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여정

음악과 기억이 나를 데려간 밤

by Mansongyee


Screenshot_20260114_005721_Google~2.jpg 외젠 들라크루아의 < 키오스 섬의 학살 >



귀에 머물지 않고, 가슴으로 내려온 음악


우연히 마태수난곡을 들었다.
처음 듣는 곡도,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흘려두듯 재생된 음악이었는데,
그날의 선율은 이상하게도 귀에 머물지 않고
가슴 안쪽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고통과 거룩함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은 채
같은 결로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선율 속에서

사람이 견뎌온 시간과 그 시간을 건너온 침묵을 들었다.


고통 앞에서 눈을 피할 수 없었던 기억


아마도 루브르 박물관에서 마주했던

외젠 들라크루아의 <키오스의 학살>의 기억이

겹쳐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 앞에 섰을 때 나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눈을 피할 수 없었을 뿐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패배자들의 절망적인 눈망울,

이미 숨이 멎은 어머니의 가슴 위를 더듬는 아기의 본능적인 손길.

고통은 미화되지 않은 채 너무나 노골적이었고,

그 선명한 붉은 색채들은 비명처럼 캔버스 위를 흐르고 있었다.

거룩함은 그 처참한 비극 속에서 묘하게 침묵하고 있었다.


마치 마태수난곡의 낮은 베이스 선율이 인간의 가장 깊은 탄식을 묵묵히 받쳐내듯,

그림 속의 어둠 또한 그 모든 고통을 묵묵히 품고 있었다.

음악을 듣는 이 순간,

그때 그 그림 앞에서 느꼈던 '말할 수 없는 침묵'이 다시 내 안으로 돌아왔다.



지금 와서야 묻게 되는 질문


그때 문득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떠올랐다.

싱클레어는 어느 순간 음악을 통해 자신의 내면이 깨어나는 체험을 한다.
젊은 날의 나는 그 장면을 그저 활자로 지나쳤다.
그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통, 허무, 슬픔, 분노...
우리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분류해 둔 이 감정들이
실은 모두 같은 뿌리를 가진 것은 아닐까.

마음은 본래 그 부분을 알지 못하는데,

우리만 억지로 이름표를 붙여 가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적인 고통이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성스럽게 느껴졌던 그 그림처럼,

가슴을 저미는 슬픈 선율이 역설적으로 완벽한 평온을 선물하는 이 음악처럼 말이다.

우리는 고통은 밀어내야 할 것,

기쁨은 붙잡아야 할 것으로 나누어 정답지를 만들지만,

사실 우리 마음이라는 거대한 바다는 그 모든 감정을 단 한 번도 차별해 본 적이 없다.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도,

잔잔하게 부서지는 물결도 모두 같은 바다의 몸짓일 뿐이다.

슬픔이 지극한 곳에서 비로소 깊은 이해가 태어나고,

절망의 끝에서 뜻밖의 거룩함을 마주하는 것은 우리 마음이 애초에

그것들을 하나로 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흐름을 거부하지 않는 법


더 오래전 읽었던 헤세의 『싯다르타』 속 강물의 흐름이 이제야 선명하게 만져진다.
모든 질문을 내려놓고 물의 흐름을 바라보던 싯다르타.
그는 답을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다만, 흐름을 거부하지 않을 뿐이다.
슬픔과 기쁨, 옳음과 그름이
같은 강물 위에서 서로를 밀치지 않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그는 몸으로 받아들인다.


강물은 오물이 들어온다고 해서 흐름을 멈추지 않고,

맑은 물이 들어온다고 해서 특별히 속도를 내지도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을 '삶'이라는 이름으로 공평하게 실어 나를 뿐이다.



흔들림을 포함한 나라는 존재


나는 오랫동안 나를 몰아붙이며 살았다.
부족함은 고쳐야 할 오답이었고,

흔들림은 실패의 증거였다.

늘 나 자신에게서 한 걸음 떨어져 스스로를 감시하듯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자리에 서 있다.

실수한 나도, 울던 나도, 웃던 나도
모두 나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정하기 시작했다.
붙잡지 않고, 재촉하지 않고, 그저 흐르게 둔다.


이 밤, 음악은 멈췄지만
그 여운은 내 안에서 계속 흐른다.
삶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하지만 이제는 그 흔들림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한다.


싯다르타가 강가에서 모든 것을 허락했듯,
나 또한 내 안의 파도를 거부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나의 불완전한 삶의 여정을 사랑하기로 한다.




문장 사이에 머물던 침묵,
끝내 문장이 되지 않은 감정들은 여백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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