 그 인맥의 파워는 대단하다.
필자 또한 아직도 중국인을 100%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중국인을 이해 할 수 없다면 인정하는 방법으로 생각을 전환하고 나니 조금 숨통이 트였다. 게다가 중국인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시작하면 그 인정의 속도는 복리가 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간혹 조선족은 좀 다르지 않느냐 묻는 사람들이 있다. No. 절대 다르지 않다. 그들은 100% 찐 중국인이다. 우리와 같은 핏줄일 수 있지만 그들은 이미 공산주의 체제아래 키워졌고 중국정부를 존경하고 따르며 살아간다. 다만 자신의 혜택을 최대한으로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일 뿐이다. 이걸 보고 우리는 한국을 이용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아니, 그들은 그저 서바이벌이다.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생각하겠는가. 그들의 삶이다. 한국에 사는 조선족에게 민주주의적 사상을 기대 해서는 안된다.
마윈 같은 사상을 가지면 중국에서는 사업하는 데 있어서 많은 제약이 생긴다. 알리바바가 더 성장하지 못한 이유는 마윈이 정부의 방침에 순종하지 않았고 소신과 신념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