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에서 (Musée Gustave Moreau)
어떤 날은
완성된 것보다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것이
더 궁금해진다.
그날은
‘인류의 보물창고’ 루브르에서
물밀듯이 밀려다니다 보니,
바로 그런 상태가 된 날이었다.
파리의 조용한 골목,
한 사람의 우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이었다.
보통의 미술관이
완벽하게 화장된 ‘결과’만을 보여준다면,
이곳은 예술가의 ‘고민’과 ‘실패’를
날것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림부터 보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시선은 자연스럽게 벽으로 향했다.
벽이라기엔 이상했고,
가구라기엔 지나치게 컸다.
손잡이가 달린 평평한 면들이
층층이 겹쳐 있었다.
서랍이었다.
전시장의 벽 전체가
서랍처럼 만들어진 구조 앞에서
나는 잠시 멈췄다.
설명을 읽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여기는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작업이 계속되던 자리였다는 것을.
수납장을 하나씩 열 때마다 ‘스륵’ 하는 소리가 났다.
손목에 전해지는 묵직한 서랍의 무게는
화가가 평생 감당했을 망설임의 깊이 같았다.
그 적막한 소리 속에서 나는 화가가 자신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읽는다.
서랍 하나를 열면 또 다른 실패가 나오고,
그 밑에는 더 오래된 망설임이 겹쳐 있다.
완성에 이르지 못한 선들,
지웠다 덧댄 연필 자국들.
모로는 이 서랍들을 전시를 위해 박제하지 않았다.
고민이 쌓이던 방식 그대로,
서툰 오답들을 켜켜이 남겨두었을 뿐이다.
한 예술가가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고뇌하였는지 보여준다.
그 앞에서 나는 더 이상 관람자가 아니었다.
아직 다 말하지 못한 생각들,
쉽게 버리지 못해 접어 둔 선택들...
나 역시 서랍 속의 종이들처럼 인생의 어디쯤엔가
미완인 채로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곳은 그림이 아니라,
미완인 채로 자신을 견뎌낸 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나선형 계단 끝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서둘러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직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 지독한 수행의 흔적들이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은,
‘견뎌내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이름’이었다.
읽는 동안,
당신도 잠시 서둘러 정리하지 않아도 되기를.
***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 <파리> ***
(Musée Gustave Moreau)
19세기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가
살던 집을 그대로 보존한 공간으로,
완성작보다 훨씬 많은 습작과 드로잉이
벽면 전체를 채운 서랍 속에 남아 있다.
이 미술관은 결과보다 과정이 먼저였던 한
예술가의 시간을 조용히 보여준다.