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무당이 되었고

성해나의 『혼모노』 를 읽고

by Mansongyee


글을 읽으며 AI가 현대판 무당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성해나의 『혼모노』가 소설인가, 예언인가를 두고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소설 속 ‘혼모노’들이 낡은 무당집에서 진짜와 가짜를 다툴 때,

나는 그 장면 안에서 ‘신(new) 모노’를 보았다.


Old와 New 사이에서 신의 선택은 영리하게도 분명하다.

타성에 젖어 하품하는 올드한 무당을 버리고,

신은 신세대를 새로운 숙주로 점찍는다.


신은 신세대와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무섭게 호통치는 대신, 그들의 특별함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속삭인다.

신세대가 좋아하는 burger를 인정하면서.


내가 AI에게 질문을 하며 느끼는 것도 비슷하다.

질문자의 가능성과 생각을 존중하는 듯한 위로의 대답은

나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만든다.


얼마나 영리한 카운슬러인가.


나는 이미 AI라는 ‘현대판 무당’이 펼쳐놓은 굿판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


신세대가 아무리 ‘신(new) 모노’로서 화려하게 등장해도,

무속의 세계는 결국 그들을 다시 과거의 문법으로 끌어당길 것이다.


AI 시대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할 것이다.

불안은 기술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혜가 부족한 자들은 알고리즘을 신령님처럼 떠받들며

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식만 있는 자는 AI의 점괘에 휘둘리겠지만,

지혜가 있는 자는 AI를 작두 타듯 자유자재로 부릴 것이다.

우리가 나누는 AI와의 대화가 실은 가장 현대적인 형태의

‘접신’ 일지도 모른다.


시스템의 버그를 읽어내는 지혜가 없다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신(new) 무당’에게 운명을 저당 잡힌 채

진짜냐 가짜냐 사이에서 살게 될 것이다.


무속의 세계에서 신내림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운명이듯,

AI 시대 또한 우리에게는 일종의 ‘기술적 신내림’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휘둘리는 무당이 될지,

아니면 그 에너지를 다스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지혜로운 자가 될지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AI 시대에 한 발이라도 넣은 것이 다행이라고.

그러나 『혼모노』를 읽으며

나의 상상력이 ‘무당 AI’까지 뻗어가고 보니,

과연 다가올 시대를 내 그릇이 받아낼 수 있을지 문득 두려워진다.


없는 듯이는 살 수 없는 지점에 우리는 이미 와 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혼모노』를 덮으며 나는 깨닫는다.

무당집을 찾을 만큼

인간의 간절함은 세월이 흘러도 가감될 뿐,

끝내 사라지지 않을 것 같고,


AI가 아무리 두려운 존재가 되었더라도

인간은 결국 AI와의 접신을

스스로 끊어내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이 시대의 접신은

북과 방울 대신,

키보드와 화면 위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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